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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할 시간에 골프장 가기 (뷰티풀 랜딩 9)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4.02|조회수36 목록 댓글 0

염려할 시간에 골프장 가기 (뷰티풀 랜딩 9)

1.
암 투병을 하며 나를 힘들게 한 것들이 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구토.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항암 주사를 맞고 오면 15일 정도를 정말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먹으면 토하고, 먹으면 토하고. 이러다 죽는구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었다.

잠을 깊이 잘 수 없는 것도 참 힘들었었다. 약을 먹었는데도 한 시간 남짓 밖에는 자질 못했다. 10시 쯤 약을 먹고 잠이 들었었는데 밤 12시도 안 되서 잠이 깨면 정말 대략 난감이다. 정말 파숫꾼이 새벽을 기다림 같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뜬 눈으로 새우게 된다. 먹지 못하는 것보다 더 힘들지 않았나싶다.

그런데 그런 것 보다 더 힘든 것이 있었다. 그것은 마음이었다. 우울함, 불안함, 두려움은 먹지 못함, 자지 못함보다 더 큰 고통이었다. 이런 마음의 힘듦이 어디서 오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염려였다.

지금 닥치고 있는 고통과 고난도 힘들었지만 앞으로 닥칠 예상되는 고난과 고통에 대한 염려가 더 힘들었었다. 닥친 고난과 닥칠 고난에 대한 염려 어느 것이 더 무섭고 힘든 것일까? 그건 당연히 후자다. 이미 닥친 고난보다 앞으로 닥칠(안 닥칠수 도 있는) 것에 대한 염려가 훨씬 더 힘들고 공포스럽다.

2.
사람은 생각보다 강하다. 막상 고난을 당하면 대개 그것을 견디고 이겨내고 버텨낸다. 실제 당하는 고난보다 언제나 상상하고 예측하는 고난이 훨씬 크다. 그래서 무섭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내일 염려 내일 하라 오늘 고생 족하다’는 말씀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고생만 하지 않고 아직 닥치지 않은 내일 고생을 미리 당겨 그것도 부풀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염려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고난을 미리 가불해서 오늘 고생에 더하여 하려니 감당치 못하는 것이다.

나는 석주 간격으로 항암 주사를 맞았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항암주사를 맞고 오면 15일 정도를 먹지 못했다. 그동안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걷는 것 조차 힘이 든다. 눈꺼풀이 정말 천근만근이 되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게 된다. 난생 처음 졸도를 해 보았다. 그것도 네 번씩이나.

15일이 지나면 먹을 수 있게 된다. 항암주사 약효가 떨어져서 그런가보다. 밥을 먹으면 힘이 생긴다. 참 신기한 일이다. 밥이 들어가면 걸을 수 있게 된다. 다시 항암 주사를 맞기 전까지 일주일 정도를 걸을 수 있다. 발에 힘이 생겨 걸을 수 있게 되면 나는 골프채를 메고 골프장엘 갔다.

암에 걸리기 전엔(지금도) 골프장엘 가도 나는 카트를 타지 않았다. 18홀을 내내 걸어다닌다. 그게 내가 골프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와 목적 중에 하나다. 그렇게 걷다보니 54홀도 걸어서 골프를 친적도 있을 정도다. 15일 내내 먹지도 못하고 누워 있다가 골프장에 갈 때 카트를 타고라도 할 요량으로 나간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때도 거의 카트 타지 않고 걸어 다녔다. 지난 15일 동안 잘 걷지 못했다는 내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 되고 만다.

석 주 간격으로 네 번의 항암을 했다. 난 네 번이기 때문에 약한 항암인줄 알았다. 그런데 네 번이기 때문에 더 쎈 항암이었다. 죽다 살았다. 정말 죽다 살았다. 네 번 항암 하는 동안 네 번 졸도를 하였고, 네 번 졸도도 했지만 나는 네 번 골프장도 갔었다.

골프를 시작한지 15년 정도 되었다. 거의 60 다되어(58살)에 시작하여 잘 치지는 못한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골프 약속이 있는 날 전날 밤은 잠을 설친다. 설렌다. 쬐끄만 공 하나에 미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그동안 나는 새까맣게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비록 잠시 동안이지만(그 땐 일주일 정도) 밥 먹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앞에 격을 고난과 고통을 미리 가불하여 염려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다. 다시 주사를 맞고 15일 동안 잘 걷지도 못하고 빌빌거릴 지언정 걸을 수 있는 동안엔 그 힘과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일에 썼지 염려하는데 낭비하지 않았다.

3.
아플 땐 나도 아파했다.
힘들 땐 나도 힘들어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정신이 들면
조금이라도 힘이 생기면 그 힘을 염려함에 내 주지 않기 위해 발버둥질쳤다.

난 고스톱을 칠 줄 모른다.
그 때 나는 고스톱을 배우려고 했었다.
골프장에도 갈 수 없게 된다면
난 아내와 고스톱을 칠 생각을 했었다.

조각이라도 힘이 생기면
나는 그 힘을 쓸데도 없는 염려하는데 뺏기지 않고
죽기 살기로 재미있는 일 하는데 쓰기로 작심했었다.
그게 내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적중했었다.

4.
내가 극심한 고통과 고난 중에도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고 잘 이겨낼 수 있었던데에는 물론 믿음의 힘이 컸었다.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세상에 믿음만큼 강력한 무기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내 무기는 믿음만이 아니었다.
골프도 아주 쓸만한 무기였었고
쓰지는 않았지만 고스톱도 꽤 괜찮은 무기가 될 수 있었을꺼라고 나는 생각한다.

암 때문에 삶이 짧아졌다.
죽음이 내 코 앞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염려할 시간이 없었다.
우울할 시간이 없었다.
한가하게 앉아서 그딴 것 할 시간이 없었다.
틈만나면 놀고, 웃고, 장난하고, 편한 사람들 만나 이야기하려고 했었다.

5.
염려할 시간 있거든 그 시간에 골프장 가는 게 훨씬 지혜로운 일이다.
어제까지 졸도하던 자식이 밥 좀 먹었다고, 다리에 힘 좀 들어갔다고 골프채 메고 골프장 가는 날 보고 암이, 죽음이 기가 좀 죽지 않았었을까? 우리 아내도 골프채 메고 나가는 나를 응원해 주었다.

‘병원에서 죽지 말고 골프장에서 골프치다가 죽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진심으로 하는 지혜로운 아내의 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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