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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51: 서울영락교회 20년 기념지 ‘한국혁명과 기독교’(1969)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3.31|조회수39 목록 댓글 0

한국교회 51:
서울영락교회 20년 기념지 ‘한국혁명과 기독교’(1969)


해방 후 한국장로교회는 통합, 합동, 기장, 고신 네 교단으로 분열, 각각 발전해 왔는데, 이후 한국교회를 대표한 인물이 한경직 목사라 할 수 있다. 그가 신사참배 반대에 실패한 후 목회를 그만두고 보린원에서 은거하였고, 해방 후에는 기독교사회당 창립을 주도했지만, 김일성을 정점으로 하는 공산당의 기세에 밀려 월남하였다. 그는 월남 후 영락교회를 설립하여 한국의 대표교회로 성장시켰다.

이 책 ‘한국혁명과 기독교’는 영락교회 설립 20주년 기념 책자인데, 창립 20주년 행사 강연으로 유동식 교수(감리교신대)의 ‘한국교회의 백서’, 고범서 교수(숭실대)의 ‘혁명의 대결’, 지명관 교수(덕성여대)의 ‘한국혁명의 성격’, 김정준 교수(연신원장)의 ‘기독교 한국의 미래상’ 강의 전문이 정리되어 포함되었고, 부록으로 ‘영락교회 20년 소사’를 40면으로 정리하였다.

이 책은 46판 166면으로 1966년 5월에 발행되었다. 영락교회는 1945년 12월에 베다니전도교회로 시작되었고, 이듬해 영락교회로 개칭했다. 1965년 11월에 20주년 기념관 입당예배, 기념전시회, 12월 5일에 창립 20주년 기념예배를 갖고, 이어 5일 동안 기념강연회를 가졌는데, 첫 20년의 소사를 간단한 연혁을 중심으로 정리하여, 강연회 원고와 함께 출판되었다.

이 책에서 유동식 교수는 ‘한국교회의 백서’에서 발생기(1784-1884), 유아기(1985-1935), 홍역기(1936-1945), 청년기(1945-1959), 혁명기(1960)로 구분해 시대별로 점평하고, 교회의 과제를 자기혁신을 위해 자기중심적인 것에서 해방, 화합의 길, 사회에의 관심과 참여를 제시한다. 고범서 교수는 한국기독교와 교회는 급변하는 오늘의 사회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또 아시아와 우리나라에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혁명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지명관 교수는 좌절된 한국현대사를 정리하고, 혁명사적 반성을 요청하고 있다. 김정준 교수는 한국교회의 미래상을 논하면서 반공에 대한 정신적 태세 갖기, 새로운 국민 모랄 진작, 비전 제시를 말하고 있다.

부록으로 역대장로 일람표를 취임과 사임을 정리하였고, 등록교인으로 3,059세대, 등록교인 수 9,735명, 등록교인을 2,512명을 직업별로 분류하였다. 직업인을 25.8% 외에는 학생, 주부, 기타가 있다고 표기한 것이 격세지감이 든다.

등록교인을 출신지역으로도 구분하였는데 평북이 38.6%, 평남 17.5%, 서울 7.2%, 경기가 7.3%, 함남이 3.8%. 함북이 1.8%인데, 같은 이북이라도 함경도 출신들은 강원용 목사의 경동교회로 모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선교부의 선교지 분할 정책이 주된 이유였는데, 함경도는 캐나다선교부의 영향을 받아 기장측에 속한 교회들이 많은 것도 그같은 이유에서이다. 이북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각 지역 출신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연령별 통계도 인상적인데, 유년(10세 미만) 2,006명, 소년(11-15세) 1,129명, 청년(16-30세) 2,872명, 중년(31-40세) 1,217명, 장년(41-60세) 1,927명, 노년(61세 이상) 584명으로 나이에 의한 구분도, 각 세대별 통계도 당시는 참 젊은 교회라는 인상을 받는다. 지금 한국교회는 늙어가고 있다. 다음세대가 교회를 떠나가고 있고, 교회의 노령화가 예상보다 훨씬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교회의 미래를 위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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