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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C 47: 전국SFC지도자수련대회 보고서(1971)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2.06|조회수47 목록 댓글 0

SFC 47:
전국SFC지도자수련대회 보고서(1971)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정책이 자리 잡으면서 국가적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한국전쟁 전후에 태어난 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SFC에도 대학생 모임이 활성화되었다. 1966년 부산시내 여섯 개 고등학교 SFC가 연합하여 1966년에 부산시고교SFC연합회가 조직되면서 학원복음화운동을 가열차게 진행했고, 이들 졸업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이들이 부산지방SFC 재경유학생회를 조직하여 친교활동이 강화되면서 각 대학에도 SFC가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시기에 SFC의 근대화를 이루는 의미있는 모임이 첫 전국 간사 김만우 강도사가 임원들과 힘을 합쳐 제1회 SFC 지도자 수련회를 준비했다. 간사와 전국 임원, 각 지방 SFC 임원들 등 46명이 모인 1971년 10월 15일부터 18일까지 당시 부산 동래식물원 안에 있던 기독교수양관에서 개최하고, 수련회 보고서를 정리해 갱지 40면으로 프린트하여 엮었다.

‘우리의 사명과 내일의 좌표’라는 주제로 열린 이 수련회는 개회예배는 한명동 목사, 폐회예배는 석원태 목사, 새벽기도회는 박종칠 전도사와 김만우 강도사가 담당했다. 표준 문서 관리(최해일 목사), 강령 해설(석원태 목사), 타기독학생운동의 현황과 비판 연구 발표(배성환 총무) 외에는 간사 김만우 목사가 각 분야의 전략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4일 동안 집중적으로 가졌다. SFC가 본격적으로 대학생 중심운동이 활성화되는 때에 적절한 프로그램이었다.

이 수련회에서 다룬 주제들은 SFC 조직체제 점검 및 정비, SFC 자금 문제, SFC 캠프장 설치 문제, 학원복음화의 구체적 방안 제시, 기타 학생단체의 연구와 발표, SFC개척사 이념, 강령, 지향점 해설, SFC 행정 질서의 문제, SFC선배 모임의 조직, 동기수양회 준비, SFC의 규약 점검, 1972년도 SFC 요람 발간 문제 등 11개 주제가 강의와 토론의 내용이 논의되었고, 그 토론 내용들이 보고서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 수련회를 가졌던 1971년까지 경북대, 부산대, 연세대, 이화여대, 마산대, 마산교대, 서울농대 SFC가 조직되어 있었고, 서울대, 숭전대, 서강대, 서울여대, 숙명여대가 조직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부산지방재경유학생회, 부산지방SFC대학생연합회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이 수련회 보고서는 전체 프로그램을 소상하게 정리하였고, 강의안과 토론내용을 잘 정리하여 보고서로 작성하였는데, 당시 대학생들의 운동 역량을 볼 수 있다.

이 수련회에 참석한 이들은 김만우, 변의남 간사가 이홍우 위원장과 함께 30대 초반이었고, 그때는 대학생들이었던 율촌 대표변호사 우창록, 고신대 교수 강용원, 미 칼빈대 교수 강영안, CBMC사무총장 김창성이 참가하였고, 장희종, 한기원, 권경호, 안용운, 강영순 목사 등의 이름이 보인다. 필자가 생각하건대 이 모임이 그 이전까지 가장 독특한 모임이었고, 이후 대학생운동으로 조직 역량을 강화시켰던 의미있는 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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