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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52: 김종한 목사의 ‘국기경례와 애국사상’(1973)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4.11|조회수47 목록 댓글 0

한국교회 52:
김종한 목사의 ‘국기경례와 애국사상’(1973)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해방 직후, 그리고 시월유신 후에 국기경례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1972년 유신이후 박정희 정권이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교련을 강화하고, 국기경례를 강화하여 국민정신을 하나로 통일하고자 했다.

1973년 9월에 김해여고에서 국기경례 거부사건이 일어나 22명을 제적 공고하였다가 최종적으로 6명이 제적을 당하였고, 김해여고에서는 유영화(현 정주채 목사 부인), 박명순(현 블라디보스톡 주재 선교사) 등 여섯 명이 제적된 상태에서 이사벨여고에서 공부를 계속하다가 소송이 제기되면서 학생들이 퇴학을 당하여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이 땅 위에: 학생신운동사’를 조직기에서 1970년대까지(1952-1979) 3장(180면)을 집필한 바 있었는데, ‘1970년대 사회운동’의 항에 이 사실을 기술한 바 있고(236-240면), 최근 코람데오닷컴 (kscoramdeo.com)에서는 이 사건이 발생한지 50주년을 앞두고 관계자들의 죄담회를 갖기도 했다.

이런 일은 밀양종합고등학교에서도 있었는데, 김재용(현 필리핀 선교사), 김상용(현 군선교사), 장지은(서울삼일교회 장로), 최영식(울산남부교회 장로) 등 다섯 명의 학생들이 퇴학을 당했다. 김재용은 브니엘고등학교에 편입하여 고등학교를 마쳤고, 전문대학을 거쳐 고신대학에 편입, 나와 함께 신대원 제40회로 졸업하고 필리핀 선교사로 30년 이상을 봉사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왜 국기경례를 반대하는가’는 부제를 달고 ‘구국운동 1’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책자는 당시 밀양 예림중앙교회 담임 김종한 목사가 엮은 등사본 소책자이다. 김종한 목사는 이 책을 내는 이유에 대해 일제강점기에 일장기 배례로 고생을 많이 당했고, 나라 사랑으로 사선을 여러 번 넘겼으며, 그의 아내는 국기배례를 거부한다고 초등학교 교사직에서 물러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이 책자를 간행하게 된 것은 당시 밀양지역 고등학교에서 국기경례 문제로 학생들이 퇴학을 당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겠는데, 학생들이 이 책자의 내용과 같은 가르침을 받아 국기경례를 거부했는지, 국기경례 거부사건이 나온 후 이 책자가 나왔는지는 책자의 발행연도를 명기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김재용 선교사는 그 연도를 1973년인 듯하다고 했다. 당시 부산시 교육위원회에서는 각 고등학교 단위로 ‘고려신학파’에 출석하는 학생들의 수를 파악해 보고하기도 했다.

이 책자는 처음에 십계명의 제2계명 본문과 시편 32:12을 실었고, 애국가, 책자 편집동기, 국기경례 구호변경의 긴급성, 임희성 집사가 사비로 1972년에 〈크리스찬 신문〉에 낸 ‘한국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공개질의’, 국기경례에 대하여(이학인), 손양원 목사의 국기배례-부흥회 설교문(1949. 11. 3)과 한국기독교연합회가 발표한 ‘국기배례 문제에 대하여 그리스도교 입장을 천명함’ 성명서(1949)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 한국교회사 연구에 의미있는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 모두 24면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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