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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송이보약큐티 / 24년 9월29일 : 마태복음 7~9장.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신 예수님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9.29|조회수28 목록 댓글 0

<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24년 9월29일(주일)>

*오늘의 읽을 말씀: 마태복음 7~9장.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신 예수님

*묵상 자료

1.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신 예수님(마8:28~34)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은 바다의 광풍도 잔잔케 하시고 질서를 주셨다. 오늘 본문에는 광인을 자유케 하시고 질서를 주신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본래 만드신 천지 만물은 질서의 세계였다. 그러나 인간이 불순종하면서 질서가 깨어졌다. 죄로 인하여 사단이 들어오고 사단은 질서를 깨뜨린다. 예수님은 사단을 쫓아내시고 우리에게 질서를 회복시켜주시는 분이다. 마8:28절을 보자.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예수님이 바다를 건너서 가다라 지방에 가셨다. 그곳은 데가볼리에 속한 거라사 지방이라고도 한다. 그곳에서 귀신들린 자 둘이 무덤에서 나와서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들은 가정과 사회를 떠나서 무덤에 살고 있었다. 무덤은 음산하다. 귀신은 음산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귀신은 사람과의 관계를 끊는다. 가족과 친구의 관계를 끊는다. 무덤은 시체가 있는 더러운 곳이다. 사단은 더러운 곳을 좋아한다. 그들은 몹시 사나워서 아무도 그곳으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귀신이 들어가면 온순한 사람도 사나워진다.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을 한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났다. 29절을 보자.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귀신이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고 찾아와 엎드렸다. 귀신들은 영적인 존재여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잘 알아보았다. 제자들도 아직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였지만 귀신은 귀신같이 알고 있었다. 귀신은 예수님을 알지만 예수님과 관계 맺기를 싫어했다. 29절 뒷부분이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예수님이 오신 것은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서였다. 요일서 3:8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신다. 다른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귀신에게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는데 귀신이 먼저 달려와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요청한다. 마태는 예수님이 오시기만 해도 귀신이 놀라서 달아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권세가 얼마나 큰지 귀신은 예수님을 보기만 해도 무서워 벌벌 떠는 것이다.

30~31절을 보자.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보내 주소서 하니". 귀신은 자신이 쫓김 당할 줄을 알았지만 순순히 물러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돼지에게 들어가고자 하였다. 돼지는 더러운 동물이다. 돼지는 먹는 것이나 자는 것이 더럽다. 귀신은 이렇게 더러운 것을 좋아한다. 귀신은 더러운 돼지를 좋아하고 더러운 죄를 좋아한다. 우리가 귀신에게서 벗어나려면 깨끗해져야 한다. 우리의 더러운 죄를 회개해야 한다. 몸도 깨끗이 하고 환경도 깨끗이 해야 한다.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우리 마음이 죄사함을 받고 깨끗해지면 우리의 내면에 더러운 귀신이 떠나고 성령이 역사하신다. 귀신들은 돼지들과 함께 동반 자살하고자 하였다. 귀신은 죽이는 자이다. 귀신은 사람을 죽이고자 하고 그것도 안 되면 돼지라도 죽이고자 한다. 32절을 보자.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예수님은 귀신을 돼지에게 들어가라고 허락하셨다. 예수님은 왜 돼지들의 희생을 허락하셨을까? 예수님은 돼지 2,000 마리보다 한 생명을 더 귀히 여기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결국은 자신의 목숨까지 인간을 위해서 희생하셨다.
33~34절을 보자.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돼지 치던 자들은 돼지가 죽은 것을 시내 사람들에게 알렸다. 돼지는 죽었지만 귀신들렸던 자는 온전하여 지고 치료받은 소식을 전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동네사람들은 예수님께 손해 배상을 청구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예수님이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였다. 그들은 한 생명보다 돼지를 더 귀히 여겼던 것이다. 가다라 지방은 이런 물질적인 가치관으로 귀신이 살기에 좋은 곳이었다. 이들은 돈 때문에 예수님을 잃는 잘못을 범하였다. 귀신은 하나님보다 돈을 좋아하는 자들과 함께 있기를 좋아한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려면 우리는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 귀신은 이천 년 전 성경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귀신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활동한다. 귀신은 속이는 자이다. 귀신이 인간을 해치면서 귀신이 아니라고 속인다. 귀신은 사람 탓을 하게 하고 환경 탓을 하게 한다. 귀신은 우리를 죽이려는 존재이다. 인간을 절망하게 하고 자살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귀신이 하는 짓이다. 서로 싸우게 하고 미워하게 하는 것도 귀신이 하는 짓이다. 절망이 극단적인 행동으로 나오면 자살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너무 높다. 늙은이에서 어린애들까지 자살을 한다. 이는 사단이 부추겨서 하는 무서운 살인행위이다. 또한 귀신은 사람을 싸우게 충동질한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부터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싸워 왔다. 많은 사람이 이 싸움으로 죽음을 당하였다. 남한과 북한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뉘어 싸웠다. 남한만 해도 이백만 명이 죽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 사회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성경은 이런 절망과 싸움의 근본 원인이 바로 사단과 그 하수인들인 귀신이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귀신의 세력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는가? 이런 귀신에게서 자유를 얻으려면 귀신보다 더 큰 권세가 필요하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귀신보다 더 강하신 구세주이시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히 주시는 분이다. 귀신은 죄가 있고 더러운 곳에 활동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정결케 해야 한다. 마음과 영혼이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이런 예수님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음으로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을 가지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을 수 있다. 우리 가운데 생명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오늘도 충만히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아멘!


https://youtu.be/R2QgdvP-8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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