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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송이보약큐티 / 24년 2월16일 : 민수기 33장~36장. 슬로보핫의 딸들의 믿음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2.16|조회수28 목록 댓글 0

<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24년 2월16일(금)>

*오늘의 읽을 말씀: 민수기 33장~36장.
슬로보핫의 딸들의 믿음

*묵상자료들

1. 슬로보앗 딸들의 믿음


민수기 36장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슬로보핫의 다섯 딸들이 보여주는 반응으로 끝나고 있다. 너희는 딸들이라도 아버지의 땅을 상속받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파의 땅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므낫세 자손 지파의 남자에게만 시집을 가라고 명하셨다.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의 반응을 보라.

민36:10~12절에, “슬로브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슬로브핫의 딸 말라와 디르사와 호글라와 밀가와 노아가 다 그 아비 형제의 아들들에게로 시집가되 그들이 요셉의 아들 므낫세 자손의 가족에게로 시집 간 고로 그 기업이 그 아비 가족의 지파에 여전히 있었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민수기 35장까지 이르는 광야 40년의 기록은 사실상 불순종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비판하고 험담하고 불평한 내용들뿐이다. 그런데 민수기 36장의 결론은 매우 아름다운 순종으로 끝나고 있다.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한다. 딸들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나의 결혼까지 참견하시느냐고 불평할 수 있었고, 나는 므낫세 자손의 남자는 싫고 유다 지파의 남자가 좋다고 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자기 결혼에 대한 선택권, 인권도 없습니까?”라고 항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은 일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믿음으로도 모범을 보여주었고, 순종으로도 모범을 보여준 것이다.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명령이 있다.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복음적인 명령들이다. 예배하라. 기도하라. 헌금하라. 선교하라. 전도하라. 찬양하라. 모두 복음적인 명령들이다. 그런데 이런 명령들 말고 신구약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항존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십계명’이다. 그런데 요즘은 십계명을 설교하면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라고 설교하면 ‘율법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율법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비난하는 것이다. 율법주의는 십계명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복음주의에 속한 어느 전도자가 십계명을 지켜야 천국 간다고 설교하는가? 십계명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이 율법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십계명을 기준으로 성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성화의 절대적인 기준이 십계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계명의 법을 어기는 것은 죄이다. 죄는 결코 복잡하지 않다. 예수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십계명을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했다. 야고보서 1장 25절에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십계명의 법을 지켜 행하면 복을 받는다.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점을 보러 다니고 우상에게 절하고 안식일을 범하며 도적질하고 간음하고 살인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웃의 것을 탐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는가? 주여, 주여 하는 자들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지켜 행하는 자는 반드시 복을 받게 된다. 십계명은 자유하게 하는 율법이다. 십계명에 기록된 대로 사는 것이 불편한 것 같아 보여도 전혀 그렇지 않다. 자유를 주는 것이다. 물고기는 물속에 있을 때 비로소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고린도전서 7장 19절에도,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의식법은 중요치 않지만 도덕법은 중요하다는 것이 바울의 주장이다. 세대주의 종말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결국 율법이 아무 쓸모 없다는 식으로 여기게 된다. 율법과 은혜를 서로 원수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계명을 무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어려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도 요한은 이와 관련해서 이런 말을 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구약시대 사람들에게는 십계명이 무거운 것이었다. 그러나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십계명을 지키는 일이 즐겁고 기쁜 일이 되었다.

나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기독교인들이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요일만 되면 어디로 놀러 갈까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저런 일은 절대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성령을 받으니 변화가 나타났다. 주일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기보다 매우 즐거운 일이 되었고, 삶의 활력을 가져다주는 일이 된 것이다. 이는 결코 무거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십계명을 지키며 사는 것은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https://youtu.be/vKo4yHeEb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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