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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카페이야기

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역사 속 커피 이야기

작성자경아네|작성시간18.04.22|조회수165 목록 댓글 0


알고 마시면 맛있는 역사 커피 이야기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사람들은 커피를 사랑합니다. 아직 청소년 여러분은 커피의 씁쓸한 맛을 싫어할 수도 있지만요. 역사 커피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알고 나면, 커피가 맛있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커피를 마시고 커피로 연결된 세상을 사는 사람을 '호모 커피엔스'라고 한다. 그렇다면 강렬하고 매혹적인 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신의 음료, 검은 액체 커피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리고 현재,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잔의 커피가 가지는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커피의 발견, 에티오피아


커피의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나 증거는 없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마셔왔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널리 알려진 것은 6~7세기경 에티오피아 목동 칼디(kaldi) 관한 이야기이다. 하루는 얌전하던 염소들이 붉은 열매를 뜯어 먹고 밤새 흥분해 춤추듯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양을 돌보던 목동이 사실을 근처 수도원에 알리게 된다. 수도승들은 열매가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덜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원에서 기도할 졸음을 쫓기 위해 먹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 아랍인들, 볶은 커피로 음료를 만들다


커피를 음료로 만들어 즐기기 시작한 것은 대략 15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커피 열매를 실수로 태우게 좋은 맛과 향이 난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 음료로 즐기기 시작했다는 설이다.


이후 커피는 이슬람의 중심지였던 메카로 전해지게 되는데 처음에는 예배 졸음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지만 점차 비종교적인 이유로 커피를 즐기게 되며 카프베라는 커피 하우스까지 등장하게 된다.


커피에 관한 전통들도 생겨나게 되는데 커피에 거품이 없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여겼으며, 거품을 능숙하게 있어야 신부가 자격이 있다고 하여 신부감을 고를 때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18세기 터키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하루의 커피 할당량을 제공하지 못하면 아내가 이혼을 청구할 있는 권리가 규정되어 있을 정도였다.


이처럼 커피는 술이 금지된 이슬람 세계에서 대체 음료로서 각광을 받음과 동시에 음료 이상의 지위를 누리며 중동 지방을 휩쓸고 유럽에 까지 건너간다.



- 유럽 이렇게 좋은 이슬람 놈들만 마시는 말도 된다.


커피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 되었다. 커피가 유입된 초기에는 이슬람에서 건너 왔다는 사실 때문에 악마의 유혹, 이슬람의 와인, 이교도의 음료, 사악한 검은 나무의 썩은 이라고 취급 받았고 마시기를 꺼려하며 인식 또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커피의 향기와 독특한 맛에 매혹되어 점점 인기를 끌기 시작하며 유럽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다. 이에 교황 클레멘트 8세가 직접 커피 맛을 보게 되는데, 이렇게 좋은 이슬람 놈들만 마시는 말도 된다.라는 마디와 함께 커피를 축복함으로써 유럽으로 퍼져 나가게 된다.


이후 예술가와 문학가들의 열렬한 환영과 사랑을 받으며 18세기 커피 하우스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교류의 장소이자 예술의 되었다.


여기 프랑스의 세계적인 대문호 발자크의 커피에 관한 일화가 있다. 그의 일생의 목표는 문학적 성취 아닌 한눈에 반한 유부녀 백작부인과의 결혼이었다. 그는 백작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그에 걸맞은 지위와 재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하루에 커피를 수십 마셔대며 잠도 자지 않고 18년간 글을 썼다.

마침내 51세에 백작부인과 결혼하게 되지만 결혼한 5개월 만에 죽게 되는데 사인이 다름 아닌 카페인 과다복용이었다. 빨리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약물처럼 복용한 커피로 인해 요절해 버린 대문호의 황당하고도 허망한 일화이다.


- 미국, 자유에 대한 표현


미국인들은 보스턴 차사건 , (Tea) 대신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다. 당시 미국인들에게 홍차 대신 커피를 마시는 것은 자유에 대한 표현이고 독립운동이었다. 커피는 자연스럽게 미국의 국민 음료로 자리 잡게 되고 세계 커피 소비량 1위를 차지 정도로 커피를 즐기게 되었다.


- 조선의 커피 마니아 고종황제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애호가는 고종황제로 1896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관에 머무르며 마시기 시작하면서 커피 광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고종의 커피 시중을 들던 독일인 탁이 정동 구락부에서 최초의 커피 점을 열었고 1920년대부터 명동 종로 등지에 커피 들이 생겨나면서 소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미군부대에서 원두커피와 인스턴트커피가 공급되어 대중들이 즐기는 기호음료로 자리 잡게 되었다.


- 공정무역의 필요성



잔의 커피를 마시는 행위 안에는 역사, 문화, 사회, 정치, 경제적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다. 커피는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은 물품이다. 석유가 단순히 연료만의 의미로 한정 짓기엔 너무나 힘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커피 역시 단순한 음료의 의미를 넘어서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커피의 역사 안에는 강대국의 식민지 정책과 신자유주의 확장의 무기로 쓰인 슬픈 아픔의 역사가 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이제 유명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스타일을 따진다거나 카라멜 마끼아또의 맛을 따지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커피의 생산과 소비에 너무나도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패러다임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커피를 사서 마시는 많은 도시인들과 커피콩을 직접 손으로 따는 사람들의 삶의 질의 차이는 천당과 지옥만큼이나 크다.


자신이 직접 따온 콩을 자루에 짊어지고 며칠을 걸어 산을 내려와 팔아도 도시에서 파는 아메리카노 값도 되는 경우를 바라보며 공정 무역 커피 시장의 활성화 필요성이 절실하다. 비싸다는 이유로 공정무역 커피의 소비를 주저한다면 언젠가 십배, 백배의 생태적, 사회적 비용을 치를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나라의 커피 시장은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의 승자독식체재로 굳어지며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문화와 삶의 여유는 커피라는 상품과 함께 없는 추세가 되어 버렸다. 결국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상품을 구매하는 마케팅의 대상만으로 취급당할 커피를 마심으로써 자신을 바꿀 기회와 담론을 펼칠 기회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커피 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호모 커피엔스가 것인지 아니면 트렌드를 쫓아다니는 단순 구매자가 되어 주머니를 털릴 것인지 정해야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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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경청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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