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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칼럼

강학종 / 우리는 누구의 하나님께 기도하는가?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7.03|조회수34 목록 댓글 0

우리는 누구의 하나님께 기도하는가?

강학종 / 하늘교회 목사


엡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오래전의 일입니다.
어떤 분이 다른 분에게 얘기하는 것을 얼핏 들었습니다.
“힘들어도 새벽기도 나오세요. 기도할 게 얼마나 많아요? 딸도 내년에 고 3이잖아요. 성경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말씀도 있어요.”

그분이 인용한 말씀은 벧전4:7 말씀입니다.
뭔가 이상한 점이 있지 않습니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마당에 딸이 고 3인 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자기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기도에 힘써야 하는 사람들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면 어떤 기도를 해야 합니까?
내일이 이 세상 마지막 날이면 남편 돈 잘 벌게 해달라는 기도도 소용없고, 아이 공부 잘하게 해달라는 기도도 소용없고, 가족들 전부 건강하게 해달라는 기도도 소용없습니다.
결국 그때의 기도는 주님 만날 준비를 위한 기도라야 합니다.

본문은 에베소교회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기도와 차이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주로 자기가 당면한 문제를 놓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일은 이렇게 해주시고 저 일은 저렇게 해주십시오”가 우리의 기도 내용입니다.
바울의 기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초점이 이 세상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에베소교회 교인들에게 이런 일이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에베소교회 교인들이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바울의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호칭은 상당히 다양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 치유의 하나님,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시는 하나님,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하나님, 이 세상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시고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 등 끝이 없을 정도로 나열할 수 있습니다.

혹시 기도할 적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분, 계십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고 이삭의 하나님이고 야곱의 하나님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 기도할 이유는 없습니다.

저를 개인적으로 아는 분 중에 가끔 저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분이 있습니다.
주로 알았다고 답합니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딴소리도 합니다.
“집사님네 목사님께 얘기하세요. 왜 남의 교회 목사에게 얘기하는 거예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만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러니 기왕이면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지, ‘남의 하나님’께 기도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는 말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왜 ‘자기의 하나님’을 놓아두고 ‘예수님의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에베소서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나온 내용은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신자가 신자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속된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예수 빼면 시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 되시는 예수님에게도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물며 우리에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우리의 주인이며 우리의 존재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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