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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교회 51: 제21회 총회 촬요와 회순(1971)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4.21|조회수42 목록 댓글 0

고신교회 51:
제21회 총회 촬요와 회순(1971)


제21회 총회가 1971년 9월 23일부터 29일까지 ‘법과 의대로 행하면 살리라(겔 33:19)’를 주제로 서울 성원교회당에서 개최되어, 총회장 김희도, 부회장 손명복, 서기 이기진, 붓기 김주오, 회록서기 이금도, 부회록서기 최해일, 회계 지득용, 부회계 김은도 장로를 선출하였다. 그해 총회 운영을 위한 총회 운영위원을 총회장, 부총회장, 직전총회장, 서기, 회계로 구성하였다.

총회에서는 교단의 취약지구를 선정하여 연 2회 전도대회를 시행하기로 하고 각 노회 위원이 선정되었다. 또 총회에서는 신학 졸업 5년 이상이 된 이들을 위한 계속교육을 시행하기로 하고, 매년 신학강좌를 실시하기로 하고 3년에 1차 수강하도록 하였다. 강단 교류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설정하였는데 본 교단정신(신학, 신앙, 생활)에 맞지 않는 교단은 거부하기로 하였다.

총회에서는 ICCC와 우호관계를 단절하기로 결의하였고, RES에서도 탈퇴하기로 하였다. ICCC가 반공사상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분리주의적인 형태를 취한 것이 이 시기였다. 총회에서는 교단 표준 문서관리 규정안을 채택하였다. 대만과 남미 선교 보고를 받고, 김영진 선교사와 남미 정길수 선교사에게 격려서신을 발송하기로 하였다.

교회교육부에서는 교단 직영 성경통신학교를 개설하기로 하고 운영은 교회교육부에 맡기기로 하였다. 박손혁 목사가 운영하던 통신성경학교가 중단되었는데, 이 결의를 근거로 그의 동생 박정덕 목사가 그 책임을 맡았고, 교재를 발간하는 등 노력을 하였다. 이러한 프로그램도 운영이 잘 되지 않던 차에 1989년 총회교육위원회에서 넘겨받아 제38회 총회(1989)에서 성경통신대학으로 승격, 새로운 체제로 개편, 운영하여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고, 총회교육위원회가 자립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이 시기에 교회교육에 힘쓰지 못해 그해 장년공과를 편찬하지 못해 중등부 교과서를 대용하여 사용하기로 결의하고 있다. 총회에서는 교회교육부가 주최한 교육대회 강사 문제로 부장이 총회 앞에 사과를 하였다. 그해(1971) 교육대회가 서울중앙교회에서 개최되었는데, 장신대 주선애 교수가 담당했던 것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닌가 짐작이 된다. 이 교육대회에서 주선애 교수의 강의를 들었던 서울대 사범대 학생이었던 강용원은 교육학을 공부하기로 하고 장로회신학대학 기독교교육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후일 고신대 기독교교육학과 교수가 되었다. 당시만해도 고려파교회에서 통합측 인사를 강의에도 세우는 것이 어려웠던 시기였던 것이다.

CCC의 왕성한 활동으로 SFC와의 관계에 대해 교육부에서 문의하였고, 이를 사무부에 맡기기로 하였다. 이러한 문제는 엑스풀로 74까지 두 해나 연구와 연기 등을 거쳐 다수 교회가 이에 참여하여 SFC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나환자 정착을 위한 사업은 메소즈협회에서 본 교단에 관리를 위임한 일은 제20회 총회가 맡긴 수습전권위원에게 위임하기로 하였는데, 이 문제가 이후에도 몇 년 동안 총회의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아울러 성진노회와 용호제일교회 김달천 장로 외 311명의 진정건, 성진노회장의 호소문, 제20회 총회의 본건 처리위원 보고, 목사 불법 안수에 대한 경남노회장의 위탁 판결 청원 등을 위해 특별재판국을 설치하였다. 성진노회의 기독교 협력회 김진경의 건 수습을 위한 전권위원이 5인 선정되었다.

고신대학 서울이전 건은 지난해 총회에서 현 시점에 반려하기로 한다고 결의했지만, 다시 심의가 되어 이런 결의를 한 것이었다. 항존직 시무 정년은 만 70세로 결의하고 은퇴한 목사는 지교회 치리권은 없으나 상회권(노회 회원권)은 가진다고 결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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