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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보산의 모세처럼 (눅 17:9-10)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10.04|조회수37 목록 댓글 0

2년 전 필리핀의 선교사 몇 분이 ZOOM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하셨는데 이제는 40개국에서 매일 200여명의 선교사님들이 참석하여 말씀을 듣고 뜨겁게 합심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내일 아침 한국시간으로 7시에 제가 설교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요즘 저에게 계속해서 같은 말씀을 반복하여 주십니다. 날기새에서도 벌써 여러 번 반복하여 같은 설교를 하게 하셨는데 내일 선교사님들에게도 같은 설교를 하게 하시네요. 참 불편한 설교인데 말입니다. 내일 설교 원고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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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보산의 모세처럼
눅 17:9-10


1.
1981년 12월 27일 주일 오후 임택진 목사님 은퇴식이 있었습니다.
23년을 충성스럽게 목회하시고 은퇴하시는 자리였습니다.
모든 순서가 다 진행이 되고 목사님이 답사를 하시는 시간이었습니다.
목사님의 답사는 1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7장 9절 ‘명한대로 행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우리는 다 무익한 종이라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니이다 할찌니라’는 말씀을 외우시고 ‘무익한 종은 물러갑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로 답사를 마치셨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그날부터 목사 안수 받은 지 일 년 반밖에 되지 않는 31살짜리 젊은 목사였던 나의 꿈은 저렇게 은퇴하는 것이었습니다.

2.
목사님은 우리나라 교회에 정년 법을 제안하신 분이셨습니다. 65세 정년을 제안하였으나 총회는 70세 정년으로 법을 정하였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은 65세에 은퇴를 하셨습니다. 그 때 목사님 막내가 대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제가 막내 졸업이나 한 후에 은퇴하시면 어떻겠느냐고 여쭈었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막내 공부하는 것 중요하지. 그러나 막내 공부시키려고 목회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3.
목사님 후임으로 오신 목사님이 본당을 허물고 새로운 예배당 건축을 하셨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기회가 있어서 식사를 하다가 ‘멀쩡한 예배당을 왜 헐었는지 모르겠어요. 리모델링하면 될텐데... 교육관을 지었으면 더 좋을 뻔했어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틀림없이 목사님도 나와 같은 생각이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대답은 전혀 엉뚱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내 교횐가 뭐?’
깜짝 놀랐습니다.
잘못 들으면 교회에 정내미가 떨어지신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은퇴한 사람은 은퇴한 교회의 일에 가타부타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 목사님의 생각이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에 분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계속해서 젊은 목사인 저에게 깨끗한 은퇴를 가르치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4.
큰 교회에서 담임목사 청빙을 받으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4배 쯤 큰 교회였습니다. 목사님의 마음이 움직이셨습니다. 그것을 눈치 채신 선임장로님이 목사님을 막았습니다.

‘목사님 큰 교회 가시면 생활비 많이 받으시겠지요? 저희 교회도 생활비 올려드릴터이니 가지 마세요’

그에 대한 목사님의 답변은 내 평생의 교훈이 되었다.

‘소 시장의 소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값이 올라도 가고 내려도 가지만 난 소 시장의 소가 아닙니다.’

목사님은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나 생활비 올려 줄 여유가 있다면 그 돈으로 교회 의자 해 놓으십시다’

그래서 마루바닥에서 예배드리던 교회에 의자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었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시무하신 교회에서 주일학교 1학년부터 다니다가 신학교엘 갔고 그 교회에서 교육전도사와 전임전도사 그리고 부목사까지 하다가 목사님 은퇴하시는 날 나도 교회를 떠났었습니다.

‘나는 소 시장의 소가 아닙니다’라는 말씀은 내 평생의 목회적인 교훈이 되었습니다.

5.
목사님은 원로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원로목사 대우가 비슷한 다른 교회와 비교했을 때 좀 박했습니다.
제가 다 섭섭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목사님에게 ‘섭섭하지 않으세요?’라고 여쭸습니다.
또 기막힌 대답이 나오셨습니다.
‘효자 아들보다 낫지 뭐’
‘어느 아들이 매달 몇 십 만원씩 줄 수 있겠어?’
‘감사하지’
그냥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셨습니다.

6.
2016년 12월 마지막 주일 저도 은퇴를 하였습니다.
65살에 은퇴를 하였습니다.
목사님처럼 누가복음 17장 9절 말씀을 외우고
목사님처럼 무익한 종은 떠나갑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인사하고 떠났습니다.
떠난 후 일체 교회 일에 간여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와 관계된 모든 곳에서 떠났습니다.
교회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감사하며 떠났습니다.
평생 별렀던 목사님 흉내를 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신났습니다.

7.
노자의 도덕경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공을 세웠다고 내 것이라 하지 않는다’
‘내 것이라 하지 않음으로 구태어 머물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모르는 노자도 그렇게 살 줄 알았는데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목회자들이
선교사들이
‘공을 세운 후 제 것이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와 선교지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떠날 줄 모르고 머뭅니다.

8.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기 싫은 애굽 땅으로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킵니다. 40년을 광야에서 지지리도 말 안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며 하나님께 충성했습니다.

드디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느보산에 올라가라 하십니다. 그곳에서 홀로 죽으라시는 것이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었습니다.
당연히 모세는 가난안 땅에 들어가 원로도 되고 상왕도 되어 죽을 때까지 권력을 행사하고 대접을 받다가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런 하나님의 처사가 하나도 섭섭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를 축복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고 느보산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죽습니다.
하나님의 처사가 섭섭했다면 모세의 입에서 축복이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불평과 원망이 튀어 나왔을겁니다.

‘느보산에 죽은 모세가 되게 해주시옵소서’가 제 기도가 되었습니다.

9.
선교사님들은 복음을 위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평생을 낯 선 땅에서 복음을 전하느라 가정도 잘 돌보지 못하고 자신의 몸도 잘 돌보지 못하고 선교지를 가꾼 사람들입니다. 평생을 눈물과 기도와 땀과 피로 가꾼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충성을 한 사람들의 약점이 있습니다.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공을 세웠으니 머무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이 다 가나안에 들어가려 합니다.
그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많은 보상과 댓가를 요구합니다.
결국 소 시장의 소가 되고 맙니다.
교회와 선교지를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고 맙니다.

10.
사랑하는 선교사님들
충성하십시오.
공을 세우십시오.
그리고 떠나십시오.
교회와 선교지를 내 것으로 삼지 마십시오.
모세처럼 느보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이 시대의 진정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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