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누림과 섬김의 밸런스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12.15|조회수32 목록 댓글 0

누림과 섬김의 밸런스

1.
초대 기독교에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있었다.
영지주의자들의 특징은 물질을 악하게 보는 것이다.
전형적인 이원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다.
저들은 금욕주의자들이었는데 초대기독교에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끼쳤고
그런 영향은 오늘날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2.
오래 전에
‘깨끗한 부자’라는 책을 썼었다.
많은 논란이 있었다.
비판을 넘어 비난을 참 많이도 받은 책이었다.
그 책을 비판(비난)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깨끗한데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물질적인 부요함을 깨끗지 못함으로 단정하는 일종의 영지주의라고 나는 생각했다.

3.
청빈이 있다면
청부도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난 함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사람
불의한 재물에 욕심 부리지 않아서 가난한 사람의 가난은 청빈이다.
훌륭한 것이다.

4.
부잔데 깨끗한 사람은 없는가?
깨끗하고 바르면 늘 가난해야만 하는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강하고 부한자들의 약하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책임이 아닌가?
여호와를 경외하면 복되고 형통한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 형통은 영적인 형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5.
영지주의의 반대는 기복주의다.
기복주의 신앙은 땅에서의 성공에 그 중심과 목적이 있는 신앙이다.
예수 믿으면 부자되고
예수 믿으면 성공하고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 형통한다고 가르치는데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하여 원죄적인 욕심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 인간들에게 참 매혹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6.
기독교 신앙은 영지주의도 아니고 기복주의도 아니다.
그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밸런스
그게 난 기독교신앙의 진수라고 생각한다.
물질이 전부인 것처럼 욕심내며 그것을 누리고 사는 걸 자랑하고 뽐내며 잘 산다고 착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무조건 물질은 악한 것이라 생각하여 그것을 죄악시하고 함부로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도 기독교신앙의 진수는 아니다.

7.
바울은
부한데 처할 줄도 알고 비천한데 처할 줄도 안다고 고백했다.
우리 높은 뜻 교회중 한 교회의 어느 해 표어가
누림과 섬김이었다.
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섬길 줄도 알고
섬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릴 줄도 아는 밸런스가
건강한 기독교신앙의 정신이 아닐까싶다.

8.
오늘 글은 나의 누림에 대한 변명의 색깔이 짙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나는 정말 우리 기독교신앙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