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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송이보약큐티 / 24년 1월6일 : 창세기 16장~18장. 감찰하시는 하나님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1.06|조회수31 목록 댓글 0

<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24년 1월6일(토)>

*오늘의 읽을 말씀: 창세기 16장~18장.
감찰하시는 하나님

*묵상자료

1. 하나님을 기다림(창16장)


창16장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여 하갈과 관계를 맺고 이스마엘을 낳아버리는 안타까운 기록이 있다.
아브라함에게 기다림이라는 믿음의 한계는 10년이었다. 그는 가나안에 이주하고 10년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고 자식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일도 일어나자 않자 그는 인간적인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앤드류 머레이라는 탁월한 교회의 스승에게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것임을 그의 책에서 분명하게 배웠다. 기다림은 현대 문화에 맞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든 덜 기다리려고 한다. 그래서 은행에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대신에 자동입출금기나 온라인 뱅킹을 이용한다. 자동차에 탄 채 세차를 하고, 자동차의 창문만 내리고 물건을 사기도 한다. 기다림이 우리의 일상에서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지만 자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서는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다”(wait on God)라는 말에는 예배하고 묵상하는 것이 있다.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의 기쁨과 슬픔을 내어놓으며 경험하는 거룩하고 고요한 순간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다리다”(wait for God)라는 말은 그렇게 멋들어지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고 약속을 주신 것을 알지만, 다음 순간 ‘하나님께서 행동하시길 기다리는’ 상태에 갇히면 거룩한 고요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침묵이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쉽게 채우실 수 있는데도 침묵하실 때는 우리 안에 팽팽한 긴장감이 생긴다. 그러면 우리의 삶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대하는 우리의 영적 태도가 한풀 꺾인다.

우리는 안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생각만 하셔도 그 일이 일어난다는 걸. 그분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생각만 하셔도 그 기도는 응답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릴 때 삶의 기쁨을 쉽게 잃고 황량한 기다림이라는 풍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시편 저자는 이렇게 외쳤다.

“너는 주님을 기다려라.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을 기다려라.”(시 27:14, 새번역)

당신은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기다림은 아무 소용도 없다고요. 하나님은 지금 당장 이 기다림을 끝내실 수 있잖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몇몇 성경의 깊은 진리로 우리의 마음에 파고들어 생각의 초점을 돌리신다. 그분은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삶에 개입하실 최고의 권리가 있다는 걸 우리에게 깨닫게 하심으로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을 밝고 아름답고 편안한 삶에서 위태롭고 어두운 기다림이라는 풍경 속으로 옮기실 권리가 있으시다. 이것을 깨달은 후 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기다림을 발견하기 위해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다림을 이해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주님을 기다려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요구하신다. 다윗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으로 시편에서 그렇게 외쳤다. 기나긴 기다림으로 실망에 빠져 있을 때 나 역시 그분의 속삭임을 들었다. 내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해 그분과 함께 기다리게 하셨다. 혼자 기다린 게 아니었다. 침묵 가운데 기다린 게 아니었다. 하나님과 ‘함께’ 기다렸다.

그분이 내 마음에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이 기다림을 위해 나를 선택하셨기에 그분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는 단계를 내가 하나도 놓치지 않을 거라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다림’이라는 불안한 상황에서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지시를 따르며, 하나님의 거룩한 손바닥에 당당히 서리라고 믿으신다(가장 힘든 일; 기다림, 데비 애커먼)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마침내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 시편 41장 1절

2.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창16:13에 하갈은 고통 중에 하나님을 체험하고는 간증하기를 `하나님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하갈은 교만한 여자였다. 감히 여주인의 특별한 배려때문에 주인 아브라함과 동침하고 임신이 되었으면 여주인의 심정을 헤아리고 겸손하게 여주인에게 감사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정반대였다.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여주인을 멸시했다고 성경은 말한다(창16:4). 배은망덕한 여자다. 그 인격의 천박함이 훤히 드러난다. 당연히 응징이 여주인에게서 떨어졌다. 거의 살해의 위협을 느꼈던 그녀는 주인집을 나와 광야로 도망갔다. 고통스런 도망자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다고 하며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이스마엘`(고통을 들으심)이라 지으라 하시고 하갈에게 주인의 집으로 돌아가 여주인에게 용서를 빌고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성경 본문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은 그 끝이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인간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르시다. 우리 같으면 당연히 이런 못된 여자는 생고생을 하다가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녀의 고통을 돌아보셨다. 우리는 가끔 나 같은 못된 죄인을 정말로 하나님이 사랑하실까 의심이 밀려올 때도 있다. 그 때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신앙을 고백한 하갈의 간증을 생각하며 우리도 용기를 얻어야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지만 하갈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셨다. 우리는 항상 `내 중심`의 사고에 갇혀 있지만 하나님은 만유의 하나님이시며 온 천하 만민의 주인이 되신다.

https://youtu.be/ba_v7VhEM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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