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주선애 교수님 하나님 품에 안기다.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6.19|조회수49 목록 댓글 0

주선애 교수님 하나님 품에 안기다.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이 오늘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주선애 교수님이 98세를 일기로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엊그제 금요일 ‘동호 사무실에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제자 목사들 몇과 함께 제 사무실에 오시기로 약속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보행기 앞바퀴가 빠지면서 넘어지시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어 제 사무실에서 뵙지는 못하고 병원에가서 뵙고 왔었습니다. 반가워하시며 손을 꼭 잡고 놓치를 않으셨는데 잡으신 손에 힘이 있으셔서 속으로 ‘우리 할머니 오래 사시겠네’, ‘금방 안 돌아가시겠네’ 했었는데 이틀도 안 돼서 에녹처럼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아이들 셋을 키우면서 빠지지 않은 기도는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였습니다. 제가 그 기도를 했던 이유는 제가 좋은 스승 만나는 복을 받았기 때문이고, 그 복이 복 중의 복인 것을 살며, 살며 깨달았기 때문인데 내게 평생의 복이 된 그 선생님이 바로 주 교수님이셨습니다.

71년도 기독교교육학과에 입학하면서 주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우린 참 많이 울었었습니다. 세상에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울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만은 선생님은 교육학 시간에 제자들을 가슴 뜨겁게 울리는 특별한 은사가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우연히 보시게 된 망원도 빈민촌을 보시고 그 비참한 모습에 하나님께 ‘왜 보여주셨습니까? 왜 보여주셨습니까?’를 외치며 우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던 고 이상양 전도사님은 망원동에 들어가 저들과 함께 살면서 교회도 세우고, 야학도 세우고, 내 집 같기 운동도 벌려 마을을 통째로 바꾸워 놓았습니다. 함께 공부하던 기현두 목사, 정태일 목사, 고애신 목사등이 좋은 협력자들이 되었고 한 해 후배였던 저도 야학 선생 노릇하느라 망원동 들락거리던 생각이 꿈만 같습니다.

도시빈민, 탈북자, 그리고 은퇴한 여교역자와 여선교사등등 하나님이 마음에 보여만 주시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시고 돌아가시는 마지막 날까지도 일을 벌이셨던 선생님이 제자인 우리들에게 끼친 삶과 신앙의 영향력을 이루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빡빡머리 못난이였던 제가 목사가 되고 책도 쓰고 방송에서 설교도 하고 선생님 흉내내며 이 일 저 일 벌리는 것을 무척 대견스러워 하셨었는데, 그래서 돌아가시기 며칠 전 까지도 ‘동호 선교회 사무실 가보고 싶다’고 하셨었는데, 이젠 제 이름을 불러줄 선생님이 없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계시면 아직도 전 21살 빡빡머리 못난 아이 기분을 낼 수 있어 좋았는데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이 허전합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선생님이 아프지 않으시고, 크게 고통 받지 않으시고 에녹처럼 하나님께 들림을 받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이루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제가 섭섭한 것보다, 허전한 것보다 선생님이 고통 없이 당신이 평생을 사랑하신 하나님 품에 안기신 것이 저는 더 좋습니다. 정말 더 좋습니다. 하나님께 큰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 동홉니다.
빡빡머리 못난이가 선생님 만나 목사도 되고 제법 사람 구실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좋으시지요?
선생님이 좋으실걸 생각하니 슬픔과 섭섭함도 사그러집니다.
열심히 선생님 심어주신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과 사람 사랑하는 진심 끝까지 흉내내다 하나님 오라 하시면 가서 하나님도 만나고 선생님도 만나겠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이젠 좀 쉬세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