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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교회 52: 서문로교회 CE ‘좁은문’ 제3호(1972)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5.16|조회수40 목록 댓글 0

고신교회 52:
서문로교회 CE ‘좁은문’ 제3호(1972)


고신교회는 경남(법통)노회 중심으로 시작되었지만, 출옥성도들의 교회쇄신운동에 호응하던 그리스도인들이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었다. 서문로교회는 제36회 총회가 최종적으로 고려신학교 지지교회를 축출하면서 서문교회 명신홍 목사가 총회와 경북노회 결의를 근거로 고려신학교 지지성도들을 제명하였다. 그는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출신으로 초기에 고려신학교를 지지하던 입장이었지만, 나중에는 고신교회를 크게 어렵게 만들었던 분이다.

모교회의 징계를 받은 이들과 이들을 지지하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 서문로교회를 시작하였는데, 부산에서 올라온 한상동 목사의 사회와 박윤선 목사의 설교로 첫 예배를 드린 것이 1951년 8월 26일 주일 새벽이었다. 교회는 꾸준히 성장하여 수년만에 700여 성도로 성장하였고, 초기에 교회 재정의 십일조, 십이조, 십삼조로 지역의 연약한 교회를 지원함으로, 경북지방에 고신교회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책자는 교회 청년면려회가 발행한 정기간행물로, 교회창립 20주년 특집호로 발행된 책이다. 설립위원 14명의 사진과 교회 설립 20주년이 되던 1971년 제직 일동 사진을 동판으로 처리하여 내지 첫 면에 실었다.

‘역대 목회자의 발자취’로 초대 오병세 목사가 ‘초창기를 회고하며’, 2대 김주오 목사가 ‘서문로교회가 세워진 동기’, 황철도 목사의 ‘일어나 벧엘로 가자’ 설교가 실렸고, 허순길 목사와 석원태 목사에게 원고를 청탁을 했지만, 유학중인 허순길의 딸이 보낸 편지와 석원태 목사의 정중한 거절 편지를 그대로 실었다. 석원태 목사는 청년 목사로 교회 담임으로 부임했다가, 지금의 동대구역 인근으로 교회 이전을 제안했다가, 서문시장 가까운 교회를 떠나기 싫어했던 성도들의 반대로 1년 4개월만에 교회를 떠나, 당시에 해결되지 못한 감정이 있음을 편지에 담았다.

책자에는 논단으로 이근삼 교수의 ‘보수교회의 현대적 의의’, 박정덕 목사의 ‘보수 신앙과 현대’ 등의 글이 실렸고, 서문로 20주년의 발자취 특집으로 최만술 목사의 ‘서문로의 서문로교회가 북성로의 서문로교회에 이르기까지’라는 원고가 포함되어, 초기 교회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외 한부선 선교사의 ‘어릴 때에 본 한국교회’나 서문로교회 연혁 등이 실렸다.

교회의 시작이 한국교회의 역사를 잘 반영하는 것이었고, 서문로교회의 역사가 고신교회의 역사와 함께 하는 것인 만큼, 교회는 역사 정리에 관심을 가졌다. 서문로교회는 교회 20주년, 30주년에 사료를 정리한 바 있어 내가 ’서문로교회 60년사‘를 집필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내가 ‘서문로교회 60년사’를 펴낸 것이 2012년이었는데, 꼭 10년 전이니 지난해에 70주년을 맞은 것이 되었다. 이 책자는 그때 편찬위원장 오충섭 장로가 내게 제공했던 것이다.

한국교회의 역사가 깊어지는 만큼 교회의 역사도 깊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교회사 편찬을 위해 20년, 30년, 50년을 맞을 때마다 사료를 정리하는 것이 좋다. 오랜 훗날 역사를 회고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인간의 기억은 한계가 있어 50년 전의 역사를 편견없이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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