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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송이보약큐티 / 23년 6월 3일 : 시편 44편~46편. 절망의 밤에 부르는 희망의 노래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6.02|조회수33 목록 댓글 0

<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23년6월3일(토) >

*오늘의 읽을 말씀: 시편44편~46편
절망의 밤에 부르는 희망의 노래

*묵상자료

1.절망의 밤에 부르는 희망의 노래(시44편)


시편 44편은 극한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고라 자손의 시이다. 고라 자손이 누구인가? 민수기 16장과 26장에 보면 레위 지파에 속한 고라는 모세의 지도력에 반기를 들었다가 땅 속으로 삼켜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 아들들은 아버지의 반역에 가담하지 않고 살아 남았다. 역대하 20장 19절에 따르면 고라의 자손들은 성전의 성가대원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성전의 문지기였다고 한다(대상9:19, 26:1)

시편의 표제에 등장하는 고라 자손에서 ‘고라’가 그 옛날 모세에게 반기를 들었던 패역한 인물이라면 그들은 그다지 명예로운 가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훗날 성전 예배를 위해 쓰임을 받았고, 이렇게 이스라엘의 신앙을 고백하는 시편을 노래했다는 것은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아픔이 있었을 것이고, 조상의 패역함에 대한 철저한 회개와 각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신앙 역전의 일이었다.시편 44편의 17절부터 22절까지의 분위기는 기원전 164년경의 마카비 전쟁 당시의 상황을 알려준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이스라엘의 대적자들과 원수들은 고도로 발전된 문화인 헬레니즘 문화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뿌리내리려고 했다. 솔직히 당시에 헬레니즘의 문화는 이스라엘의 신앙체계에 비해서 더 수준이 높아 보였고, 그들이 전하는 종교적인 이해는 이스라엘의 종교 이해를 유치한 수준으로 보게 만들었다. 원수들이 강제적으로 헬레니즘의 종교와 철학을 받아들이게 했기에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면서 혼란을 겪었다.

20절에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이라는 구절은 물밀듯이 밀려오는 헬레니즘의 수준 높아 보이는 문화와 사상 때문에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신앙을 상실할지도 모르는 위기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22절에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라는 표현은 당시에 안티오쿠스 4세가 실제로 강제적인 폭력을 사용하면서 이스라엘의 신앙을 지키려는 자들을 잔혹하게 학대하며 죽였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신앙인들은 지금 현재 패배감과 절망 속에 있다. 물론 과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시면서 애굽에서 건지셨고, 광야의 40년을 지켜주셨고,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땅을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는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던 자신들이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는 그야말로 주변 민족들이 우러러보았으며, 하나님이 그들에게는 자랑거리였다. 바로 이러한 과거의 회상이 1절부터 8절까지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1절부터 8절까지는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시의 분위기는 9절에서 바뀐다. ‘그러나’로 시작하는 9절부터 16절까지는 더 이상 승리가 아니라 패배를 맛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는 좌절과 절망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9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고, 더 이상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신다. 심지어 12절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무료로 팔았다’는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다. 15절에서 시인은 종일토록 능욕을 당하고 수치로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탄하고 있다.

17절부터 22절까지는 더욱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패배감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잊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17절에서 들려주고자 하는 말인데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호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시인에게 있어서는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19절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구하지 않고 내버려두고 있다. 22절에서 종일토록 하나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고,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1절부터 8절까지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9절부터 22절까지의 절망적인 상황으로 인해서 충분히 위협을 받고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의 상황 속에서 여전히 시인에게 있어서 마지막 희망은 하나님이었다.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은 초대교회 교인들이 직면한 위기와 고난의 상황을 시편 44편 22절에서 찾았다. 로마서 8장 35절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오늘 시편 44편의 22절을 36절에서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위기의 순간이 오더라도 그것을 능히 이겨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하심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장 38~39절)

캄캄한 밤에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흑암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선하신 능력으로 견뎌내야 한다. 아멘.

https://youtu.be/eCE7ZacG3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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