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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칼럼

강학종 / 도피성은 하나님의 언약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11.17|조회수36 목록 댓글 0

도피성은 하나님의 언약

강학종 / 하늘교회 목사

“금년에는 꼭 성경 일 독 해야지” 마음먹고 창세기부터 차례로 읽다 보면 도피성 얘기가 상당히 자주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예표하니 당연히 그렇다.
그런데 처음부터 제대로 얘기하지 않는다.

출 21:13에 “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내가 그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라고 되어 있다.
‘도피성’이라는 얘기도 없고, 그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살짝 말만 흘린다.
그러다가 민수기 35장에서 도피성 제도의 운영 계획을 밝힌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도피성을 정해서 부지중에 살인한 자를 피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한다.
그런 도피성을 강 이쪽과 저쪽에 세 성읍씩 두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나중에 신 4:43에서 요단 동편에 설치할 세 도피성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밝힌 다음, 신명기 19장에서 다시 한 번 도피성 제도를 설명한다.
그리고 지파별로 땅을 다 나눈 다음에 비로소 도피성 제도에 대한 모든 청사진을 공개한 것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도피성에 피한 사람은 왜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실수로 살인을 한 사람은 도피성에 들어갈 수 있어도 보복자는 들어갈 수 없을까?
그런 법은 없다.
도피성에 피한 사람을 지키는 것은 도피성의 성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다.
노아 시대에 방주 안에만 구원이 있었던 것처럼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에게는 도피성 안에만 구원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제도를 왜 마련하셨을까?
도피성으로 피하는지, 피하지 않는지를 확인한 다음에 피하면 살려주고 피하지 않으면 죽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 받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그렇다.
믿으면 구원시켜 주고, 믿지 않으면 멸망시키기 위해서 보내신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라도 멸망하지 않고 구원 얻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보내셨다.

그래서 당시 제사장이 하는 일 중의 하나가 도피성으로 향하는 길을 항상 정비하고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었다.
행여 도피성을 찾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늘 신경 써야 했다.
우리 역시 한 사람이라도 더 그리스도의 은혜를 맛볼 수 있도록 늘 노심초사해야 한다.
“예수를 믿으려면 믿고 싫으면 관둬라!”가 아니다.
도피성으로 향하는 길이 험하거나 유실되지는 않았는지 늘 살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책임이다.

전도를 해보면 이런 책임을 실감할 수 있다.
사실 전도를 하는 사람은 아쉬울 것이 없다. 그런데 마치 자기가 아쉬운 것처럼 통 사정을 한다.
다음 주일에 같이 교회 가기로 했으면 행여 주중에 마음이 변하지나 않을까 확인도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정작 자기 일이 되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아버지나 남편을 죽였다고 하자.
아무리 실수였다고 해도 그것을 실수로 받아들일까?
세상 사람은 다 속여도 자기 눈은 못 속인다고 하면서, 실수를 가장해서 고의로 죽였다고 핏대를 세울 것이 뻔하다.
도피성으로 통하는 길을 정비하는 것은 고사하고 도피성 제도 자체를 부인할 것이다.
자기와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 은혜 받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라고나 할까?

하나님께서 도피성 제도를 말씀하셨다고 해서 기꺼이 그 제도에 순응할 만큼 인간은 선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섬기고 안식일을 범한 것처럼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상징하는 이런 제도를 선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늘 자기 정욕대로 일을 처리했을 것이다.

이처럼 패역한 인간들이 급기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죄까지 범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고살(故殺)이 아닌 오살(誤殺)로 간주하셨다.
만일 우리가 이웃을 정죄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스리셨더라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죄는 영락없는 고살(故殺)이다.
인류 역사는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노골적인 적대 행위를 오살(誤殺)로 간주하셔서 오늘도 우리를 구원으로 초청하신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머리 위에 머물러 있음을 모든 사람들이 알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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