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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송이보약큐티 / 23년 10월8일 : 마태복음 19장~21장. 오후 5시에 부름받다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10.08|조회수31 목록 댓글 0

<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23년 10월8일(주일)>

*오늘의 읽을 말씀: 마태복음 19장~21장
오후 5시에 부름받다

*묵상자료

1. 오후 5시에 포도원 품꾼으로 발탁된 사람(마20:1~16)


마20:1을 보면 주님께서는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다고 하셨다. 주인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삯을 주기로 품꾼들과 약속하고 그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낸다. 당시는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었던 시절이었으므로 이른 아침 첫 번째로 주인의 택함을 받아 하루 종일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가 큰 복이었다. 주인은 제 삼시, 곧 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에 다시 장터에 나가보니 아직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주인은 그들에게도 상당한 품삯을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주인은 12시와 오후 3시에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오후 5시에 나가 보니, 아직도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인이 그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라고 하자, 그들은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고 했다.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보면 튼튼하고 기술을 가진 일 잘하게 생긴 사람들부터 차출되어 간다. 시간이 지나면 기술도 없고 약해 보이는 사람들만 남는다. 아마도 오후 5시까지 남아 있게 된 사람들은 기술도 없고 품꾼으로 쓰기에 합당하지 않은 여러모로 부족한 자들이었을 것이다. 오후 5시가 되도록 포도원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거리에서 빈둥거려야 되는 이들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이제 한 시간만 지나면 해가 저물고, 하루를 공치고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일 양식이 걱정이다. 아내와 자식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라는 힘없는 그들의 대답 속에 인생의 비애가 묻어 난다. 주인은 그들의 형편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그들에게도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들에게 이 말이 얼마나 놀랍고도 기쁜 소리였겠는가? 비록 한 시간밖에 일할 수 없지만, 그로 인해 많은 품삯을 기대할 수도 없었지만, 그들은 공치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날아갈 듯이 기뻤을 것이다. 그들은 비록 짧은 한 시간이었지만 주인에 대한 감사함으로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성실히 일했을 것이다.
드디어 날이 저물어 품삯을 지불하는 시간이 되었다. 주인은 청지기에게 일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품삯을 주라고 했다. 오후 5시에 온 사람들은 겨우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게 되었다. 이들이 받은 한 데나리온의 품삯은 아침 일찍이 택함을 받아 포도원에 들어가 하루 종일 일한 일군들이 받는 품삯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 당시 노동관습에 비추어볼 때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주인의 은혜에 놀라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던 먼저 온 자들도 깜짝 놀랐을 것이며 한 시간 일한 사람이 한 데나리온씩 받았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당연히 더 많은 품삯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이 주어졌다. 이것은 주인이 처음 포도원에 들여보낼 때 그들과 약속한 하루 품삯이다. 그러므로 주인은 그들에게 정당한 품삯을 지불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침 일찍부터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였는가? 마20:11-12에 보면 그들은 주인을 원망했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이들의 원망은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품삯을 받았다. 그러므로 주인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고 해서 원망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비록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도 똑같이 하루치의 품삯을 주신 주인의 인자하심과 큰 은혜에 도리어 감사하고, 그런 훌륭한 주인이 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존경해야 했다. 사실 세상에 이런 은혜로운 주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 비유에서 상식을 벗어난 고용주, 곧 집주인의 너그러운 모습을 하나님의 모습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이 비유는 고용주의 보상 방식이 일반 경제 원리를 벗어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주고 있다. 고용주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던 그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 비유의 고용주는 일반적으로 악한 고용주들의 보상 원리와 정반대였다. 이는 인간의 공정함의 원리를 뛰어넘은 관대함과 은혜의 원리이다. 그의 보상의 원리는 받을 것보다 적게 받은 자는 아무도 없되,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 원리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수고한 노동자들은 이처럼 관대한 보상 방식에 대해 불평을 하였는데 그들이 불평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받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보다 적게 일한 자들이 자신들과 동일한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모습은 아마도 맨 처음 제자로서 예수님의 사역 기간 내내 누구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더 많은 보상을 기대하는 12 제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적 원리와 전혀 다른 하나님 자신의 원리, 곧 은혜와 사랑의 원리가 적용되는 나라이다.


https://youtu.be/S6-y9KAdJ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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