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은혜로 아는 것이 신앙의 시작
강학종 / 하늘교회 목사
교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기도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백번 지당한 말입니다.
하지만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기도하니까 되었다고 할 때, 되게 한 원동력은 기도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도하니까 되었다는 얘기는 기도를 듣는 분이 하나님이어서 되었다는 뜻입니다.
기도와 가장 흡사한 것이 금식입니다.
그냥 기도하는 것보다 금식기도가 더 효험이 있는 기도인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밥 먹으면서 기도하면 안 들어주시다가도 굶고 기도하면 들어주실 만큼 갈팡질팡하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은 먹어야 힘을 냅니다.
사흘만 금식하면 걸음을 옮기는 것이 힘들 정도입니다.
금식을 한다는 얘기는 힘의 근원을 끊는다는 뜻입니다.
즉 금식은 “이 일은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저로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행위가 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을 기도하십니까, 할 수 없는 일을 기도하십니까?
어두운 방에 들어가면 “하나님,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서 불을 밝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불을 켭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가 하고,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은 기도합니다.
기도가 자기 무능력에 대한 고백인 셈입니다.
결국 “기도하니까 됐다”라는 얘기는 “내가 하지 않았다. 내 능력과 관계없이 이루어진 일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런 것을 마치 “기도하니까 됐어!”라고, 마치 자기에게 대단한 능력이라도 있는 양 얘기하는 것은 코미디입니다.
기도해서 되었으면 남은 순서는 자랑할 일이 아니고 감사할 일입니다.
“난 가만히 있었는데 일이 이루어졌다. 난 역시 대단하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난 가만히 있었는데 일이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역시 대단하다.”라고 해야 합니다.
어거스틴이 한 얘기가 있습니다.
“공로에서 은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은총에서 공로가 생긴다. 은총에서 멀어지고 싶으면 공로를 자랑하라.”
공로에서 은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왜 해야 할까요?
사람들에게 그런 편견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는다고 하면서도 자기는 은혜 받을 만해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받을 만해서 받으면 은혜가 아니지 않습니까?
자기는 은혜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할수록 은혜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나라 중에 아마 로마가 가장 위대한 나라로 꼽히는 것 같습니다.
로마제국의 상징이 독수리였는데, 로마 멸망 이후에 힘깨나 쓰는 나라마다 독수리를 문장으로 사용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문장이 봉황과 무궁화인데, 힘깨나 쓰는 나라가 아니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주후 962년에 오토 대제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독수리를 문장으로 사용했습니다.
나중에 독일 황제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겸하면서 오늘날까지도 독수리가 독일의 상징입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관이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로 넘어간 것을 계기로 오스트리아도 독수리를 문장으로 쓰고 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에 속했던 폴란드 역시 독립하면서 독수리를 국가의 문장으로 쓰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로마보다 갑절이나 위대하다는 뜻으로 머리가 두 개인 독수리 문장을 만들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을 멸망시킨 나폴레옹도 독수리를 문장으로 사용했고, 로마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미국도 독수리를 문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는 나라가 한둘이 아닙니다.
만일 로마가 환생한다면 이중에 어느 나라를 자기와 관계 된 나라로 인정할까요?
이 수두룩한 독수리 문장 중에 정말로 로마와 관계 된 독수리 문장은 어느 나라 문장입니까?
교회에서 늘 얘기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 은혜로 애가 대학에 갔다고도 하고, 하나님 은혜로 집이 팔렸다고도 합니다.
그 모든 은혜가 정말로 하나님과 관계 된 은혜인지 점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혹시 자랑이 섞여있지나 않은지 하는 것입니다.
자랑이 섞여 있으면 우리가 아무리 은혜라고 우겨도 하나님은 은혜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지, 우리 행위에 대한 자랑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은혜를 은혜로 아는 것이 우리 신앙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