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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룬디 청년들의 북소리 좀 들어보셔요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2.26|조회수38 목록 댓글 0

브룬디 청년들의 북소리 좀 들어보셔요.

1.
오늘 엘림선교회 30주년 감사예배에 축사를 하기 위해 인천을 다녀왔다.
30년 전 인천으로 외국인 노동자(주로 중국의 조선족)들이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저들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조직된 선교회였다. 그 선교회를 시작한 사람은 하여라 목사라는 여자 목사인데 내가 73년 인천제일교회 교육전도사로 내려 갔을 때 주일학교 총무였었는데 후에 목사가 되어 엘림선교회를 평생 섬기고 있다.

2.
낯 선 땅에 들어와 이런저런 소소한 문제들을 도와주기도 하고, 상담하기도 하고, 경찰서에 가게 되거나 재판을 하게 되면 통역도 하는 등 저들에게 실제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몸으로 도우며 복음을 전했다. 명절이 되면 수 백명씩 교회로 초청해 함께 밥도 먹고 놀이도하며 저들을 위로하며 섬겼다.

그러다가 중국에 4곳이나 교회를 건축도 하였고 고아원도 짓는 등 사역을 넓혀 나갔다. 오늘 30주년 감사예배 때 그 고아원 출신 남자 청년이 참석하여 총무 목사님에게 봉투를 전하는 것을 보았다. 그 청년에게 나를 소개하며 고아원을 지어 준 목사라고 소개하여 깜짝 놀랐다. 높은 뜻 숭의교회 시절 교회가 그 비용을 내었던 모양이었다. 속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무슨 펀드가 대박 난 기분이었다.

3.
중국의 시진핑이 중국인들의 한국 방문을 막으면서 인천으로 들어오던 중국인들의 발 길이 뜸해지자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노동자들과 전쟁난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닥치는대로(?) 섬겼다. 말도 할 줄 모르면서 무조건 피하지 않고 저들을 섬기기 시작하였다. 마치 엄마가 어린 아들 딸 섬기듯, 마치 할머니가 어린 손주들 돌보듯 저들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고 30년을 섬겼다.

엘림선교회는 선교를 돈으로 하지 않고 몸으로 하는 선교회다. 성실함과 진실함 그리고 사랑으로 선교하는 선교회다. 그 효과는 비교할 수 없다. 평생 엘림을 섬기면서도 대표라는 직함도 쓰지 않고 총무를 하고 있는 하 목사님도 대단하지만 함께 사역을 하고 있는 여직원 둘 도 대단하다. 월급이라고도 할 수 없는 봉급을 받으면서도, 직원 하나는 일주일에 신장 투석을 세 번씩이나 받으면서도 대우가 좋은 곳으로 떠나라고 해도, 떠날 수 있었는데도 죽기 살기로, 신나서 총무목사와 엘림을 섬기고 있다.

3.
작년에 인천에 집회를 갔다가 엘림선교회 사무실을 방문하고 깜짝 놀랐다. 난민수용소 같았다. 한국 난민수용소 말고 아프리카 난민 수용소 같았다. 낡고 좁고 허름한 사무실에는 비가새서 곳곳에 빗물받이 물그릇을 놓고 있었다. 사무실을 옮기고 싶지만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길래 하나님이 충동질하셔서 그날 당장 운영위원회를 열어 5000만 원 지원 결정을 하였다. 오늘은 30주년 기념예배인 동시에 사무실 이전 감사예배도 겸하고 있었다.

4.
1부 예배 후 케냐, 미안마, 브룬디 난민 노동자들의 축하 공연이 있었다. 특히 마지막으로 공연을 하였던 브룬디 청년들의 북 공연은 참 감동적이었다. 완전 프로였다. 자기나라 대통령 앞에서 연주하는 팀이란다.

우리 한국처럼 외국인들이 살기 어려운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 중국 화교들이 발 못 붙이고 떠난 나라는 아마 우리 대한민국 밖에 없을꺼다. 차별이 없어도 견디기 힘든 난민 생활 노동자 생활인데 차별까지 받으며 한국 땅에서 산다는 건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엘림선교회를 통하여 따뜻한 사람 대접을 받고 섬김을 받으면 그냥 마음이 열리고 한 가족이 된다.

난민들과 노동자들 중에는 통역을 돕는다든지 이런 저런 사역을 돕는 분들이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사례를 하려고 하지만 사례를 거절하고 자원봉사를 한다고 한다.

브룬디 청년들의 북 공연은 춤 출 줄 모르는 나도 북 장단에 맞춰 춤추고 싶을 만큼 신이 났었다. 신이 나는데 눈물이 났다. 사람 차별이 심한 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저들을 저렇게 신나서 춤추게 한 엘림의 사역에 큰 감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도 아마 저 북소리 장단에 신나서 춤추시며 우셨을꺼라 확신한다.

5.
끝 난 후 근처 자장면 집에서(50년 전 인천제일교회 교육전도사 시절에도 갔었던)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함께 식사를 하였다. 깐풍기나 고추잡채 정도 더 하고 싶었으나 숫자가 만만치 않아 참았다. 이왕 사는 김에 거기까지 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우리 선교회 후원금이 본시 자장면 값으로 모여진 것인데, 자장면 값보다 훨씬 더 많이들 보내주셔서 깐풍기 고추잡채 더 샀어도 되는 건데 후회가 막급이다.

쓰지 못한 깐풍기 고추잡채 값으로, 박봉에도 기쁨으로 헌신하고 있는 직원들 설악산 여행 보내드려야겠다.

ps. 브룬디 청년들의 북소리 좀 들어 보셔요. 그 흥과 가슴 후련하게 크고 웅장한 소리를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다 들으실 수 없어요. 보시는 것에 10배 100배 상상으로 감동을 키워서 보세요. 제가 다 춤추고 싶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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