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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학종 / 우리는 그리스도인인가, 그리스도인이 될 뻔한 사람인가?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12.18|조회수39 목록 댓글 0

우리는 그리스도인인가, 그리스도인이 될 뻔한 사람인가?

강학종 / 하늘교회 목사

얼마 전에 읽은 책에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인이 될 뻔한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이 있었다.
예수님을 찾아왔다가 돌아간 부자 청년이 그리스도인이 될 뻔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고심 끝에 예수님께 사형 판결을 내린 빌라도나 심지어는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도 그리스도인이 될 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은 모르지만 성경에 나오는 수두룩한 이스라엘 사람들도 전부 그리스도인이 될 뻔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일까, 그리스도인이 될 뻔한 사람일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뻔한 사람이라면 관계없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의 삶을 점검해봐야 한다.
우리의 기준은 항상 예수님이다.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께 고정되어야 한다.
예수님께 중요한 일이 우리한테도 중요한 일이고, 예수님께 중요하지 않은 일은 우리한테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 사람을 신자라고 한다.
신자의 인생은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함께 가자는 말은 아무한테나 하는 말이 아니다.
주님도 아무한테나 함께 가자고 하지 않는다.
함께 가자는 권유는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장 복된 초청이다.
하지만 그 초청에 응하려면 결단이 필요하다.
본회퍼가 한 말이 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적에는 먼저 주님께 와서 죽으라고 부르신다.”

교회 성장을 얘기할 때마다 “앞문은 열고 뒷문은 닫아야 한다”라는 말이 단골로 나온다.
사람들을 교회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되, 이탈자가 생기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얘기다.
새 신자가 계속 들어오고 나가는 교인이 없으면 교회는 자연히 성장할 것이다.

마크 데버가 쓴 <건강한 교회의 9가지 특징>에는 전혀 다른 말이 나온다.
우리가 정말로 해야 할 일은 앞문은 닫고 뒷문은 여는 일이라고 한다.
교인이 되는 것은 어렵게 만들고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일은 더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인지 모른다.
교회에 대해서 우호적인 감정만 있으면,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부인하지만 않으면 그리스도인인 줄 안다.
자기가 세상을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것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다.
일주일에 한 번 특별한 일이 없을 때 교회 가면 됐지, 뭘 더 따진단 말인가?

잠깐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예수님을 떠난 부자 청년이 무엇을 했을까?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다.
무엇을 했든지 예수님과 상관없는 일이니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혹시 교회를 세우지는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 교회는 자기 욕심을 포기하지 않은 채 영생을 얻으려는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결국 이 세상에 두 개의 교회가 있는 셈이다.
하나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시작한 교회이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한 것처럼, 그 교회는 은과 금으로 힘을 삼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힘을 삼는다.
은과 금은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있다.
부자 청년이 세운 교회는 그렇지 않다.
자기들한테도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있다고 우기면서 한편으로는 재물을 자랑할 것이다.
갑자기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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