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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송이보약큐티 / 24년 8월3일 : 예레미야 6장~8장.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8.03|조회수28 목록 댓글 0

<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24년 8월3일(토)>

*오늘의 읽을 말씀: 예레미야 6장~8장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

*묵상자료

1. 예레미야 성전 설교


거짓된 기독교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고야 만다. 거짓됨을 질타하는 것은 예레미야의 설교에서 자주 나타나는 주제였다. 그는 무가치하고 깨어진 터진 웅덩이 같은 거짓 신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렘 2:13). 그는 하나님의 권위 없이 평화를 설교했던 거짓 선지자들과 끊임없이 충돌했다(렘 8:9-11). 그는 또한 그의 시대를 특징 지웠던 거짓 안전을 비난했다. 역설적이게도 국가적 재앙을 눈 앞에 둔 바로 그 세대에 사람들은 아무 걱정 없이 종교가 그들을 심판에서 면제해 줄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예레미야 7장에 나오는 종종 ‘성전 설교’라고 일컬어지는 이 메시지는 매우 가증한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선포하기에 우리의 아픈 곳을 찌른다. 이 성전 설교에서 가장 현저하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가르침들중 하나는 위선이 가장 경건한 장소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주의 전의 입구에 서 있으라`고 지시하셨다(2절). 여기서의 핵심은 사람들의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방인들이나 예루살렘 뒷골목의 폭도들이나 심지어 배교자들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그 시대 그 사회에서 겉으로 가장 종교적인 이들을 향했다. 그것은 도시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정통적인 교회의 구성원들이었던 존경할 만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향했다. 이 사람들은 바른 장소에 갔을 뿐만 아니라 `주님을 예배하기 위한` 바른 이유로 그곳에 갔다(2절). 겉으로 볼 때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보였다. 그들은 옳은 것들을 행하면서 옳은 곳에 있었다. 예레미야가 이러한 예배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다는 사실(3절)은 그러한 예배 의식이 그 예배자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음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준다. 기계적인 예배는 그저 위선자를 위한 빈약한 위장일 뿐이고 어떠한 교회도 예외가 될 수 없으며 그 예배의식들이 아무리 옳을지라도 예외일 수 없다. 성령의 영감을 받은 통찰력으로 예레미야는 그가 사역하던 지역의 교인들 가운데 나타난 위선의 두 가지 표시들을 인식했다. 우선 위선적 예배자들은 거짓 교의(敎義)를 지지했다. 세 번 반복되고 있는 “여호와의 성전”이라는 문구는 외양적으로는 정통적인 예배자들의 신앙고백을 나타낸다(4절). 이 “여호와의 성전”이란 문구의 반복은 성전의 영적인 본질보다는 구조물에 대한 잘못된 신뢰를 보여준다. 그 성전은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이었고 그곳엔 하나님께서 모든 적들에 대항해 그분의 거처를 지키심에 대한 긴 역사적 유래가 있었다. 그 “성전 신학”은 여호와께서 거하시기 위해 선택하셨던 그 장소에 어떤 마법적인 요소를 부여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성전의식에서 원하셨다고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을 그분께 드림으로 자신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나님은 그곳에 머무시고 모든 일들은 잘 풀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한 것이 아니라 전통과 성전건물과 의식에 대해 신뢰했던 것이다. “종교적 삶”과 “실제적 삶” 사이의 분리는 위선의 공통적 특징이다. 성전에서의 지속적인 예배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활 방식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무시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경시를 드러냈다. 그들이 범했던 죄들의 목록은 십계명의 양쪽 부분을 모두 어겼다. 예레미야 7장 11절은 우리에게 가장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말씀이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비록 성전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었기에 그곳은 가장 거룩한 장소여야 했지만, 그곳은 도둑의 소굴, 악한 자들의 은신처가 되어버렸다. 이스라엘은 모든 상상 가능한 범죄들을 성전 밖에서 저지르고 난 뒤 (9절) 성전에 들어와서는 자신들이 구원을 얻었다고 공언했다(10절). 성전은 그들의 은신처였고 그곳에서 그들은 율법의 요구와 처벌로부터 면제받고자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고 선언하셨다 (11절). 하나님은 정확히 그들이 어느 곳에 있었는지 아셨고, 성전은 그들에게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슬프게도 이스라엘의 미련한 생각은 시대를 거쳐 지속된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은신처로 만들어 왔고 만약 그들이 교회에 다니거나 잠들기 전 기도에서 죄송하다고 말할 수만 있다면 자신들이 어떤 일을 행하든지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롱당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여전히 보고 계신다. 참된 신앙은 위선자들에게 어떠한 피난처도 제공해 주지 못한다.


https://youtu.be/r7cfpF35M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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