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7주년을 맞으며
1.
오늘은 저희 부부의 결혼 47주년 기념일입니다.
1977년 8월 15일 청량리중앙교회에서 임택진 목사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정말 가난했던 시절이라
아내 결혼 반지 하나 변변하게 못해주고
여행을 다녀 본 적이 없어서 신혼여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계획을 세울 수 없었고
설령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고해도 신혼여행을 갈 돈이 없어서 못 갔을 겁니다.
2.
친구들이 신혼여행 가라며 10만 원을 만들어줘서 그냥. 무턱대로 새마을 기차타고 부산으로 갔는데 어디를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해 그냥 사흘만에 도로 서울로 올라오고 말았습니다. 신혼여행비 10만 원도 다 쓰지 못하고 남겨와서 신대원 졸업반 마지막 등록금을 냈었지요. 천하에 바보도 그런 바보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그렇게 바보는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아무 생각없이 결혼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3.
무녀독남 외아들 홀어머니 모셔야 하는 결혼 처갓집에선 엄청 반대였습니다. 특히 장인 어른의 반대가 심했습니다.(장모님은 결혼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내가 부엌에서 밥을 하면서 부뚜막에 앉아 책을 읽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연탄가스 중독이 되어 쓰러졌답니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었는데 장인 어른은 제 아내가 결혼 반대를 비관하여 자살을 하려고 한 줄로 착각하시고 ‘자식 이기는 부모 어딨냐?’시며 결혼 승락을 해 주시는 바람에 결혼을 할 수 있었는데 아내는 종종 ‘그때 아버지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후회(?)를 하곤 했었습니다. 저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하셨던 어머니에게 제 아내는 당신에게서 자기 아들 뺏아간 연적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4.
치앙마이에서 결혼기념 47년을 맞이 하며 꽃다발 하나 준비했습니다.
‘도망 안가고 47년 동안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인사와 함께.
장난스럽긴 하지만 진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