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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C 49: 합동측 전국SFC 동기수양회지 ‘70년대의 SFC’(1970)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2.21|조회수45 목록 댓글 0

SFC 49:
합동측 전국SFC 동기수양회지 ‘70년대의 SFC’(1970)


제44회 총회(1959년)에서 승동측과 연동측이 분리된 이듬해 승동측은 고신측과 합쳐 오늘날 부르는 합동측이 되었다. 그러나 그 합동은 3년이 되지 못해 고신측이 환원함으로 재분리되었는데, 합동측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이익을 남겼고, 고신측은 큰 손해를 보았다.

고신측과 승동측이 합동했을 때 SFC를 총회의 단일 학생운동으로 통일하기로 하였고, 두 행 동안 대전중앙교회와에서 개최된 수양회는 큰 성황을 거두었다. 이를 본 합동측 지도자들은 학생운동의 필요성을 느껴, 고신측이 환원한 후에도 계속하여 SFC라는 이름을 갖고 수양회를 개최하였다.

이 문서는 합동측 제27회 동기수양회지인데, 1970년 1월 12일부터 17일까지 왕십리교회에서 개최하고 회지를 활판 인쇄로 간행하였다. 신국판 내지 54면으로 된 이 수양회에서 1970년대를 시작하면서 ‘70년대의 SFC’라는 주제를 내 걸었다. 이 책에는 다양한 강의를 맡은 강사들의 한 페이지로 요약된 강의안들이 실려 있다. 변한규 목사의 ‘강령해설’, 김의환 목사의 ‘SFC역사와 전망’, 윤남중 목사의 ‘국내 학생운동의 동향’, 김득룡 목사의 ‘70년대 SFC 프로그램’, 김진수 목사의 ‘일본 학생운동의 동향’, 김성환 목사의 ‘칼빈주의’, 김남식 전도사의 ‘SFC70년대를 위한 조직 관리 및 페널 디스커션’, 이원설 박사의 ‘구미학생운동의 방향’ 등 특강의 강의안 요약이 한 페이지씩 실려 있다.

그리고 총회 때 조직된 전국위원의 명단과 주소, 수양회 시간표, 정기대회 촬요, 전국학생신운동 규약, 각 지방 보고가 실렸고, 670여 명의 이름, 주소, 학교 등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역대 수양회의 기간, 장소, 참석자의 남녀, 학교, 교회 통계가 포함되어 있으나, 그해 통계를 작성하지는 않았다. 합동측 SFC는 전국SFC부위원장을 지낸 김남식 전도사가 협동총무로 봉사하였는데, 그의 수양회 준비와 활동의 노하우를 많이 전수해 주었다.

합동측 SFC는 합동측 제58회 총회(1973)에서 학생면려회(SCE)로 개칭하였지만, 이후에도 강령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지금도 SCE를 복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운동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같아서 지도자들이 모여 돈을 들여 수양회를 개최한다고 해서 학생운동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합동측으로서는 독자적인 학생운동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무척 아쉬운 일이나, 한국교회 초기에 전해진 CE라는 외래 운동으로는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미국의 기독교 학생운동의 역사를 살펴볼 때, CE는 1900년대 초기에 미국에서 활동적인 단체였다. 그러나 1940년대 이후 YFC가 일어난 후 영향력을 크게 약해졌고, 오늘은 단체의 이름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교계도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것이다. 엉뚱한 일에 힘을 뺄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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