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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C 57: 부산지방 대학 SFC의 1차 세미나 프로그램(1970)과 2차 세미나 사진(1972)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6.30|조회수35 목록 댓글 0

SFC 57:
부산지방 대학 SFC의 1차 세미나 프로그램(1970)과 2차 세미나 사진(1972)


1960년대는 가난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제일의적 과제였다. 군사 구데타로 출발한 박정희 정권이 비극적으로 마쳤지만, 여러 차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으로 인한 산업화에는 긍적적인 평가를 하는 편이다.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것이 1953년이었지만, 그것은 법전에서나 있는 것이지 그 시대 우리 부모들은 경제성장을 위해 보편적 인권, 민주주의, 개인의 권리까지도 양보하고 희생해야 했다.

그러한 결과로 경제가 어느 정도 아지면서 고등교육 급격하게 성장하였고, 대학생층이 두터워지면서 SFC운동도 이전과는 그 양상을 달리했다. 이전까지는 소수의 대학SFC는 임원으로 수양회를 준비하고 진행을 이끌었지만, 이제 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배우고 훈련하는 운동으로 전환이 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1970년대 대학 SFC의 성장이었다. 당시 대학생 모임을 USFC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SFC 선배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석원태 목사 같은 분은 이를 제지, 김만우 간사가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부산의 첫 USFC 세미나를 1970년 11월 12일부터 사흘간 대청동에 있던 YWCA회관에서 개최했다. 고려신학교 이근삼 교수, 동아대 교수였던 박기순 교수가 강사를 맡았다. 첫 날에는 이근삼 박사의 ‘대학생의 인생관’, 둘째날에는 ‘대학생의 신앙관’ 강연이 있었고, 마지막 날에는 동아대 박기순 교수가 강연을 했다. 마지막 날에는 학생 세미나도 있었는데, 권순렬이 ‘대학생의 자세 확립’, 최명자의 ‘대학생의 현실 참여’, 김성식의 ‘대학생의 위치’, 박영관의 ‘신앙운동의 어제와 오늘’의 발표가 있었다. 프로그램에는 행운권 번호도 포함되었는데, 당시에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행운권 추첨을 했다.

준비위원에 부산지방위원장 박대규, 박영관(부산의대), 김성식, 노상원(동아대), 권순렬, 장의원, 최성희(부산대), 이형민, 한기원, 최명자(고신대), 김명숙(부산교대), 손혜숙(부산여대)가 이름을 올렸다.

함께 하는 제시하는 사진은 2년 후 1972년 2월 17일부터 사흘간 ‘당신은 움직이고 싶지 않은가’를 주제로 모였던 제2회 기념 사진이다. 그 시대는 카메라가 귀하였고, 행사 때마다 사진관 기사를 불러 이런 기념 사진을 찍곤 하였다. 1회 세미나는 김만우 전도사가 부산지역 간사로 세미나를 이끌었는데, 이후 서울서문교회 담임으로 올라가고, 변의남 전도사가 감사를 맡았다. 기념 사진으로 보아 제2회 세미나 강사는 홍반식 교수였던 것 같다. 50년 전의 사진인데, 이 파릇파릇한 청춘들이 70대 중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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