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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송이보약큐티 / 24년 4월8일 : 열왕기하11장~13장. 엘리사 선지자의 임종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4.08|조회수29 목록 댓글 0

<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24년 4월8일(월)>

*오늘의 읽을 말씀: 열왕기하 11장~13장
엘리사 선지자의 임종

*묵상자료

1. 엘리사 선지자의 마지막 가는 길(왕하13장)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친 엘리사는 이제 죽을병에 걸렸고 떠나갈 날이 점점 다가왔다. 이때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는 엘리사를 방문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하였다. 여전히 금송아지 숭배를 지속하고 있었던 요아스 왕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사가 이스라엘 나라에서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하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엘리사는 비록 한 사람이었지만 이스라엘 왕국에서 그는 강력한 병거였으며 또한 기병이었다. 열왕기하 13장 15-17절 말씀을 보자.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취하소서 하니 그가 활과 화살들을 취하니라. 그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니 그가 손으로 그것을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에 놓고 이르되 동쪽으로 창을 여소서 하니 그가 열매 이에 그가 이르되, 쏘소서 하므로 그가 쏘매, 엘리사가 이르되 이것은 주의 구출의 화살 곧 아람으로부터 구출 받게 하는 화살이니 왕이 아벡에서 아람 사람들을 치되 그들이 소멸될 때까지 치리이다 하니라.”

엘리사는 비록 경건치 못한 요아스 왕이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하는 왕이었기에 그에게 마지막 작별의 선물을 주고자 하였다. 그 선물은 바로 아람으로부터의 구출이며 전쟁의 승리였다. 엘리사는 동쪽 창문을 열고 화살을 쏘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 화살은 아람으로부터의 구출과 승리를 의미하는 것임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엘리사는 요아스 왕에게 화살을 취하여 땅을 치라고 말하였다. 그 화살로 땅을 몇 번 치는가는 앞으로 요아스 왕이 시리아(아람)를 몇 번이나 칠 것인가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요아스 왕은 딱 세 번을 치고 멈추었다. 그러자 엘리사는 요아스 왕에게 분노하였다. 어찌하여 세 번만 쳤느냐고, 적어도 대여섯 번을 쳤어야 했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랬더라면 시리아를 완전히 소멸시킬 때까지 칠 수 있었을 텐데,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 텐데, 오직 세 번만 쳤으므로 겨우 세 번 승리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왜 엘리사는 처음부터 몇 번 이상 땅을 치라고 말해주지 않았던 것일까? “땅을 백 번 치십시오. 화살이 부러질 때까지 계속 치십시오.”라고 말했더라면, 아마 요아스가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엘리사는 왜 횟수를 미리 말해주지 않고, 뒤늦게 화를 낸 것일까?

믿음의 길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가진 만큼 소망을 가진 만큼, 성장하고 누리고 전진할 수 있는 길이다. 요아스 왕은 그저 세 번으로 만족했기 때문에 세 번만큼 승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 하루에 성경을 몇 장 읽어야 할까? 하루에 몇 분, 몇 시간 동안 말씀을 읽어야 할까?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루에 얼마 동안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해야 할까? 몇 분, 몇 시간 정도 기도해야 적당할까? 또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형제자매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몇 번까지 용서해야 할까?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일곱 번까지 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일흔 번씩 일곱 번 하라고 하신 것처럼, 정확히 490번만 하면 되는 것일까?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몇 번 쳐야 한다는 횟수를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세 번만 친 것을 보고 화를 내었다. 왜 거기서 만족하느냐고, 왜 거기서 멈추느냐고 책망하였다.

오늘 우리가 낙담되고 넘어질 때에라도 믿음의 길을 멈추지 말고 다시 일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놀라운 승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실 때마다 자주 이렇게 물으셨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예수님께서는 그의 간절한 소망을 물으셨다. 요아스가 정말 시리아로부터 완전히 승리를 원했더라면, 그것이 진정 그의 간절한 원함이었더라면, 그는 화살이 부서질 때까지 엘리사가 그만하면 됐다고 말할 때까지 멈추지 말고 땅을 쳤어야 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메마르고 곤고한 이유는 우리가 주님을 찾고 구하되 적당히 구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기도하고, 두세 번 주님을 부르고, 한두 번 용서하고, 어쩌다 한 번 순종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강력한 활동과 역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요아스처럼 그저 세 번만 치고 멈추기 때문에 완전한 승리를 맛보지 못하고 감당할 수 없이 쏟아 부어 주시는 은혜와 권능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https://youtu.be/LPkC9A3BI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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