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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교육 35: 여름성경학교 어린이 교재(1971)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5.26|조회수37 목록 댓글 0

교회교육 35:
여름성경학교 어린이 교재(1971)


1970년대 한국교회는 크게 성장한 전성기였다. 국민의 70%가 1차 산업에 종사하던 당시에 제3공화국의 경제성장 정책으로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 들었다. 경제성장으로 곳곳에 일자리가 넘쳤고, 부모들은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살기 위해, 또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온갖 힘든 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세계에서 한국의 노동시간이 가장 길었다. 근로기준법이 있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던 때였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교회성장을 이끌었는데, 힘든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이 시기에 한국교회는 급격히 성장했는데, 해방당시에 35만으로 추산되던 기독교 신자들은 1965년에 120만, 1975년에는 350만이 되었고, 1960년대 이후 매 10년마다 200%씩 성장하였다. 당시에는 산아제한이나 가족계획을 하지 않았던 때라 자녀들도 많이 태어나서 길거리에는 어린이들로 넘쳐났다. 학교는 이들을 수용할 곳이 없어 2부제 수업을 해야 했던 때였다. 이 시기에 가족계획이 장려되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이러한 잘못된 판단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게 되면서 미래의 한국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1970년대 여름성경학교는 교회의 가장 큰잔치였는데, 교사들이 북을 치고 동네 한바퀴를 돌면 어린이 100명을 모아 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던 때였다. 이 1971년 여름성경학교 어린이 교재 ‘사랑의 하나님’ 두 책은 그 시기의 교회교육을 지원하는 책이다. 국판 1,2,3학년과 4,5,6학년이 각각 사용하도록 만들어졌고, 학교의 국영 교과서와 같이 제작되었다. 각 권은 36면과 40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활판으로 인쇄하였고, 표지는 컬러 단색으로 제작하였다.

총회교육부장 민영완 목사의 머리말, 집필자 심군식 목사의 지은이의 말, 스티커가 사용되지 않았던 시기에 도장을 찍어 주던 출석부, 심군식 작시, 김상철 작곡 ‘사랑의 하나님’ 주제가, 교단교육의 이념과 목적, 각과는 3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익힘문제를 배치하였으며, 모두 6교과를 편성하였다. 한 주 내내 교육을 할 수 있는 교과였다. 매 교과는 성경 내용을 동화와 같이 읽으며 공부하게 했고, 익힘 문제로 아동들이 공부한 내용을 스스로 풀어보도록 했다.

이 교재를 쓴 심군식 목사는 고려신학교 2학년 때 1967년부터 이근삼 교수의 권유로 교회교육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 24년 동안 고신교회의 교육을 책임졌던 분이다. 고등학교 때 시집 ‘괴로운 인생’을 출판했을 정도로 문인이었고, 결혼 후 아내 정순연 사모의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였는데, 동아대학교를 자녔던 그는 몇천 권의 책을 버리고 칼빈학원에 편입했다.

신학교 2학년 때 이근삼 교수로부터 문학을 한 입장에서 교회교육 교재 교정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신현국, 전호진과 함께 교육과정심의위원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이후 간사로 선임되어 간사와 총무로서 24년 동안 교단교육을 책임졌다. 훗날 고신총회가 처음으로 총회 총무를 전임으로 전환하면서 교회를 사면하고 총무로 일하다가 2000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나는 신학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1985년 10월 총회교육위원회 간사로 선임되어 심군식 목사님의 지도 아래 교회교육 사역을 시작했고, 2014년까지 28년 6개월 동안 사역하였다. 심군식 목사님은 참 인격적으로 지도해 주셨고, 자신이 하지 못했던 유학을 아쉽게 생각하여 위원장이던 이근삼 교수님과 의논하여 나의 유학 길을 열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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