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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칼럼

강학종 / 환난과 핍박 중에도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10.04|조회수26 목록 댓글 0

환난과 핍박 중에도

강학종 / 하늘교회 목사

전남 영광에 있는 염산교회는 순교자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6·25 때 교인 2/3인 77명이 순교했다.
죽창에 찔려 죽기도 하고, 돌이 목에 묶인 채 수장 당하기도 하고, 생매장을 당하기도 했다.
그 교회 교인들이 순교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본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전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찬송하며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수장을 당하면서도 허우적거리는 대신 그 찬송가를 불렀고, 죽창에 찔리면서도 그 찬송가를 불렀다.

염산교회는 1947년에 설립되었다.
교인들 대부분 예수를 주로 고백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은 교회에서 참 즐겨 부르는 찬송인데 예배 때만 부를 게 아니라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부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난리가 끝났다.
1/3 남은 교인들이 모였다.
예배를 드리는데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은 차마 부르지 못하고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를 불렀다.
그때 그들이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들은 분명히 환난과 핍박 중에도 신앙을 지킬 마음으로 불렀을 것이다.
혹시 우리가 예배 때 그 찬송가를 부른다면 과연 그때 그들과 같은 마음일까?

신앙이 있으면 그 신앙은 모름지기 환난이나 핍박이 있을 때도 나타나야 한다.
텅 빈 운동장에서는 운전을 할 수 있는데 차가 다니는 거리에서는 운전을 못하는 사람은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없으면 신앙을 나타낼 수 있는데 환난이나 핍박이 있을 때는 신앙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신자가 아니다.

환난과 핍박을 유혹으로 바꾸면 어떨까?
지난 2019년 12월 2일에 환경미화원 A씨가 점유 이탈물 횡령 혐의로 광주 북부 경찰서에 불구속 입건되었다.
거리를 청소하다가 현금 일천 만원 뭉치를 주워서 몰래 챙긴 혐의다.
한 건설업자가 근로자들에게 지급할 급여를 실수로 흘렸는데 그것을 발견하고는 주머니에 넣은 것이다.
피해자는 당연히 신고를 했고 경찰은 현장 폐쇄회로 영상을 분석해서 A씨를 검거했다.
이런 경우에 A씨와 우리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였으면 당연히 주인을 찾아 돌려줬을 텐데 유독 A씨가 탐심이 많았을까?

아간의 범죄는 아간 혼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죄가 아간에게 투영된 것이다.
이런 아간에 대한 처벌은 심히 엄중했다.
아간만이 아니라 아간한테 속한 모든 것이 다 처벌 대상이었다.
아간이 숨긴 금과 은, 외투는 물론이고 아간의 아들들과 딸들, 아간의 소들과 나귀들, 양들과 아간의 장막과 아간에게 속한 모든 것을 다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온 이스라엘이 돌로 치고 불살랐다.
그러고는 후세에 경계하는 뜻으로 돌무더기를 쌓았다.

애초에 하나님께서 여리고에 속한 것은 다 멸하라 하셨으니 아간이 숨긴 금과 은, 시날산 외투는 같이 불태우는 것이 맞다.
그런데 범죄 당사자인 아간은 물론이고 아간의 자식들과 가축들까지 전부 같은 취급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또 있다.
바로 아말렉이다.
아말렉에 속한 것은 어린아이나 가축을 막론하고 다 멸하라 하셨다.
아말렉은 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죄에 속한 것은 철저히 멸해야 한다.

아간한테 같은 원칙이 적용되었다.
아간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죄가 표출되었으니 당연한 셈법이다.
아간한테 속한 것은 다 도려내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보호해야 한다.

고대 로마에서 시행되던 가장 무거운 형벌은 ‘10분의 1처형’이라는 군법이었다.
예를 들어 집단으로 군율을 어기면 이런 벌을 받았다.
추첨을 해서 10분의 1 비율로 처형하는데, 뽑힌 사람은 동료들의 죄를 모두 짊어지고 심한 채찍질을 당한 후 참수형에 처해졌다.
이것이 가장 무거운 벌인 이유는 자신도 같은 죄를 지었으면서 동료를 처형하는 일을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 동료한테 채찍질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채찍질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간을 돌로 치는 이스라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는 식이면 곤란하다.
그들이 돌로 친 것은 아간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죄여야 했다.
이글거리는 증오의 눈빛으로 아간을 노려볼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죄를 노려보아야 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바벨론에서 만든 옷을 더 좋아하고 하나님의 언약보다 은이나 금을 더 좋아하는 마음은 당연히 돌로 쳐서 죽이고 불에 태워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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