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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나도 비싼 향유옥합을 깨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8.19|조회수37 목록 댓글 0

가끔은 나도 비싼 향유옥합을 깨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1.
77년도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신혼여행을 가라고 친구들이 10만 원을 모아주었습니다.
여행이라는 걸 해본 일이 없어서 무작정 부산행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신혼여행을 갔습니다.
역에서 택시를 타고 해운대로 가서 예약도 없이 호텔에 들어갔습니다.
하루 숙박료가 만 원이었던걸로 기억이 납니다.
모든 게 낯설었습니다.
화장실
침대
무엇보다 하루에 만 원씩 하는 숙박료는 정말 당황스러우리만큼 낯설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그래서 한 번도 누구에게 이야기 못했었지만
호텔에서는 하루만 자고
5000원 하는 여관으로 옮겨서 잠을 잤습니다.
신혼여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없어서
용두산 공원 한 번 올라가 보고
사흘 만에 그냥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못난이도 그런 못난이가 없었고
쑥맥도 그런 쑥맥이 없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이건 미안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친구들이 마련해 준 10만 원 다 쓰지도 못하고
한 3-4만 원이나 썼나?
돈을 남겨와 신대원 마지막 학기 등록금으로 썼습니다.

2.
동안교회에서 목회할 때
동안교회에서 생활비를 지원해 드리는 농어촌 교회의 목회자 부부를 일 년에 한 번씩 교회로 초청해서 세미나도 하고 함께 여행도 하곤 하였습니다. 숙소는 호텔로 정하였습니다. 아내에게서 들은 말인데 사모님 중에 화장실의 좌식변기를 사용할 줄 몰라 변기를 발로 밟고 앉아서 볼일을 보시는 분들도 있었답니다.
목회자 세미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강의나 집회가 아니었습니다.
단 며칠만이라도 호텔에서 주무시고 호텔에서 붜페로 나오는 근사한 식사도 하시게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평생을 섬기기만 하면서 살아오신 목회자, 특히 사모님들이 단 며칠 만이라도 평생 받아보지 못한 서비스를 받아 보시게 하고 싶었습니다.

3.
높은 뜻 숭의교회 시절
남산 아래에 쪽방촌이 있었습니다.
쪽방촌에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나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교회 청년들이 그 아이들을 데리고 롯데월드도 데려가고 눈썰매장에도 데려가서 하루종일 놀아주는 일들을 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데리고 가 주지 않았다면 그 아이들은 어른이 될 때까지 롯데월드 눈썰매장 구경도 못하고 자랐을겁니다.

4.
옥합을 깨고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향유 값만 300데나리온.
노동자 300일 분 임금이었습니다.
노동자 일 년 연봉을 예수님 발에 쏟아 부은 셈입니다.
낭비도 그런 낭비가 없었습니다.

가끔은
평생 가난하게
아글타글 살기 바빠서
여행 꿈도 못꾸고
호텔 꿈도 못꾸고
별장 휴가 꿈도 못꾸는
가난한
목회자들
선교사들
우리 이웃들의 발에
옥합을 깨어 300데나리온 쯤 되는 항유를 쏟아 부어 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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