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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 dorm 오픈을 앞두고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8.09|조회수37 목록 댓글 0

Mk dorm 오픈을 앞두고

1.
92년도인가?
중국 연변과기대를 방문하였다.
직원과 교수들이 선교적인 소명을 가지고 헌신한 학교였었다.
내가 목회하던 교회의 세 사람이 직원과 교수 그리고 일년 단기봉사로 참여하였었다.

2.
교수와 직원들은 모두 활기 있어 보였다.
소명감에 붙타올라 공산국가의 만만치 않은 통제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3.
내 눈에 띄인 사람들이 있었다.
저들의 가족들이었다.
아내들과 특히 어린 자녀들.
특히 아이들이 마음에 많이 걸렸다.
마음대로 나가 놀지도 못하고
학교가면 말도 안 통하고
당시만해도 한국과 비교하여 열악했던 주변 환경
특히 화장실

4.
교회로 돌아와 방학을 이용하여 봉사팀을 꾸려 보냈다.
봉사팀들의 주 사역(?)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꼭두새벽부터 우리 봉사팀 집사님 문앞에 와서 ‘집사님 탁구치러가요’하며 졸라대곤 하였다.

직원들 중에는 싱글 청년들도 있었는데 업무후 시내 볼링장에 갔다가 총장님에게 된통 야단을 맞았다. 내가 청년들 역성을 들어주었다. ‘총장님 이 친구들 볼링쳐야 숨통이 터져서 일 더 잘 할 수 있어요’ ‘직원들 볼링칠 비용 우리 교회에서 보내드릴께요’

5.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선교사 파송을 두 번째로 많이 하는 나라란다. 세계 어디를 가든 그곳에는 선교사들이 있다. 선교사는 아마 직업적(?) 스트레스가 가장 높은 직업군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들은 선교사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면 대번 믿음 없는 사람 취급한다. 천하의 선지자 엘리야도 극도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로뎀나무밑에 숨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선교사들에게 충성만 강요하고 저들의 자녀교육과 안식과 쉼에는 참으로 무심하고 인색하다.

6.
내 눈에 절대적인 쉼과 휴식이 필요한 선교사들이 많이 보였다. 몇 년 전 엉뚱한 다이돌핀 프로잭트라는 이름하에 선교사들 가족 휴가 보내드리는 캠페인을 한 적이 있었다. 탈북청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선교하시는 선교사님이 계셨다. 사모님이 암 말기 투병 중이었다. 내가 잘 아는 탈북청년이 ‘우리 사모님 휴가좀 보내주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제주도 호텔 스위트룸을 잡고 개인 가이드를 붙여서 10일 정도 가족 휴가를 다녀오시게 하였다. 700만 원 가량의 비용이 들었다. 사모님이 기뻐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결국 하나님 나라로 가셨다. 루게릭 병으로 남은 삶이 얼마남지 않은 아버지를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가고 싶어서 딸 아이 교육보험을 깨려고 하는 선교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휴가비를 보내드렸다. 휠체어 밀며 제주도 여행을 하고 목욕탕가서 아버지 등도 밀어드리고 돌아왔다. 얼마 후 그 아버님도 소천하셨다. 선교사님 한 가정당 평균 300만 원에서 400만 원 선을 지원해 드렸다. 꽤 많은 선교사님 가정들을 휴가보내드릴 수 있었다.

7.
아내 고등학교 절친 동창이 아주 큰 부자다.
몇 년 전 여름에 우리 쉬라고 가평에 있는 당신 별장을 빌려주었다.
너무 좋은 곳에서 쉬면서
우리 선교회 선교사님들도 이런 곳에 와서 휴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평 별장하고는 비교할 수 없지만
속초에 아주 좋은 아파트 전세를 얻어 선교사님들을 위한 휴양소를 꾸몄다.
침대 소파 가전제품 하다못해 침구 하나까지 최고로 신경써서 준비하였다.
주변 교회의 권사님과 목사님 사모님이 자원봉사자가 되어주셔서 입주하시는 날 웰컴 꽃바구니와 과일바구니까지 준비해서 맞아 주시고 침구하나도 하루를 사용하시고 가셔도 세탁하여 늘 새것으로 깨끗하게 준비하여 선교사님들 가족을 맞는다.
제법 많은 분들이 사용하셨는데 우리의 정성을 알아주시고 감동을 받으시는 것 같아 얼마나 뿌듯하고 보람있는디 모른다. 우리 선교회는 서울과 과천에 선교사님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 둘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도 속초와 똑같이 가구나 침대. 그리고 침구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관리하고 있다. 다만 너무 작은 숫자가 공개적으로 신청을 받아 운영은 못하고 아름아름 연결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제법 공실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8.
치앙마이에 선교사 자녀를 위한 dorm을 드디어 내일 오픈한다. 첫 입주 학생이 들어오는 날이다. 이제 14살 된 꼬맹이가 중동에서 선교하시는 부모를 떠나 들어오게 된 것이다. 엊그제 dorm을 보고 만족해 하던. 꼬맹이와 부모님들 얼굴을 보며 하나님께 여쭤보았다. 저(에스겔선교회) 잘 했지요?

9.
치앙마이에서 제법 좋은 주택단지 안에 집을 마련하였다. 새로 지은 집이다. 방이 넷인데 dorm parents가 거하실 제법 큰 안 방, 2인실 두개, 1인실 하나. 5명까지 받을 수 있다. 학교 등하교를 위하여 차도 마련하였다. 아이들의 학습지도와 놀이 상담을 담당할 자원봉사자도 대기 중이다.

10.
내가 먼저 들어와 살아보고 있는데 너무 좋다. 이런 집 하나 더 세 얻어서 mk dorm말고 선교하다 지친 선교사님들이 쉬어갈 수 있는 휴양소로 운영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이야기 잘못하면 욕 얻어 먹기 딱 좋다. 우리 집 소파 식탁 가구는 최소한 다 30년 이상 된 것이다. 돈을 주지 않으면 쓰레기 처리도 할 수 없는 물건들이다. 난 좋은 가구 침대 침구 별로 관심 없다. 난 그런 거 없어도 괜찮다.

난 큰 교회 목회자로서 분에 넘치는 대접 많이 받고 살았다. 난 더 안 받아도 된다. 그러나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죽어라 선교만 하다가 지친 선교사님들과 저들의 아이들을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섬겨주고 싶다. 그러니 욕을 해도 소용없다. 난 하나님이 칭찬해 주실꺼라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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