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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암에 걸렸으니 더 잘 살아야 해. (뷰티풀랜딩 11)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4.03|조회수44 목록 댓글 0

난 암에 걸렸으니 더 잘 살아야 해. (뷰티풀랜딩 11)

1.
암 선고를 받았을 때 누구나처럼 나도 제일 먼저 죽음을 생각했다. 아직도 조금은 멀리 있는 줄 알았던 죽음이 갑자기 내 코 앞에 와 있었다. 죽음은 늘 객관적이었는데 갑자기 죽음이 주관적인 내 일로 찾아온 것이었다.

‘내가 죽는구나’
‘죽을 수도 있겠구나’
‘어쨌든 내 삶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짧겠구나’

5년 생존율이라는 말을 들었다.
5년 생존율이 몇 %니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지금 내 상황에서는 5년을 사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5년을 생존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되었다고?...

나는 폐암 환자치고는 제법 럭키한 편이라 쉽지 않게 조기 발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5년 생존율이 60%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40%의 확률로 5년 안에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인거였다. 당황스러웠다.

어쨌든 내 삶이 짧아 진 거구나.

평균수명을 이야기한다.
남자들도 이젠 평균 80은 사는 모양이다.
내가 과연 80까지 살 수 있을까?
평균수명을 살아낼 수 있을까?
우리 큰 손녀는 고3이다. 18살이다.
내가 우리 손녀 딸 결혼식 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살아있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다.

2.
그냥 앉아서 죽을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수술도 받고 힘든 항암도 죽기 살기로 받았다.
그리고 꾸준히 성실하게 병원을 다니고 의사의 진료를 받고 있다.
낫기 위해서
빨리 죽지 않기 위해서 나도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노력하고 애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죽음을 처음으로 마주 대하고 내가 생각한 건 죽음이 아니었다.
죽음까지 남은 삶이었다.
짧아진 내 삶이었다.
생각보다 삶이 짧아졌기 때문에 내 삶은 더 귀한 삶이 되었다.
더 비싼 삶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죽음은 죽을 때 가서 죽으면 되고
살아 있는 동안은 죽음에 시간과 마음을 뺏기지 말고 남아 있는 귀한 내 삶에 집중하여
전보다 더 열심히, 전보다 더 훌륭하게, 전보다 더 아름답게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암에 걸렸으니 더 잘 살아야 해’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뷰티풀 랜딩 (Beautiful Landing)이었다.

3.
아름다운 삶에 필요한 건 은혜였다.
공포와 우울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내 삶을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울 수 있다면
그래서 ‘정말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라고 고백한 찬송가 작사자처럼 암에 걸렸어도 내 주 예수 때문에 천국 같은 은혜의 충만함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유튜브를 키지 않고, 암을 검색하지 않고, 성경을 펴고 은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죽기 살기로 날마다 새벽에 은혜를 캐내어 내 의식과 무의식 속에 가득 채워 넣어 문득문득 찾아오는 우울, 불안, 짜증이 들어 올 틈이 없게 만들자 생각했다.

그것을 나 혼자만 누리지 말고 유튜브에 올려 그 은혜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자 싶어 ‘날마다 기막힌 새벽’을 시작하였다. 2019년 6월 17일. 그 때는 내가 항암으로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을 때였다. 앉아 있을 힘도 없을 때였다. 항암이나 끝나고 시작해도 좋았겠지만 쇠뿔은 단김에 빼는 것이라 생각난 김에 그냥 시작하였다.

사탄이 방해해서 그랬는가 이유 없이 녹화 도중 툭툭 끊어졌다. 수도 없이 끊어졌다. 겨우 녹화를 마치고 그것을 둘째 아이에게 와이파이로 전송해 주어야 아이가 편집을 해서 유튜브에 올리는 건데 그것도 가다가 끊기고, 가다가 끊기고를 반복하였다. 녹화를 시작하여 편집이 완료되어 첫 방송을 올릴 때까지 18시간이 걸렸다. 18시간은 고사하고 18분도 앉아 있을 힘이 없을 때였다.

그러나 그 때 포기하면 영원히 못할 것 같아 그냥 날기새 녹화하다가 죽자 생각하고 고집을 부렸다. 오늘로 1187번째 날마다 기막힌 새벽 영상이 올라갔다. 영상을 준비하는 게 만만치 않다. 원고를 준비해야 하고, 녹화를 해야 한다. 토요일에는 ‘안녕하세요? 목사님’이라는 상당코너를 준비해야 하고 요즘은 또 비젼 아카데미라는 특강을 준비하여 틈틈이 녹화를 하고 있다. 제법 바쁘다. 바쁘게 지내다보니 4년이 지났다. 5년 생존율이 60%라는데 벌써 4년을 지냈다. 그 4년을 은혜 충만한 가운데 신나게 건강하게 보냈다. 덕분에 죽음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우울해지거나 짜증을 부릴 시간이 없었다.

암이 나를 죽게 한 것이 아니라 암이 오히려 나를 더 잘 살게 한 셈이다.

4.
암 환우들과 보호자들을 위한 첫 집회를 덕소에 있는 높은 뜻 덕소교회에서 시작하였다. 500명 가까운 환우와 보호자들이 참여하였다. 옥합을 깨는 심정으로 정성껏 집회를 준비하였다. 물 한 병도 아직까지 날 위해서는 사 본적이 없는 에비*을 사고 떡 한 조각도 압구정에 있는 유명 떡집 떡을 준비하였다. 영상, 조명, 찬양팀 예산 아끼지 않고 준비하였다.

그날 나는 신체적으로 이제껏 살아온 70평생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집회 전 날 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졸도도 했었다. 거의 들것에 실려와야할 지경이었다. 실제로 차에서도 누워서 왔고, 집회장에 와서도 나는 누워 있었다. 설교 시간에 겨우 올라가 앉아서 설교했다. 설교 제목이 근사했다.

‘믿음의 가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어느 영화의 유명한 대사를 패러디 한 것이었다.
‘우리가 암에 걸렸지 가오가 없냐?’
암에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어께 펴고 암을 정면으로 돌파해 보자는 설교였다.
2시간 40분 거의 3시간의 집회였다.
나도 40분을 설교했었다.

아내가 나에게 ‘당신 천상 목사다’ ‘다 죽어 가더니 40분을 설교하더라’며 놀라워했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거기에 참석한 암 환우들 대개 몇 분도 앉아 있기 힘든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2시간 40분 집회를 쌩쌩하게 감당하였다. 은혜의 힘이 고통의 힘을 이겨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 6번의 집회를 했었다. 서울, 동탄, 천안, 부산등등. 서울에서 집회할 때 부산에서도 오고, 부산에서 집회할 때 서울에서도 오고. 암 환우들과 보호자들이 집회에서 큰 위로와 힘을 얻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암에 걸리기 전에도 교인들 중에 암에 걸린 환자들이 있었다. ‘얼마나 힘드세요?’라고 하면 교인들은 위로를 받았다. 그런데 내가 암에 걸리고 보니 위로에 몇 배의 힘이 더 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똑같이 ‘얼마나 힘드세요?’라고 해도 전보다 몇 배의 위로를 받았다.

난 요즘 엉뚱한 생각을 한다.

‘암도 은산가?’^^

암은 농담하고 장난 칠만큼 만만한 놈이 절대로 아니다. 나도 죽다 살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도 암만 생각해도 내겐 암이 은사임에 틀림없다. 암에 걸린 후 4년은 암에 걸리기 전 68년과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삶이 되었다.

암이 나를 더 잘 살게 하였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나는 모른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육체적으로 생각하면 점점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리는 없다.
그래도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더 잘 살기 위해서 발버둥질 칠꺼다. 그러다가 지쳐서, 신나게 지쳐서 하나님 앞에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암에 걸렸으니 나는 더 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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