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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칼럼

< 칼레의 시민 > 노블레스 오블리주

작성자다산|작성시간10.12.23|조회수13 목록 댓글 0

 

< 칼레의 시민 > 노블레스 오블리주

 

백년전쟁(1337~1453)은 프랑스의 왕위계승 문제가 발단이 되어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1346년 크레시 전투에서 프랑스 군을 격파한 뒤 여세를 몰아 도버해협에 위치한 도시 칼레로 진격했다. 영국에서 가장 가까운 칼레는 식량보급로가 끊기고 포위된 채 무려 11개월을 버텼다. 조그마한 성이라서 며칠이면 상황이 끝날 줄 알았는데 1년 가까이 꿈쩍도 않고 완강히 저항했던 것이다. 에드워드 3세의 심기는 몹시 불편했다. 하지만 식량이 바닥나고 전염병까지 나돌아 더 이상 저항을 포기한 채 칼레는 마침내 1347년 영국군에 항복의사를 전달했다.

적군의 왕 앞에 선 항복 사절단은 제발 주민들의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완강한 저항에 분노한 에드워드 3세는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주민들을 몰살하려 했다. 이때 한 신하가 나서서 말하였다.

 

“폐하, 통촉하시옵소서. 우리가 이제 프랑스 본토에 발을 디뎠고 앞으로 함락시켜야 할 수많은 도시와 성들이 있는데 항복을 청해온 칼레시민들을 몰살했다는 소문이 나면 나머지 성들은 죽을 각오로 저항 할 것입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셔야 합니다”

 

듣고 보니 신하의 말이 일리가 있어서 왕은 생각을 바꿔 한 가지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그렇다면 칼레의 지체 높은 시민 6명이 맨발에 속옷만 걸치고 목에 밧줄을 감은 채 성 밖으로 걸어 나와 성문 열쇠를 바쳐라. 6명을 교수형 시키는 대신 칼레의 시민들은 모두 살려 주겠다”

 

시민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회의를 거듭하고 우울한 시간이 계속 되었다. 누가 죽음으로 가는 길에 선뜻 나설 수 있겠는가. 인간의 용렬함과 나약함에 서로는 시선을 피한 채 피를 말리는 시간이 흘러갔다. 바로 그때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천천히 일어났다.

 

“내가 교수형을 당할 6명중 하나가 되겠소”.

 

놀란 시민들이 돌아보니 그 사람은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였다. 그의 뒤를 이어 시장, 법률가, 학자 등 5명이 동참했다.

다음 날 6명의 시민대표는 칼레성에서 에드워드 3세의 진지를 향해 출발했다. 성문 안에 모인 사람들은 통곡을 하면서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눈물 속에 사라져 가는 6명의 모습에 시민들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영국왕은 이들의 처형을 명령했다. 그러나 당시 임신 중이었던 왕비가 장차 태어날 아기를 생각해 그들을 살려달라고 설득했고 왕은 결국 이들을 죽이지 않았다. 기적 같은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동시대 사람인 프르와사르(1337~1404)는 사건의 전 과정을 연대기에 기록했다. 이후 6명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1884년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은 칼레 시로부터 이들 위대한 6인의 모습을 형상화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6명의 이야기는 로댕을 감동시켰다. 로댕은 10년의 세월을 작품에 바쳤고 1895년 완성된 조각은 칼레 시청 앞에 설치됐다.

죽음을 향해 적진으로 떠나는 6인의 모습이다. 독일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는 로댕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희곡 ‘칼레의 시민’을 썼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렀다. 때마침 ‘신의 손’으로 알려진 로댕의 작품전이 한창이었다.

아시아 전시관과 한국관을 돌아본 뒤 오랫동안 가슴에 둬 왔던 조각상 ‘칼레의 시민’ 앞에 섰다. 가장 먼저 죽음을 신청한 칼레의 부자 외스타슈의 의연한 표정, 그러나 죽음의 공포로 반쯤 풀린 손을 어루만져 보았다. 항복했다는 굴욕감, 그럼에도 시민들의 목숨만은 건지게 되었다는 안도감, 하지만 가장 부자인 자기가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자괴감 등이 절묘하게 표현돼 있다.

 

조각상 주변을 몇 바퀴 더 돌다가 성문열쇠를 쥐고 있는 법률가 장 데르의 강직한 표정을 다시 보았다. 비록 성은 빼앗겼지만 정신만은 지키려는 단호함과 결연함이 절절하다. 그 옆으로 죽음을 자원하고도 공포에 떠는 앙드리외 당드레의 인간적인 모습은 가장 오랫동안 나의 시선을 묶어 두었다. 죽음을 초월한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똑같이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는 그 용기에 존경과 경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병역기피와 위장전입을 밥 먹듯 하는 장관 후보자들, 아들 딸을 특채시키려고 온갖 편법을 다 동원한 고급 외교관들, 스폰서 검사들, 자리싸움으로 온나라를 시끄럽게 만드는 금융계 고위인사들이 꼭 봐야 될 작품이다. 오만함으로 뭉쳐져 낮은 곳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칼레의 시민’ 앞에 서서 그 의미를 가슴속에 새겨보았으면 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는 바뀌었을지도 몰라도 그 때나 지금이나 높은 신분에 따르는 희생정신, 도덕성은 시공을 초월하는 세상의 화두다. 문명의 발전은 눈부시게 질주하는데 몸가짐과 지혜는 옛사람들만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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