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묵상 #180-2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Nearer, My God, to Thee)
찬양곡: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영어제목: Nearer, My God, to Thee
작사자: 사라 플라워 아담스(Sarah Flower Adams, 1805-1848)
작곡자: 로웰 메이슨(Lowell Mason, 1792-1872)
찬송곡조(Hymn Tune): BETHANY
https://youtu.be/u_XCVeKT1QU
1. 이 찬송 가사의 특별한 싯귀
이 찬송가의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미국의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가 체험한 한 캠프의 추억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부를 때 어떻게 소리의 파도가 나무 숲속을 지나서 오는가를 기억하게 했다.
인간에게 바탕을 둔 소리의 위대한 숨어있는 언어 속에는 놀라운 힘과 고양함이 있었다>
이 찬송의 영시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싯귀를 소개하며 묵상을 나누고자 한다.
1)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to Thee’
이 찬송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구절이다.
계속해서 한 절이 끝날 때마다 이 구절이 반복되고 있다.
작사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참으로나 명확한 부분이기도 하다.
계속 강조하고 반복할 정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싶다는 작사자의 마음이 우러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것은 이 찬송을 부르는 모든 성도들도 동일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를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 ‘Though like the wanderer, the sun gone down / Darkness be over me, my rest a stone.’
‘비록 방랑자처럼 해가 지고 어둠이 날 덮을지라도 나는 쉴 곳은 돌 뿐이네’
형 에서를 피하여 삼촌이 거주하는 밧단아람으로 가는 도중에 날이 저물어 돌을 베개삼고 누운 장면을 묘사한 내용이다.
야곱에게는 근심과 걱정의 큰 구름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야곱은 복수심에 불타있는 형으로부터 숨을 피난처를 찾던 방황자였다.
그는 간교한 방법으로 형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으며, 눈먼 늙은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간교한 꾀를 부렸고, 거짓된 수단으로 장자에게 내리는 축복을 가로채기도 했다.
이런 형편에 놓인 야곱이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져서 유숙하려고 땅바닥에 누워 돌베개를 베고 잔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처량하고 쓸쓸한 모습이다.
이런 황량한 지경에서 사다리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 계신 것을 보게 된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듣게 된다.
이어 4절에서 잠이 깬 야곱이 두려워하며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고백하고 돌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부어 벧엘이라 칭하게 된다.
이 꿈의 환상은 곤경에 빠져 패배의식으로 가득차 의기소침해 있던 야곱을 해방시켰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미래의 빛으로 비춰져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었었다.
3) ‘Still all my song shall be, Nearer my God, to Thee’
서실 찬송의 원 가사인 영시(英詩)를 번역함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찬송시가 18세기와 19세기 영어이기에 현대 영어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고어가 많고, 시 특유의 도치법으로 된 시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번역할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어려움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영문학을 공부한 조카와 친구 교수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진행하고 있음을 알린다.
위 싯귀도 ‘shall’의 의미와 ‘will’의 의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난항을 겪은 적이 많았던 것이다.
의미의 차이는 조금일지 모르지만 그 차이를 알고 싶은 것이다.
여러 검색을 통해 한 가지 알아낸 것은 대략 다음과 같다.
미국 영어에서야 ‘will’이 ‘shall’를 90%가량 대체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엄연히 시대도 다르고 작사자가 19세기 영국인이기에 shall을 쓴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will’은 자신의 의지가 주가 되는(resolve) 표현이라면, ‘shall’은 의지도 의지이지만 해야 할 의무에 대한 것(be obliged to)을 하겠다는 표현이라는 기록을 찾았다.
즉 ‘여전히 모든 나의 노래는 주님을 향한 것’이라는 이 싯귀 속에는, 내가 하나님을 노래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나의 노래를 시련이 와도 계속되어질 것이라는 의지의 문구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시의 5절이 우리 찬송에서는 번역이 되지 않아 조금은 아쉽게 여겨진다.
2. 이 찬송에 얽힌 일화들
이 찬송가에 얽힌 일화는 아주 많다.
특히 역사상 유명 인물들의 사건과 관련이 있기도 하다.
특히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Victoria)과 에드워드 7세(Edward VII), 미국의 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와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가 좋아했던 찬송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1) 타이타닉호의 일화
특히 이 찬송은 1912년 RMS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면서 선상에서 밴드가 마지막까지 연주한 곡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는데, 생존자들은 이 기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사와 관련된 세 곡 모두 타이타닉에 관한 영화에 사용됐다.
1912년 4월14일 주일 밤 세계 최대의 호화로운 영국의 여객선 <타이타닉:Titanic>호가 대서양 횡단의 처녀 항해를 하던 중 캐나다 동해안에 있는 섬 펀들랜드(New Foundland) 부근에 이르렀을 때 북극에서 떠내려오는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하고 있을 때였다.
이 타이타닉호의 영화에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고 있다.
사고 당시 승선 인원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한 구명보트를 노약자나 여성들에게 양보하거나 타지 않고 죽음을 기다렸던 대다수의 영웅들이 그러했듯, 월레스 또한 배가 침몰하여 곧 사망에 이를 것이란 직감에 무엇을 해야 하나 한동안 망설였다.
가족과 배에 타기 전 결혼을 약속한 예비 신부(마리아 로빈슨)에게 남길 어떤 말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침몰하는 타이타닉과 운명을 함께 하기로 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여행객들을 위로하는 한편 그가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은 바로 음악 연주라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이라는 찬송가가 선상에 울려 퍼지자 우왕좌왕하던 승객들이 일순간 숨이 멎은 듯 정적에 휩싸였다.
세계 최대의 해난 사고를 당한 이 비운의 배가 점점 침몰해 가고 있었을 때 기사도를 발휘하는 영국 사람들은 몇 척의 구명정에 705명의 부녀자와 어린 아이들만 구조하고 희망을 잃은 1.635명의 생명들이 갑판 위로 올라와 침몰해 가는 배와 더불어 운명의 시간만 기다리고 잇는데 악단 지휘자 월레스 하틀리(Wallace Hartley)가 ‘Nearer, My God, to Thee’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갑판의 1.635명은 배가 물속으로 감출 때까지 목이 메라고 불렀다.
그 파도는 비록 그 1.635명의 육신은 삼켰으나 그들의 영혼은 삼키지 못한 채 영원한 하늘나라로 갔다.
수척의 구명정에 분승한 부녀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
“기쁨의 날개로 하늘 갈 때
우주의 별들을 다 지나서
찬송을 부르며 주님께 가리라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5절을 부르며 서서히 물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침몰 10분 전까지 연주를 이어 가던 8명의 악사들은 서로에게 행운을 빌며 헤어졌지만 월레스는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고 나머지 단원들은 모두 실종되었다.
그가 생의 마지막에서 연주한 음악은 그대로 그의 유언이 된 것이다.
타이타닉과 함께 운명을 함께했던 월레스의 장례식엔 4만명 이상의 인파가 운집하여 추모했으며 그의 고향 영국 콜른과 호주에는 각각 기념비가 세워졌다
타이타닉호에 탔던 승객이 모두 다 기독교도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죽음을 눈앞에 바라보며 하나님께 더욱더 가까이 가겠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거짓 없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2) 어느 선교사의 이야기
남양군도의 통가 섬에서 복음 전도를 하던 어떤 선교사의 이야기다.
어느 날 자주 갈 수 없었던 산호섬에 순회 전도를 갔을 때 수년 전에 회개한 한 노인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급히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기묘한 광경을 보았다.
노인은 그의 방을 가로 지나간 항목을 껴안고 몸을 지탱하면서 반은 축 늘어진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유언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가까이 간즉 노인은 무엇인가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바로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이란 내용의 찬송이었다.
당시 이 찬송이 남양군도에는 알려지지 않은 찬송이었는데 어떻게 이 섬에서 이 사가를 들게 하였즞니 하나님을 섬기는 주의 백성에게 일어난 기적이리 할 수 있는 실화이다.
3) 미국 대통령 월리엄 매킨리의 장례식 찬송
1901년 9월10일의 일이었다.
미국의 모든 교회에서는 예배를 드리고, 공장의 직공들은 그들의 기계를 멈추었으며, 농민들은 밭을 갈던 쟁기를 멈추었고, 거리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흉한에게 저격당한 월리엄 매킨리(William McKiniey)대통령에게 조의를 표하기 위하여 5분간 고요히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큰 소리로 기도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 찬송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을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이었다.
그 대통령은 빈사 상태에서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라고 하였는데, 대통령이 임종할 때 지켜본 주치의 맨 박사가 전하기를 “나의 하나님 당신께로 가까이 가게 하옵소서. 내 가는 길 비록 십자가 짐 같아도 이것이 나의 영원한 소원입니다”라고 하며 눈을 감았다고 전하고 있다,
무디 목사와 동역한 성가 가수 아이라 데이비드 생키(Ira David Sankey)가 매킨리 대통령이 살았을 때 방문하였는데 대통령은 전도 집회에 자주 출석하였으므로 생키가 부르는 복음 성가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 내용을 설명하자 생키는 서슴치 않고 “대통령 각하도 매우 훌륭한 노래 솜씨를 가지고 계십니다.”라고 칭찬하였다.
대통령은 미소를 지으며 “그것은 그럴런지 모르지요. 어쨌든 나는 성심으로 부르고 특히 그 내용을 이해하고 부르고 있지요”라고 하며 매우 기뻐하였다고 한다.
다음날 대통령은 뉴욕으로 가서 제5번가 장로교회에 출석하여 이 찬송을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불렀다고 하는 기사가 사진과 더불어 신문에 실려있었다.
그의 장례식 때 이 찬송을 되풀이해서 끝없이 불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4) 한국전쟁 때 일어난 찬송의 기적
6.25전쟁 때 일선에서 종군하고 돌아온 어느 군목의 말이다.
아군이 한 때 적병에게 포위되었을 때 유엔군 병사 한 명이 포로가 되어 즉결총살을 당하게 되었다.
인민군이 마지막 할 말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자 그는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그가 부른 노래는 바로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의 찬송이었다.
그 병사는 자기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는 순간을 이 찬송으로 애절하게 불렀을 것이다.
찬송을 다 부르고 눈을 떴을 때 살기등등하였든 그들의 총부리는 땅으로 축 처져 있었고 무언의 침묵만이 감돌았다고 한다.
이 찬송이 그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 총살을 중지하고 풀어주었다는 기적적인 이야기가 있다.
이토록 이 찬송은 위대한 힘을 지녔고, 하나님은 이 찬송을 사용하시어 큰 역사를 이루셨다.
5) 지금의 KFC를 있게 만든 찬양
커널 샌더스는 공원 벤치에서 노숙하던 자신의 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의 동상을 가게 앞에 세웠다.
그는 수많은 사업 실패와 63세에 부도로 감옥에 다녀오니 가족도 친구도 모두 떠나고 남은 것은 낡은 트럭 한대였다고 한다.
공원 벤치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공중화장실에서 씻으며 생활하던 그가 어느 날 골목을 거닐다가 찬송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자그마한 풍금 소리에 이끌려 다다른 곳은 나무로 지은 작은 교회였고 그 안에서 젊은 자매가 풍금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들려오는 찬양에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뒷자리에 앉아 서럽게 울던 샌더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중 주님의 임재를 경험했다고 한다.
주신 말씀은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주님은 빛 가운에 홀연히 나타나셔서 저 말씀과 함께 "네가 잘하는 것을 하렴"이라는 마음을 주셨다.
그러던 중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닭 다리를 대접하던 기억을 떠오르게 되었고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후원자를 찾아다녔다.
1,008명의 사람들에게 거절 당했지만 빌립보서 말씀을 붙잡으며 1,009번째에 후원자를 만나 지금의 KFC를 만들어냈다.
그때의 찬양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샌더스의 명성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둠 가운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https://youtu.be/BksaLTN1DOg
6) 기타 다양한 실화들
* 미국의 남북전쟁이 치열해 졌을 때 연합군이 미국 감리교의 마아빈(Marvin) 감독을 그의 집에서 추방하였다.
실망 낙담한 마아빈 감독은 알칸사스의 시골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는데 길가에 있는 통나무집에서 가냘픈 찬송소리가 들려오는데 자세히 귀를 기울인 즉 이 찬송의 4절이었다고 한다.
그는 가만가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주 노쇠한 부인이 와병 중에도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여 평화스러이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이때 그 감독은 무한한 감명을 받고 원기 백배하여 소망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 영국 북부지방의 한 부인이 어느 날 영혼의 구원 문제를 가지고 목사를 찾아왔다.
그녀는 그때까지 영혼의 양식을 구약성경에서만 받아왔다.
그녀는 언젠기 유일교 집회에 참석했을 때 불리었던 유일의 성가만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 찬송이 “내주를 가까이 하게함은”이었다.
부인은 말하기를 “나는 생각하며 기도하고 이 찬송을 되풀이해서 부르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때 목사는 요한복음을 정독하고 하나님이 그의 길을 밝혀 주시도록 기도하라고 권하였다.
그 후 목사가 다시 방문하였을 때 그는 요한 복음서를 통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 아버지께 더 가까이 나갈 수가 있었다고 감사했다.
* 미국 역사상 가장 비참한 사고 중의 하나인 존스타운(Johnstown)홍수 때의 일이다.
홍수가 철도를 덮친 것을 모르고 기차가 달려가다가 홍수 속으로 뛰어들었다.
기차에 타고 있던 수백 명의 승객이 물속에 잠겨 수장되게 되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이 절박한 순간 거기 타고 있던 승객들은 이제 최후의 순간을 맞아 모두 하나같이 이 찬송을 불렀다.
객차가 점점 물살에 휩쓸려 그 속의 생명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휩쓸어 갔으나 그들의 찬송은 영원히 살아남아 있다.
* 미국의 남북전쟁의 격전지 도넬슨 요새(Fort Donetson)에서 발견된 북치는 소년은 불쌍하게도 포탄에 맞아 팔이 잘려있었는데 숨이 꺼지려는 순간 속삭이듯 가냘픈 음성으로 이 찬송의 5절 마지막 소절을 부르고 있더라는 일화도 있다.
짧은 일화를 소개하였지만 참으로 감동된 일화들이다.
https://youtu.be/b53tQFA32Qs
3. 한국찬송가에 소개된 과정
이 찬송가는 1887년 아펜젤러 선교사가 처음 우리말로 설교할 때 역시 우리말로 번역되어 처음 불리운 찬송가이다.
그해 부활절날 벧엘교회(지금의 정동교회)에서였다.
다음은 1907년 완역되어 불리던 “내주를 가까이”의 찬미가이다.
<1절>
우리 쥬 갓가히 하난거시 십자가 짐갓치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이 늘 찬숑하면서 더 쥬끠 나가기 원합내다.
<2절>
내 고생 하난 것 녯 야곱이 돌베개 베고잠 갓삽내다
꿈에드 소원이 늘 차숑하면서 더 쥬끠 나가기 원합내다.
<3절>
뎌 븨는 층대난 우리들의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텬사여 우리와 늘 찬송하면서 더 쥬끠 나가기 원합내다.
<4절>
야곱이 니러나 잠깬 후에 돌단을 싸흔 것 모본하세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숑하면서 더 쥬끠 나가기 원합내다.
그리고 게일 선교사는 1910년 발간한 자신의 저서 <과도기의 한국>에서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 한국인이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가 중의 하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