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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울고 있는 내가 있어요

작성자김요한|작성시간16.11.28|조회수68 목록 댓글 0

내 안에 울고 있는 내가 있어요

 

   상처 없는 사람이 있을까? 상처 없는 하루를 사는 일이 가능할까? 하루를 살아도 상처 없이 하루를 접고, 긴장 없이 하루를 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한 희망사항일 뿐, 우리는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물안개 질펀하게 피어오르듯 헤아릴 수 없는 열등감과 두려움, 상대적 가난과 낙심 앞에서 모래알처럼 작아짐을 느껴야 한다.

 

  왜 이래야 하는지도 모른 채 꼭꼭 묻어놓은 상처들을 헤집어내야만 한다. 그럴 때면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옥죄임을 경험하게 된다. 깎아내도 또 다시 자라나는 손톱처럼 아문 듯 싸맨 듯 하던 묵은 상처들까지 합심으로 내 안에서 시위할 때면 간신히 그려놓은 미래의 그림들이 조각되어 내 앞에 흩날리곤 한다.

 

  누가 뭐라 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무엇 때문도 아닌 듯 싶다. 그냥 살아 있음이 상처가 될 때가 있다. 그냥, 내 안에 울고 있는 내가 싫을 때가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일생은, 상처 인생이라고 말함이 어떨까 싶다. 아픈 사람은 건강한 사람 곁에 있음으로 상처가 된다. 안 되는 사람들은 잘 나가는 사람들의 소식을 들음으로 상처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요한 사람들의 하소연에도 상처가 된다. 뚱뚱한 사람들은 날씬한 사람이 스쳐만 지나가도 상처가 되고, 대형 마트에서 빈바구니 초라하게 들고 나오다가 가득 채운 쇼핑카를 바라보다 상처로 남고, 못난 사람들은 잘난 사람 옆에만 있어도 상처가 패이고, 큰 교회 옆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교회는 초라하다.

 

  기도의 응답이 없을 때, 기도하지 않고도 형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낙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우리는 부모님을 잘못 만난 상처, 못 배운 상처, 건강 잃은 상처, 부모 잃은 상처, 건강치 못한 상처, 키 작은 상처, 너무 키 큰 상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 결혼 잘못한 상처, 결혼 못한 상처가 조개 속의 모래알 같이 숨겨져 있다.

 

  냉소적인 웃음에도 상처가 되고, 거친 말 한마디에도 상처가 되고, 불친절함에 상처받고, 거절감에 상처를 입으며, 침묵 앞에 상처를 입는다. 월세로 사는 사람들은 전세로 사는 사람들이 상처 되기도 하고, 실직자들은 이른 아침 종종걸음으로 직장을 향하는 모습들을 바라봄 속에 흐느낌의 상처가 있다. 우울한 날에는 해맑게 웃는 사람들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

 

  이 뿐인가? 우리의 일상은 사람에게 상처받음으로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서도 상처를 받는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 잘 믿었는데 상황이 더 나빠질 때, 불러도 대답 없으신 이름일 때, 힘쓰고 애써도 침묵하시며 도우심이 안 보일 때, 그 때 우리는 치명적인 상처의 바다로 침몰하게 된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 걸까?” “하나님도 날 거절하시는 걸까?” “그 분의 약속은 사실일까?”

 

  이와 같은 상처로 울고 있을 때, 우리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의 상처를 생각하면, 나의 상처는 태평양 바다의 물 한 컵도 안 됨을 안다. 나의 버림받고 거절당한 상처, 내 인생의 모든 고통과 상처라 할지라도 어찌 주님의 상처에 비길 수 있을까? 영원 전부터 함께 하셨던 하늘 아버지께 십자가에서 버림받았던 예수님의 그 고통스런 상처를 우리는 무엇으로 헤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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