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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교육 34: 1960년대 주일학교회지 항도교회 ‘새예루살렘’ 제59호(1969), 부산북교회 ‘호산나’ 제2호(1970)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5.01|조회수34 목록 댓글 0

교회교육 34:
1960년대 주일학교회지 항도교회 ‘새예루살렘’ 제59호(1969), 부산북교회 ‘호산나’ 제2호(1970)


1970년대 교회교육은 평신도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졌다. 총회적으로 교재 발행 외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지만, 일선에서 주일학교 교육을 맡았던 신실한 교사들의 열정으로 교회교육이 지탱되었다. 내가 ‘전국주일학교연합회 30년사’(1995)와 ‘대한예수교장로회 교회교육의 역사’(2016)을 집필할 때 당시의 교회교육을 그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당시는 아이들이 많았고, 그들을 위한 놀이가 많지 않았던 때라, 교회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갖는 재미나는 곳이었다. 교회마다 성경학교가 되면 북을 치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 학생 100명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시기에 고신측에서는 ‘생명의 양식’ 교육과정을, 통합측에서는 ‘성서와 생활’ 교육과정을, 합동측에서는 ‘계단공과’를 발행하였지만, 요즘의 교재에 비하면 부족한 것이 많았다.

당시 직장생활의 근무 환경이 여의치 않았는데, 공무원 외에는 주일과 공휴일을 모두 쉴 수가 없었다. 하루 10시간은 기본이고 12시간까지 일하던 때였고, 근로기준법이 있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준수를 주장하며 분신하였던 것이 1970년, 바로 그 시기였다. 많은 직장에서는 격주로 주일을 쉬었는데, 밀린 목욕도 하고, 세탁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경제 성장은 이러한 지난 시대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교회마다 교사들은 열심히 가르쳤고, 그 어려운 시간을 내어 뜻있는 교회 주일학교에서는 등사판 인쇄로 주일학교 회지를 발행하곤 했다. 여기에 소개하는 잡지는 항도교회 주일학교의 ‘새예루살렘’ 1969년 9/10월호와 부산북교회 주일학교의 ‘호산나’ 제2호(1970) 두 권이다. ‘새예루살렘’ 제59호는 46배판 용지에 표지 활판, 동판 인쇄로, 내지 12면 등사판으로 편집되었는데, ‘어린이 교재를 소중하게 사용합시다’, ‘장로의 자격과 임무는 무엇인가’, ‘공동의회는 무엇인가?’ 등의 기고와 제11회 부산노회 연합체육대회 성황, 9/10월 주일학교 운영안, 9/10월 생명의 양식, 소식, 성경퀴즈대회 요강 등의 기고와 기사가 포함되어 있다.

이 회지는 주일학교에서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책자이지만, 차례를 살펴볼 때 교회적인 회지였던 것 같다. 항도교회는 이 시기에 담임 이선 목사가 부임한 첫해로 교사였던 최계원 장로가 중심이었다. 학교교사였던 그는 부산시고교SFC연합회 지도위원이기도 했다. 이 잡지는 부장이었던 박정규 집사가 이를 담당하여 오랫동안 발행했는데, 그는 후일 장로로서 부산노회주일학교연합회장과 전국주일학교연합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부산북교회 주일학교가 발행한 ‘호산나’ 제2호(1970)은 2월 15일 그해 졸업식을 맞아 발행한 것으로 한 해의 교육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부산북교회는 고신측과 승동측이 합동하였다가 목회자가 환원을 원치 않아 분립된 교회이다. 표지 활판 인쇄, 내지 18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내용에는 졸업생에게 붙이는 글, 수기, 교재 풀이, 양도용의 ‘이상적인 주일학교’, 1969년의 주일학교 통계, 아동의 이해, 수필, 소식란, 운영계획안, 교사의 자격 선서 등이 포함되어 간략하지만 잡지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부산북교회는 통계를 포함하고 있는데, 1964년 80명에서 시작하여 1970년 250명을 목표로 하고 있고, 크지 않은 교회였지만, 신입부 4반, 유치부 4반, 유년부 4반, 유년부 9반, 초등부 11반 등 모두 28반에 285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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