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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C 53 : 부산지방 제8회 하기수양회지 ‘일어나 내려가라’(1972)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4.27|조회수40 목록 댓글 0

SFC 53 :
부산지방 제8회 하기수양회지 ‘일어나 내려가라’(1972)


누구나 인생의 길목에서 잊지 못하는 순간들이 몇 차례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경남 양산에서서 개최되었던 이 수양회가 나에게는 그렇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6월에 열린 부산시고교SFC연합회 총회에서 서기로 선출되었고, 그해 여름 고교SFC연합회 수련회와 부산지방SFC하기수양회에 두 차례 참가하였다. 나는 부산지방 SFC 제8회 하기수양회에서 깊은 은혜를 체험하였고, 그때까지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선생이 되기를 원했는데, 목사직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못한 가운데 목사가 되기로 작정하였다.

수양회는 꼭 50년 전인 1972년 8월 7일 월요일 저녁시간부터 12일 토요일 아침까지 꼬박 한 주간 동안 계속되었고, 무척 강한 훈련이었다. 새벽기도회와 저녁집회를 이선 목사가 인도했고, 중등부 성경공부 홍관표 목사, 고등부 성경공부 정순행 목사, 대학부 성경강의 변의남 간사가 담당하였고, 한명동 목사가 특강을, SFC Song을 이태직 전도사가 담당하였다.

당시만해도 부산과 김해, 울산, 양산이 모두 부산지방이었는데, 개최지 양산은 한적한 시골 읍내였다. 위생 관념에 별로 없었던 때에 수양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수건을 나누어 쓰곤 해서 아폴로눈병 결막염에 감염되어 문제가 많은 학생들이 고생했다. 때마침 여름 늦장마가 심해 장대같은 비가 쏟아져서 낮에 교회와 숙소로 사용하던 학교로 이동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 대회 본부에서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하루 종일 교회당에서 기도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오래전 그 교회를 담임하던 신수인 목사에게 옛날 이야기를 했더니만 설교에 초청해 주었는데, 세월이 많이 흘러 도시화와 교회당 건축 등으로 옛 추억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대회 임원으로 대회장은 한기원, 부대회장 권영재, 총무 권경호, 사무부장 전태, 공보부장 박대근 등이었는데, 권영재는 부산의대 학생이었다. 요즘은 의대는 아예 활동을 하지 못하지만, 당시만해도 한기완, 권영재, 유승근 등이 의대학생들이면서도 전국과 지방SFC의 중요한 임원을 맡아 수고했던 낭만이 있었다.

수양회 총 등록생이 286명이었는데. 주제와 맞추어 참가자들은 기드온 300용사로 자처하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전도훈련과 한나절 지역전도를 실시했는데, 기가 차게도 나는 양산성당에 들어가 관리인에게 사영리로 복음을 전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지나친 일이었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때 그 관리인은 성경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 책자는 박대근 목사가 공보부장으로 수고하면서 제작한 것인데, 가르방 인쇄로 컬러의 효과를 낸 것이 대단하다. 강령은 붉은 색 인쇄를 하였고, 목차는 색있는 용지를 사용하여 2도 인쇄의 효과를 살렸다. 역대 SFC수양회 공보부에 김동철 목사 등 전설들이 많지만, 내가 알기로는 박대근 목의 필치가 최고가 아닌가 한다. 그는 유려한 필체로 대학 4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그는 대학을 마치고 바로 미국에 유학, 평생 목회하였고, 지난 해 그의 칠순 모임 때 이를 소개하여 함께 행복한 추억을 회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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