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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칼럼

김석중 / 합창과 믿음의 10가지 공통점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10.03|조회수244 목록 댓글 2

합창과 믿음의 10가지 공통점

김석중 / 성산콰이어 지휘자

1. 내가 무엇인가 하려하는 순간, 문제는 시작된다.

남보다 나를 낮게 여기고,
나를 드러내기 보다 공동체에 녹아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소리를 드러내기 보다 남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공동체 안에 나를 조화롭게 감추는 것이 진정한 하나됨이다.

합창에 제일 먼저 고려되어야 하는 테크닉이
unison, blending 그리고 balance 이듯
믿음의 공동체에서도 필요한 것은 하나됨과 조화 그리고 균형.

믿음이란 내 안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는 것이다.
세상과 나는 간 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것.
합창도, 성악도 뭔가를 들려주려고 하기보다
들리도록, 흘러가도록 내어 맡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2.머리로 아는 것보다 몸으로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는 것과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렇게 되지않는다면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는대로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 안다는 것이 무슨 소용있겠는가.
새벽기도가 주는 유익을 아는 것과
새벽에 기도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아는 것과 아는대로 사는 것 또한 차원이 다르다.

합창도 신앙도
형식지 만으로도 부족하고
암묵지 만으로도 부족하다.

형식지와 암묵지의 끝없는 순환 가운데
지식과 감각을 훈련해나가야 한다.
머리의 기억과 몸의 기억이 같이 가야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쌓는 것과 더불어
상황속에서 말씀하시는 음성에 민감해야 한다.

아는 것, 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은 연습과 훈련으로만 가능하다.

합창도 신앙도
그 비결은 결국 훈련이다.

3.B와 D사이의 C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이다”
인생은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며,
선택은 중요하므로 각자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의 모든 생각에 동의할 순 없지만
복잡한 인생을 B와 D사이의 C라고 간단, 명쾌하게 말한 그 정리를 빌려본다.

우리 믿음의 여정 또한 과연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이듯
합창 음악도 그러하다.

초점이 흐릿하고 막연한 Blur 와
분명하고 명확한 Definite 사이의
도전 Challenge 이고 Choice 선택이다.
(사실 연주를 위한 모든 악기가 다 그러하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나 음악의 시작이 각각 B 인것은 확실하나
D 또한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것.
우리의 죽음이 새로운 시작이듯
연습과 도전을 통해 Definitely 하게 되었어도 그것은 곧 시작일 뿐이다.
기술이 완성될 때 비로소 예술은 시작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악보위에 수없이 흩어져있는 흐릿한 blur 상태의 음표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그루핑하여 Definite한 의미로 연결하기위해
끊임없이 선택하고 creative 하게 도전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과정이라고 부르지만
하나님은 '목적'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믿음에도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우리 정체성이며
이것이 곧 하나님의 목적이다.
합창도 음악도 연주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연주를 위한 눈물겨운 도전과 선택이 우리를 아티스트로 만든다.

믿음은 Blur 희미함과 Definite 명확함 사이의 Challenge 도전 이다.
음악도 그러하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12)

4.몇 번 잘 되었다고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훈련되어야 한다.
훈련이 잘 된 부분은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어진다.
그러나 늘 깨어 정신차리고 있지 않으면 순식간에 엉망이 되고 만다.

성악도 악기도 우리의 믿음도 결국 몸의 기억이 중요하다.

항상 잘 될수 있는 비결은 결코 환경에 있지않다.
좋은 환경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진 않는다.
(아담이 범죄했을때의 환경은 인류역사상 최고의 환경 - 에덴동산이었음을 기억하라)

잘됨의 기억을 새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할 때 잘 되었는지
잘 되었을 때 몸과 마음과 정신의 느낌이 어땠는지
기억하고 또 기억하라.

옛 성도들의 찬송시에
내 영혼 주안에 닻을 내렸네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주의 사랑의 줄로 나를 굳게 잡아 매소서 와 같은
다소 거친 표현이 등장하는 것이 그리 놀랍지도 않을 만큼
우리의 나쁜 습관, 편함을 추구하는 습성은 깊다.

합창도 믿음도 하나님과 우리의 합작품이다.
하나님이 하실일을 우리가 할 수도 없고
우리가 할 일을 하나님이 대신 해주시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파트연습 제대로 시켜주신다면 정말 좋겠다ㅋ)

우리에게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 필요하다.
그분은 언제나 100% 이시니.

5.집중과 지향점이 항상 일정해야 한다.

워밍업을 통해 모음과 음정, 소리의 focus를 맞추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하루의 시작을 말씀과 기도로 열어 나의 모든 감각을 하나님께로 맞추는 것과 같다.
합창에 있어 워밍업은 오늘 하루에 있어 Q.T 인 셈이다.
합창을 하다가 잘 되지 않을 때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서 소리를 맞추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삶 가운데서 길을 잃었을 때 말씀으로 돌아와 그 분의 뜻에 집중해야 한다.

말씀은 네비게이션이라기보다는 나침반이다.
악보 또한 제한적인 평면에 그려진 약도이다.

결국 모든 것이 다 들어있긴 하나
진득하고 섬세한 통찰이 말씀과 악보의 우물에서
진리와 깊은 음악의 진수를 길어 올릴수 있다.

발성도 포커스를 일정하게 집중해야 하고
곡의 분석과 가사의 해석도 지향하는 바가 분명해야
음악과 문학간 통섭이 일어나지 않을까.

소리가 기호로 그려진 음표의 원시림속에서 길을 찾는 뮤지션처럼
우리의 믿음 또한 복잡한 삶의 길에서 어디가 숲이고 어디가 늪인지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집중하고 지향점을 찾는 것
해답은 언제나 말씀과 악보에 있다.

6.구별된 호흡과 적절한 긴장이 필요하다.

세상 사람들과 같은 호흡으로 하나님의 백성 된 삶을 살 수는 없다.
단거리 육상선수의 호흡과 마라톤 선수의 그것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시를 읽는 호흡으로 장편소설을 읽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건조한 소식을 전하는 뉴스 앵커의 호흡과 발성이 듣기는 좋아도
내 삶에서 일어나는 드라마틱한 그 분의 역사를 노래하기엔 적합하지않다.

긴장 없이 유행가를 부르는 호흡으로 찬양을 부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물론 대중음악이나 가곡을 부를 때도 긴장은 사용하나
그 긴장과 그 긴장은 표기는 같으나 내용은 다른
동음이의의 단어라고 나는 생각한다.

숨은 있으나 적절한 긴장이 없을 때 영혼이 없다는 평을 듣기 쉽다.
긴장은 있으나 호흡이 다를 때 청중의 귀에서 가슴까지 도달하기 어렵다.

이 땅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로 사는 일에도
하늘을 향한 깊은 호흡과 영적전쟁의 적절한 긴장이 요구된다.

합창도 그렇다.
독주악기나 독창할 때의 호흡과는 양과 질이 다른 특별한 숨이 필요하다.
배려의 호흡이요, 절제의 호흡이며
때론 숨가쁜 동료를 위해 수고를 대신 짊어지는 호흡이기도 하다.

호흡과 긴장은 결국 '에너지'다.
생명력 있는 연주와 믿음의 기초인 셈이다.

7.알면 알수록 단순하다... 그런데 어렵다.

끊임없이 익히고 또 익혀야 내가 원할때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있는 것 처럼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하나님의 때에 사용되어진다.

거의 20년 쯤 지난 이야기.
각자가 지휘하는 교회 성가대나 합창단 리허설에
윤학원 선생님을 모시고 동기들이 참관하는 수업이 있었다.
수업은 학생 리허설 후 선생님의 리허설이 이어지고
따로 모여 서로 피드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날은 30명 정도되는 성가대 였고 특히 소프라노는 거의 60대는 넘어보였다.
지휘자의 리허설이 진땀속에 30분 정도 진행되었는데
누구나 상상 가능한 그런 참 정겹고 넉넉하고 푸근한 사운드.

드디어 윤학원선생님이 대원들 앞에 서셨고
불과 5분이 안되어
우리는 마법같은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분명 아까 그 분들이 분명한데
소프라노가 인천시립의 사운드를 내는 것.

그날의 충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선생님의 지도는 너무나 단순했다.
평소에 이미 가르쳐주신것 외에 다른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그저 정중한 모음. 정형모음.
말을 가르치고 모음의 바른 자리에 그대로 소리를 대는 단순함
방금 전까지 상기된 얼굴로 Evans의 '축복'을 목놓아 부르던 그 분들은
어느새 해맑은 소녀의 얼굴로 더 청아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날 선생님의 비법을 제대로 적어오겠다고 준비한 나의 두툼한 노트에는
딱 한줄만 기록되었다.

"기본만 잘하자"

아는 것만 잘하면 된다.
믿음도 단순하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없어라
- 장수철(1917~1966)

주일학교 때 다 배웠다.

8.농부의 손이 필요하다.

믿음과 음악은 흡사 농사와 같다.

씨를 심고 물주고 거름주고 김매고
벌레잡고 여우잡고 열매거두기까지
쉼없이 해야 할 일을 빠트리지말고
그 날의 분량을 기꺼이 날마다 해야한다.

이른비와 늦은비 그리고 적당한 바람과 햇살은
그 분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해야할 일은 누가 대신 해줄 수도,
아무도 대신해 주지도 않는다.

벼가 쌀이 되는데 88번의 농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88세를 미수라고 하지않나....
(쌀 미(米) 한자는 두개의 여덟 팔(八) 사이에 열 십(十) 자가 있다)
하물며 한 곡이 완성되기 까지 몇번의 손길, 몇번의 연습, 몇번의 한숨과 좌절이
필요할까.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일에도 손이 많이 간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나 말씀을, 매일 읽어야 한다.
그러나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말씀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 밑줄 그어야 한다.

농사짓는 마음과 농삿일을 할 때 농부라고 부르듯
매순간 탁월함을 추구하고 오직 한 순간을 위해 연구하고 연습할 때 아티스트라고 불린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내 일을 하며 오늘을 살아낼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얻게 되듯.

바울은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롬10:15) 라고 기록한다.
입이 아니라 발이 아름답다고.

가자, 연습하러.

그리고 입증하자.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음악을

9. 준비에 실패하는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하나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져 연주되기까지 수백번의 리허설이 필요하다.
리허설에 발견된 문제를 짚고 가지않으면 꼭 그 부분에서 사고가 난다.
음악 뿐 아니라 무대장치, 음향, 조명, 동선, 심지어 인사하는 순서와 위치까지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망한다.
연주 잘하고 행사 망치는 경우를 여러번 보았다.

특히 합창에서는 단원 한사람 한사람 안색과 컨디션을 살펴야 한다.
특별한 순간을 맡은 단원들은 묻고 또 물어 이상없는지 체크해야한다.
무대위에서는 모든 것이 변수다.
가장 믿었던 멤버가 실수하는 경우, 가장 자신있는 곡을 망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겪었는지 모른다.
상수는 없다. 나 스스로 조차도 모든 것이 변수다.

모든 것이 변수라는 사실만 상수다.

성경 안에 믿음의 선진들의 삶은 우리 믿음의 리허설이다.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겪지 않고도 배우고
싸우지 않고도 이기며, 가장 적절한 때에 그 분이 오실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성경을 매일 묵상하고 상고함으로써 삶을 리허설 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최고의 스승은 무대다.
실제 연주가 실력을 더 성숙시키듯
실제 삶 가운데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개입을 깊이 체험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깊은 평안함과 자유함을 준다.

합창의 준비는 리허설과 당일의 현장을 꼼꼼히 점검하는 것이다.
믿음의 준비는 오직 기도와 말씀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그 분께 맡겨야 한다.
내일과 내일 무대는 나의 것이 아니어서
내겐 여전히 mystery 이므로.

10. 모든 역사는 '들음'에서 시작된다.

리허설 rehearsal의 어원은 repeat 이지만
자세히 보면 hear 를 품고 있다.
잘 듣는 시간인 것이다.
합창을 make up하고 build up 하는 모든 과정의 시작은 들음이다.
잘 들어야 잘 고칠수 있다.

지휘자 뿐 아니라 단원들도 서로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내 소리가 선하게 작용하는지 튀지는 않는지
크기나 모음의 모양이, 비브라토의 개성이 전체에 잘 녹아드는지
듣고 또 들어야 한다.

지휘자가 단원들의 소리를 들어야 하듯
단원들은 지휘자의 말에 귀기울여야 한다.
서로를 향한 최고의 존중은 들음에서 시작된다.

왜 들어야 할까....
우리는 합창이든, 솔로든, 악기연주자든
뮤지션의 본질이 들려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듣는 그 소리가 우리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그리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레마)으로 말미암는다.(롬10:17)
들음에는 단순히 청취를 넘어 듣고 그대로 따른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배웠다.(삼상15:22)

합창도 믿음도 잘 듣고
들은 그대로 리액션하는 것이 전부다.
얼마나 세밀하게 듣고 구체적으로 고쳐 행하느냐가
명품 연주, 명품인생을 가른다.

합창을 배우며 믿음을 좀 더 알게 되고
믿음을 배우며 합창을 좀 더 알게 된다.

합창과 믿음.... 그것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더 즐겁고 유쾌한 열정의 여정이 된다.

P.S. 열한번째부터는 합창과 (음악과) 믿음을 함께 고민하며 사는 훌륭하신 페친 , 페선생님들의 몫입니다.
부디 제 글을 이어가셔서 '합창과 믿음의 100가지 공통점' 이란 책 한권이 완성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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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0.04 한정우: 합창과 믿음의 공통점...
    *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능력이 있다!.

    소리는 보이지 않지만 잘 블랜딩 된 합창은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지만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명징하게 보여주시는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 작성자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0.04 류무용: 너무 공감되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십년 가까이 혼성듀엣팀을 결성해서 활동 해오고 있으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부분이
    ”유니즌“이었습니다~

    첫번째 쓰신 글중 합창에 있어서 중요한 테크닉에 있어서 유니즌, 블렌딩, 밸런스 를 말씀하신것을 읽고
    특히 더 공감 되었던 부분이었구요~~

    좋은 블렌딩과 좋은 밸런스를 위해 지금도 유니즌을 가장중요하게 생각하며 연습하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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