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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송이보약큐티 / 23년 11월16일 : 고린도전서 13장~16장. 대표성의 원리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11.16|조회수29 목록 댓글 0

<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23년 11월16일(목)>

*오늘의 읽을 말씀: 고린도전서 13장~16장
대표성의 원리

*묵상자료

1.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고전15:45)


성경은 대표성의 원리를 일관성 있게 다루고 있다. 마태복음 1:1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하면서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다윗, 그리고 예수님까지 연결된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이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지만 여기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고 남포교회 원로이신 박영선 목사님은 강조한다. 누가복음 3:23-28에는 이 족보를 아브라함 이전까지 올라가 아담과 하나님까지 연결시켜서 보여준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그가 사람의 후손인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중성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시 마태복음 족보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족보의 시작인 아브라함은 분명 사람인 아담의 후손이지만, 그의 후손인 예수를 그 아버지 되는 요셉의 아들로 기록하지 않고, ‘동정녀인 마리아에게서 낳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셉에게서 낳다’고 하면 예수가 단지 인간의 자식으로만 여겨질까 봐, 의도적으로 처녀의 몸인 ‘마리아에게서 낳다’고 해서, 그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법적인 관련성을 맺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분명히 아담의 후손이지만 마태복음 식으로 보자면 아담의 족보에는 없는 자가 되는 셈이다. 마리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낳았으니까…
인간의 족보는 모두 죽을 족보이다. 예수께서는 아담의 족보를 폐쇄하러 오셨다. 아담은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 신분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누구나 무조건 죄인이었다. 이 굴레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죽는 것이다. 인류가 다 죽었는데 다른 인간이 생긴 것이다. 그가 곧 부활하신 예수님이다. 그리고 여기에 다른 한 인류의 조상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분은 죄를 지은 적이 없으셨다. 죄인일 수가 없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여기에 우리 신자들의 족보가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후손이다.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아담의 족보를 폐쇄하시기 위한 것이고, 그분이 부활하신 것은 새로운 족보를 여시기 위함이다. 아담의 족보에는 생물학적으로 태어나는 자가 들어간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는 영적으로 중생한 자가 들어가게 된다. 아담의 족보에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다시 살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사역이다. 이것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고린도전서 15:45에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라는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첫 아담의 족보를 끝내는 분으로 그런 대표자는 앞으로 다시 없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마지막 아담이라고 한 것이다. 또한 고전15:46-47절을 보자.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여기서는 예수님을 둘째 사람이라고 한다. 두 번째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첫 번 아담이 대표자로서 만든 족보를 끝낸 마지막 아담이며 또한 죄인의 대표자였던 첫 사람의 족보를 끝내고 새로운 족보를 연 둘째 사람인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이야기하는 대표성 원리이다. 우리가 아담과 한 통속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인 것만큼, 이제는 그것보다 더 넘치게 예수 그리스도와 한 통속일 수밖에 없다는 것 역시 사실인 것을 알아야 한다. 아담에게 사실인 것은 나에게도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실인 것은 또한 우리 믿는 모든 자에게도 사실일 수밖에 없다.

내가 범죄하지 않았는데도 아담 때문에 내가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내가 죄를 짓기 전에도 천성적인 죄인이 되어 아담 때문에 죄악 세상 가운데 살면서 부당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모든 신자는 그가 그 칭찬과 축복과 약속들을 받을 아무런 조건이나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 때문에 그것들을 받는다는 것이 사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자들의 기기묘묘한 축복의 자리이다. 기독교의 믿음은 내 행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복된 진리를 붙잡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 아담에게 속했었지만 예수를 믿는 순간 법적인 호적이 바뀌었다. 이 대표성의 원리는 우리 신자들이 꼭 붙잡아야 할 중요한 진리중의 하나이다. 첫 사람 아담은 우리에게 죄와 형벌을 물려주었지만 마지막 아담 예수님은 인간의 이런 비극의 재생산을 끝내시고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모든 인간들은 첫 아담 때문에 잃어버렸던 영생을 회복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이다.


https://youtu.be/GgrN3iZ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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