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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송이보약큐티 / 23년 11월15일 : 고린도전서 9장~12장. 은사론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11.15|조회수27 목록 댓글 0

<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23년 11월15일(화)>

*오늘의 읽을 말씀: 고린도전서 9장~12장
은사론

*묵상자료

1. 신령한 것(고전12장)


고전 12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고전 12:1)

이런 문장에는 몇 가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문장을 일단 존칭으로 바꿔야 한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회중들에게 반말로 편지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프뉴마티콘’이라는 헬라어 번역인 ‘신령한 것’도 ‘영적인 것’으로 바꿔야 한다. 신령하다는 우리말은 뭔가 평범하지 않는 능력처럼 들린다. 심지어 산신령의 도술이 연상되기도 한다. 루터는 이 단어를 ‘영의 선물’이라고 번역했다. 고린도전서가 말하는 프뉴마티콘, 즉 신령한 것은 어떤 특별한 능력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모든 은사(카리스마)를 가리킨다. 그 카리스마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바울은 4절 이하에서 거론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등등이다. 그리고 고전 12:28절 이하에서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은사를 분류한다.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 행하는 자, 신유, 봉사, 행정, 방언, 통역 등이다. 교회의 모든 업무는 다 프뉴마티콘, 즉 신령한 은사이다. 설교, 교육, 봉사, 친교, 성가 등등, 이 모든 것들은 원칙적으로 신령한 것들이라는 뜻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은사에 대해서 아주 길게 설명한다. 고전 12장부터 14장까지, 무려 세 장에 걸쳐서 강론한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12장은 은사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고, 14장은 방언과 예언에 대한 설명이다. 그 사이에 사랑을 강조하는 고전 13장이 들어 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 문제로 열병을 앓고 있었다. 서로 자신들의 은사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열광주의자들에 의해서 벌어지는 문제가 심각했다. 그럴만하다. 다른 은사는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된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설교 은사도 옳은지 아닌지를 어느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방언, 통역, 입신 등은 좀 까다롭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적 특권의식에 빠질 위험성이 있었던 것이다. 고린도교회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영적 권위로 다른 은사들을 부정하고 자신들이 교회의 리더십을 독점하려고 했다.

이런 사람들이 큰소리를 낼 때 교회가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분열과 반목이다. 그것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고린도교회 회중들이 바울의 리더십을 거부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심지어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고후 10:10절에 따르면, ‘바울의 편지는 힘이 있으나 직접 대하면 볼품도 없고 말도 시원하지 않다’는 식으로 바울을 폄하했다. 이들은 바울의 여러 가지 약점을 들어서 바울의 리더십을 부정했다.

본문에서 바울의 관심은 은사에 대한 분별이다. 또한 과도한 은사주의에 대한 경고이다. 악령에 의한 것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판단할 수 없는 은사에 치우치면 결국 교회를 병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신앙고백이 중요하다. 은사 현상만으로는 성령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악령에 의한 것인지가 구별되지 않는다.
바울은 본문에서 은사를 개인의 능력이라든지 재주라든지 업적이 아니라 성령의 차원으로 설명한다. 4절을 보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라고 했다. 한 성령, 한 주, 한 하나님이 신자들에게 다양한 은사를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바울은 은사 문제를 11절에서 이렇게 정리한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아멘.

바울의 이 은사론이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세상의 일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미 종교개혁자들도 그렇게 가르쳤다. 직업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소명이다. 성직과 세속직이 구별되지 않는다. 높은 자리와 낮은 자리가 질적으로 구별될 수 없다. 목사나 신학자나 기업 총수나 말단 직원이나 아파트 경비원이나 모두 소명으로 살아갈 뿐이다. 모든 직업이 주 앞에서 거룩하다.

우리는 고린도전서를 읽으며 내가 받은 은사만 특별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성령 안에 다양한 은사가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아멘.

https://youtu.be/PRgsrly_m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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