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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송이보약큐티 / 24년 1월2일 : 창세기 4장~6장. 죽었더라의 족보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1.02|조회수32 목록 댓글 0

<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24년 1월2일(화)>

*오늘의 읽을 말씀: 창세기 4장~6장.
죽었더라의 족보

*묵상자료

1. 죽었더라...의 족보(창5장)


창 4장의 비극적인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을 읽고 나면 이제 창 5장의 죽었더라가 반복되는 아담의 계보가 우리를 기다린다.

타락한 우리 인간들에게 육신의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작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는 아는 권사님의 남편이신 어느 장로님을 위해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었다. 암이 몸 여기저기로 번져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올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간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그 장로님은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그 장로님이 겪었을 죽음의 공포를 생각해 본다. 믿음을 가진 성도라 할 지라도 인간은 인간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와 몰핀 주사를 맞지 않으면 견딜수 없는 육체의 고통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장로님은 이제는 질병과 사망과 눈물이 없는 천국에서 모든 세상 고생을 잊어 버리고 주와 함께 영광중에 있을 것이니 감사하지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계속되는 세상살이의 고달픔과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작년에 암으로 하늘에 가신 그 장로님보다 나의 마음에 더 부담을 갖고 중보기도를 하게한 한 자매의 고단한 인생살이가 있었다. 그녀는 사기결혼을 당하여 모든 재산을 잃고 하루아침에 빈 손이 되었다. 빚더미에 눌리는 아픔보다 사랑하여 결혼까지 했던 사람이 멀쩡히 부인과 자식들을 둔 유부남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어 결혼은 파산되고 그 남자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큰 충격속에서 그 자매는 그래도 주 안에서 살아갈 희망을 잃지 않게 해 달라고 나에게 기도를 부탁해 왔었다.

이 세상은 이처럼 질병과 사망과 눈물과 이별과 아픔으로 가득차 있다. 타락의 결과이다. 그런데 창5장의 사망의 족보를 읽다가 놀랍게도 사망을 당하지 않고 하늘나라로 간 에녹의 기사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주님과 300년을 동행하며 살다가 어느날 그는 하늘로 옮기어졌다. 성경에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간 사람은 에녹과 엘리야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신자들에게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승천하신 주님의 영생케 하시는 축복이 따른다.

그러니 이 험한 세상에서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희망의 끈을 놓지말고 살아가야 한다. 요즘 내가 읽고 고개를 끄덕인 시가 있어 함께 나누려 한다. 김수영 시인의 `풀`이라는 시이다.

‘풀’ 김수영

“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은 이 세상에서 제일로 흔하다. 풀은 자꾸자꾸 돋는다. 비를 만나면 비를 받고 눈보라가 치면 눈보라를 받는다. 한 계절에는 푸르고 무성하지만, 한 계절에는 늙고 병든 노인네처럼 야위어서 마른 빛깔 일색이다. 그러나 그런 역경 속에서도 풀은 한숨을 쉬지 않는다. 풀은 바깥에서 오는 것들을 항상 긍정한다.

풀은 낮은 곳에서 유독 겸손하다. 풀은 둥글게 휘고 둥글게 일어선다. 느리지만 처음 있던 곳으로 되돌리는 불굴의 힘을 풀은 갖고 있다. 풀은 ‘발밑까지’ 누워도 발밑에서 일어선다.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으므로 풀은 이제 무서울게 없다.

24년도의 새날이 우리에게 왔다.

새날을 받고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제에 있다. 어제의 슬픔과 어제의 이별과 어제의 질병과 어제의 두려움 속에 있다. 그러나 어제의 고난은 어제의 고난으로 끝나야 한다. 열등은 어제의 열등으로 끝나야 한다. 주님이 결코 나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신다는 믿음, 마귀는 쉬지않고 무한하게 나를 공격할수 없는 약점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붙잡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태풍을 만난 풀처럼 눕고 울고 극렬한 슬픔 속에 갇혔을지라도 우리는 풀처럼 주님 의지하고 다시 푸르게 푸르게 일어나야 한다. 아멘.

2.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창6:1-4)

성경에서 이 네 절만큼 해석자들 사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킨 구절은 거의 없다. 과연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은 누구를 가르키는가? 이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1) 하나님의 아들들은 타락한 천사들을 말한다. 타락한 천사들이 여자 인간들을 취하여 자녀를 낳음으로 네피림 거인들을 만들었다.

2)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남자 후손들이며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여자 후손들이다.

3) 하나님의 아들들은 일부다처제를 시작하고 왕조를 세운 초창기의 부족장이나 통치자들을 뜻한다. 그들이 여자들을 마음대로 취하고 네피림 거인들을 낳았다.

4) 하나님의 아들들은 남자들이란 관용적 표현이며 사람의 딸들은 여자들이란 표현이다. 창24:13에 보면, “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라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서는 처녀들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이 네가지 해석 중에서 개인적으로 나는 무디성경주석이 지지하는 4 번째 해석을 받아들인다. 1 번의 견해는 천사가 사람하고 결혼을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말하여 성경을 마치 그리스 신화같은 책으로 만드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4 번의 견해가 자연스러운 이유는 창6:3절하고도 매끄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당시의 남자들이 예쁜 여자들만 보면 육신의 정욕에 따라 자기 아내로 삼아 일부다처제가 유행하였고 너무나 성적인 타 락이 심했기에 창6:3에 하나님께서 그 타락성에 환멸을 느끼시고 다시는 사람과 함께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시고 그들의 평균 수명을 120년으로 낮춰 버리셨다.


https://youtu.be/IajQkC4xb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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