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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묵상

찬송가 묵상 #199 내 주님은 살아 계셔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9.18|조회수180 목록 댓글 0

찬송가 묵상 #199
내 주님은 살아 계셔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찬양곡: 170장 내 주님은 살아 계셔
영어제목: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작사자: 찰스 웨슬리 (Charles Wesley, 1707-1788)
작곡자: 조지 프리드리히 헨델 (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
찬송곡조(Hymn Tune): BRADFORD
찬송가사:
1.
내 주님은 살아 계셔 날 지켜 주시니
그 큰 사랑 인하여서 나 자유 얻었네
2.
나의 구원되신 주님 내 소망되신 주
항상 나와 함께 하셔 곧 다시 오시리
3.
나를 거룩하게 하려 주 나를 부르니
주의 은혜 내게 넘쳐 주 뜻을 이루리
4.
굳센 믿음 나 가지고 주 말씀 따르면
주님 다시 강림할 때 날 영접하시리 아멘

 https://youtu.be/4dAXl33VbVg

[찬송 묵상]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욥기 19:25)

 

사실 21세기 새찬송가의 이 찬송 가사는 번역에 있어서 어색한 부분이 너무도 많다.
어쩌면 익숙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전의 ‘내 주는 살아계시고’의 가사가 더 친숙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새찬송가의 가사는 기존 한국교회 성도들이 익숙하게 부르던 찬송의 가사를 몇 개의 단어만 바꾸거나, 이처럼 어색한 흐름으로 변경한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https://youtu.be/t2Gg2XyoznU

 

이 찬송은 영국의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형제 목사가 1742년에 출판한 [찬미와 성시(Hymns and Sacred Poems, 1742]에 발표한 부활 찬송이다.
이 찬송의 배경 성구는 욥기이다.
챨스 웨슬레의 시에 붙은 이 찬송 곡조는 유명한 조지 프레드릭 헨델(George Fredrick Handel)의 불후의 명작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에 제3부 <영생과 부활>의 45번, ‘주가 살아계심을 안다’라는 소프라노의 아리아이다.
이 메시야는 1741년 여름에 불과 24일이라는 단시일에 작곡되었다.
제1부는 예수의 강림, 제2부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제3부는 예수의 부활과 영생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작품의 첫 공연은 헨델 자신의 지휘로 1742년 4월 13일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공연되었다.
이 메시야의 모든 곡들이 다 훌륭하지만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할렐루야’ 합창곡은 모든 곡중에서 가장 절정을 이루는 곡이다.
이 <메시야>가 1743년 런던에서 연주될 때였다.
청중석에 앉아있던 영국 왕 조지 3세가 ‘할렐루야’가 연주되는 부분에 이르러 너무 감동한 나머지 자리를 차고 일어나 모자를 벗어들고 서서 곡이 끝날 때까지 앉지 않았다.
왕의 그런 모습을 보고 다른 청중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것이 관습이 되어 오늘날도 ‘할렐루야’가 연주되는 부분에서는 청중의 기립이 관례로 되어있다.
작곡자 자신도 자신의 곡을 감상하면서 "나는 하나님을 보았다"라고 외친 부분이 바로 <할렐루야> 합창이다.

 

찰스 웨슬리가 쓴 이 찬송시는 4단 23절로 되어 있는데, 부제 ‘Rejoicing in Hope’와 함께 1742년 Hymns & Sacred Poems에 실려 출판됐다.
여기서는 8절까지의 가사만 조사되었고, 미국 교회에서는 보통 4절로 압축하여 회중 찬송으로 부르고 있다.
웨슬리는 헨델의 <메시아> 중 이 곡을 듣고 커다란 감동을 받아 이 찬송을 썼다고 한다.

 

원래 조지 화이트필드가 펴낸 찬송시집에 익명으로 실린 이 가사는 그 후 영국의 찬송시인 사무엘 메들리(Samuel Medley)가 욥기 19:25의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시니”라는 말씀을 신약성경의 사건들에 비추어 9절 길이의 찬송시로 지은 동일 제목의 가사도 있다.
여러 자료를 검색한 결과 메들리의 찬송시로 된 찬송이 미국교회에서 많이 불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8절까지의 확인된 가사는 다음과 같다.
1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what comfort this sweet sentence gives!
He lives, He lives, who once was dead;
He lives, my everlasting Head.
나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이 감미로운 문장이 얼마나 위로를 주는지요!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주님은 한때 죽으셨지만 살아 계십니다.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나의 영원한 대장이십니다.
2
He lives triumphant from the grave,
He lives eternally to save,
He lives all-glorious in the sky,
He lives exalted there on high.
주님은 무덤에서 승리하여 사시며
구원을 위해 영원히 사시며
하늘에서 영광으로 사시며
높은 데서 사시느니라
3
He lives to bless me with His love,
He lives to plead for me above,
He lives my hungry soul to feed,
He lives to help in time of need.
주님은 그의 사랑으로 나를 축복하기 위해 살아 계시고,
위에서 나를 위해 간구하기 위해 살아 계시며,
주린 나의 영혼을 먹이시기 위해 살아 계시며,
필요할 때마다 살아 계시어 도와주십니다.
4
He lives to grant me rich supply,
He lives to guide me with His eye,
He lives to comfort me when faint,
He live to hear my soul's complaint.
주님은 살아서 나에게 풍성한 것을 주시며,
살아 계시어 나를 눈으로 인도하시며,
주님은 살아 계셔서 내가 곤비할 때 위로하시며,
살아 계시어 내 영혼의 탄식을 들으시는도다.
5
He lives to silence all my fears,
He lives to wipe away my tears,
He lives to calm my troubled heart,
He lives all blessings to impart.
주님은 내 모든 두려움을 침묵시키기 위해 살아 계시고,
내 눈물을 닦아 주시기 위해 살아 계시며,
내 괴로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살아 계시며,
주님은 모든 축복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 살아 계십니다.
6
He lives, my kind, wise, heav'nly Friend,
He lives and loves me to the end;
He lives, and while He lives, I'll sing;
He lives, my Prophet, Priest, and King.
주님은 살아 계시고, 나의 친절하고 현명하며 하늘의 친구여,
주님은 살아 계시고 끝까지 나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살아 계시고 그분이 살아 계시는 동안 나는 노래할 것입니다.
주님은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으로 살아 계십니다.
7
He lives and grants me daily breath;
He lives and I shall conquer death;
He lives my mansion to prepare;
He lives to bring me safely there.
주님은 살아 계시고 나에게 날마다 숨을 쉬게 하십니다.
주님은 살아 계시고 나는 죽음을 정복할 것입니다.
주님은 준비하기 위해 내 저택에 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나를 그곳으로 안전하게 데려가시기 위해 살아 계십니다.
8
He lives, all glory to His name!
He lives, my Jesus, still the same.
Oh, the sweet joy this sentence gives,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주님이 살아 계시니 그의 이름에 모든 영광이 있도다
예수님, 그분은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오, “내 구주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나는 아네!”라는
이 문장이 주는 감미로운 기쁨입니다

사무엘 메들리 (Samuel Medley, 1738-1799)
메들리는 1738년 6월 23일 그의 아버지가 학교를 운영하던 Herts의 Cheshunt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국 해군에 입대했는데 1759년 라고스 항구에서 프랑스 함대와의 전투에서 중상을 입은 그는 현역에서 은퇴해야 했다.
이 시기에 홧츠(Dr. Watts)가 그에게 읽어준 설교가 그의 회심으로 이어졌다.
그는 런던의 이글 스트리트에 있는 침례교회에 합류했고, 그 후 Gifford 박사의 지도를 받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열었고 몇 년 동안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설교를 시작한 그는 1767년에 왓포드에 있는 침례교회의 목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 후 1772년에 그는 리버풀의 바이롬 스트리트(Byrom Street)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큰 회중을 모았으며 27년 동안 눈에 띄게 인기가 있었고 유용했다.

 

[작사자와 작곡자]
작사자: 찰스 웨슬리 (Charles Wesley, 1707-1788)
챨스 웨슬레는 아버지 사무엘 웨슬레 목사와 기도의 힘을 지닌 어머니 수산나 사이에서 19명의 형제 중 18번째로 1707년 12월 18일 영국 에프오드(Epworth)의 목사관에서 출생했다.
1726년 챨스 웨슬레는 옥스퍼드대학교 그리스도교회 대학의 급비생(給費生)으로 선정되었다.
옥스퍼드대학 재학 때 형인 죤 웨슬레와 같이 벌인 ‘거룩한 모임(Holy Club)’운동은 영국교회의 개혁에 부채질했고 감리교 창단의 근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1738년 5월 20일, 성령의 뜨거운 불을 받아 놀라운 영력을 얻는 새로운 체험을 했다.
그는 브리스톨에 근거지를 두고 평생을 목회, 순회 전도, 종교개혁과 빈민구제, 찬송시 작사 등으로 보냈다.
이토록 위대한 신앙의 위인 챨스 웨슬레의 배경에는 19명이나 되는 자녀를 길러낸 어머니의 힘이 컸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침에는 규칙적으로 일어나서 주기도문을 외우고 5세가 되면 먼저 성경부터 배워야 했다.
글을 읽게 되면 먼저 성경부터 읽게 했는데 19명의 자녀들에게 지워진 이같은 가정교육의 과정이 거르거나 지연된 법이 한번도 없었다.
이런 엄격하고 조직적인 능력을 가진 어머니 수산나의 신앙과 인내로 양육받은 19명의 자녀들 중 9명은 근대교회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챨스 웨슬레는 그의 형인 존 웨슬레와의 신앙의 굳건한 동역자요 종교개혁에 있어서 매우 커다란 사명을 감당했다.
웨슬레의 개혁운동에 뒤를 따르는 그의 형제들과 추종자들은 영국국교회의 강력한 뒷배경을 가진 자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받았다.
이런 압박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와 믿음, 그리고 기쁨을 주는 유일한 길은 오직 찬송뿐이었으니 찬송은 이런 곤고한 때에 대단한 활력소가 되었다.
그가 1788년 3월 29일,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6,500여편의 찬송시를 썼는데 주로 교리적인 것을 가르치기 위한 내용이 많다.
그의 찬송가는 전 세계 교회의 유산으로 간주되고 있다.

 
https://youtu.be/9s1eoYx9HQo

 

작곡자: 조지 프리드리히 헨델 (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
헨델은 1685년 2월 23일 프로이센의 할레(Halle, 현재는 독일 영토)에서 태어났다.
헨델의 이름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며, 아버지 게오르크 헨델은 작센-바이센펠스 공작의 궁정 외과의였으며 어머니는 루터교 목사의 딸이었다.
바흐와 달리 헨델의 집안에는 대대로 음악가가 나지는 않았으나, 헨델은 소년 시절부터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났다.
그는 할레에서 훌륭한 세속 음악과 교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아버지가 작센-바이센펠스 공작의 궁정 외과의로 있었던 바이센펠스 근처 궁정에서 연주되는 음악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7세가 되던 해 바이센펠스 궁정에서 오르간을 연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그의 음악을 들은 바이센펠스 공작은 크게 감동을 받고 헨델의 아버지에게 음악공부를 시키라고 권유했다.
헨델은 바로크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이다.
그의 작품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앤텀, 오르간협주곡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태리 바로크와 독일 중세 다성합창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1726년 헨델은 영국 국민이 되었고, 이로 인해 왕실 부속 예배당의 작곡가가 될 수 있었다.
오페라가 쇠퇴하게 되자 오라토리오가 점점 인기를 끌게 되었다.
1734년에 헨델은 코벤트 가든으로 자리를 옮겨서 몇 편의 오라토리오를 공연했으며, 헨델은 오라토리오의 막 사이에 연주하는 <오르간 협주곡>을 작곡하여 스스로 연주하기도 했다.
또한 데번셔 공작의 의뢰로 오라토리오 작곡에 몰두했는데, 1740년 8월 22일부터 9월 14까지 불과 24일 만에 오라토리오의 걸작 <메시아>의 초고를 완성했다.
헨델은 <메시아>의 연주회를 거듭하며 악보를 수정했으며, 1742년 4월 13일에 공식적으로 초연하였다.
이후 10년간 헨델은 오라토리오를 영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악형식으로 만들었다.
1759년, 코벤트 가든의 정기적인 연주회에서는 그의 후기 오라토리오 공연을 개최했는데, 이 정기 연주회의 마지막 작품인 <메시아> 공연에 참석한 헨델은 연주 도중에 졸도하였다.
급히 집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1759년 4월 14일 오전 8시에 운명했다.
그는 사실상 영국 국민들에게 널리 존경받는 명사가 되었다.
헨델은 죽을 때까지 음악 활동에 대한 관심을 멈추지 않았다.
1759년 4월 20일 위대한 작곡가이며 한 인간으로서 세인의 존경을 받았던 헨델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3,000명의 군중이 지켜보는 앞에서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의 시인 묘역에 묻혔다.

 

찬송곡조(Hymn Tune): BRADFORD
곡명 ‘브랫포드(BRADFORD)’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제3부 부활-영생의 첫 번째 곡조 ‘나는 내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안다(I know that my Redeemer lives)’로서 소프라노의 아주 긴 영창곡인데 짧게 찬송곡으로 편곡된 것이다.
헨델의 오라트리오 <메시아(The Messiah)> 제45번의 콘트랄토 솔로 부분을 죠지 킹슬리(George Kingsley)가 1839년에 편곡하여 MESSIAH라는 찬송곡명을 붙였다.
그 후 찬송가 편집인들이 사용하여 BRADFORD 또는 REMEMBRANCE로 찬송곡명을 붙였다.

 
https://youtu.be/RKoYpmY6fOs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나는 안다.(I Know that my Redeemer Iiveth) 제목의 많은 곡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 (욥기 19:25~27)
욥은 그의 고통 중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깨달아 믿었고 그가 육신으로 도성인싱 하시어 세상에 오실 것을 예언하였다.
히브리 기자는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부리서 7:24~25)며 그리스도 예수가 언제나 화해(중재)를 위하여 살아 계신다고 증언했다.
사도 바울 역시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서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디모데후서 1:10)라고 하며 생명의 영원 불멸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모든 말씀들은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심을 예언한 것일 뿐만 아니라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후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심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근간이 되는 말씀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찬송가 작가들이 이 말씀을 바탕으로 찬송시를 써내려갔다.
<영생의 소망> 또는 <장례 찬송>과 <부활절 찬송> 등 여러 목적에 사용하는 찬송이었다.
이 찬송시의 서두는 모두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나는 안다.(I Know That My Redeemer Liveth)”라는 말로 시작되어 있다.

 

대표적인 찬송시 작가와 첫 싯귀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시 파운즈(Jessie B. Pounds)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나는 안다. 그는 이 땅 위에 다시 나타나 시리로다.”
*사무엘 메들리(Samuel Medley)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나는 안다. 축복의 확신이 큰 기쁨을 주도다.”
*칼 아우구스트 두링(Carl August Doring)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나는 안다. 그는 이미 내 생명이 되었도다.”
*파울러스 게르하르트(Paulus Gerhardt)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나는 안다. 이 사실에 내 믿음은 확고하다.”
*에드맨 노이마이스터(Erdmann Nenmeister)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나는 안다. 그가 살아 계심같이”
*제라드 모울추리(Geraed Moultrie)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나는 안다.

 

이 외에도 많은 찬송시가 있을 것이지만 빼놓을 수 없는 곡이 있으니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The Messiah)> 제45번에 나오는 것으로 그리스도가 부활하셔서 영생하심을 노래한 것이다.
이 곡은 찰스 웨슬레의 찬송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는다.
즉 1741년 조지 헨델의 오라트리오의 본질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게 하는 역할로부터 시작하여 그 <메시아>로부터 많은 찬송을 파생시키는 중요한 일을 한 것이다.
<메시아>곡의 일부가 찬송곡으로 이용되어 <메시아>곡 중 일부를 편곡하여 찬송곡으로 삼은 것이다.
헨델의 <메시아>가 나온 다음 해인 1742년 그의 오라토리오의 시,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나는 아노니 후일 그가 이 땅에서 계실 것이요, 비록 벌레가 육신을 해할지라도 내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리라.’에서 이 찬송시가 나ㅣ온 것이다.
이 찬송곡은 <메시아>의 45번의 콘트랄토 쏠로(Contralto solo) 부분으로 곡이 완성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찬송이라 할 수 있는 곡인 것이다.

[가사 영어원문]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1.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And ever prays for me;
A token of His love He gives,
A pledge of liberty.
나는 구속자가 살아계셔서
나를 위해 언제나 기도하심을 안다.
주님은 사랑의 증표를 주시는데
자유의 표시이리라.

 

2.
I find him lifting up my head,
He brings salvation near,
His presence makes me free indeed,
And He will soon appear.
나 머리를 들고 주님을 찾으니
주님이 구원을 가까이 가지고 오시네.
주님의 임재하심이 진정 나를 자유케하고
주가 곧 나타나시리라.

 

3.
He wills that I should holy be,
What can withstand His will?
The counsel of His grace in me
He surely shall fulfill.
주님은 내가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는데
그 무엇이 주의 뜻을 막으리오?
주님의 은혜의 권고가 내 안에 있으니
주님이 반드시 성취하시리

 

4.
Jesus, I hang upon Thy Word;
I steadfastly believe
Thou wilt return and claim me, Lord
And to Thyself receive,
예수여, 당신의 말씀에 의지하나이다.
굳게 믿고 있사오니
주여 당신께서 돌아오실 때 나를 주장하사
당신께로 받아주소서.

 

5.
Joyful in hope, my spirit soars
To meet Thee from above,
Thy goodness thankfully adores;
And sure I taste Thy love.
천국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해
소망 속에서 즐거워하며 내 영혼이 날아오르네
당신의 선함과 감사함을 받들어
확실히 그 사랑을 맛보도다.

 

6.
Thy love I soon expect to find,
In all its depth and height;
To comprehend the eternal mind,
And grasp the Infinite.
모든 깊이와 높이에서
내가 곧 찾을 주님의 사랑
영원한 마음을 이해하기 위하여
굳건하에 붙잡게 하소서

 

7.
When God is Mine and I am His,
Of paradise possessed,
I taste unutterable bliss,
And everlasting rest.
하나님이 나의 나의 것이고 내가 주님의 것일 때
낙원을 소유하고
말롷 표현할 수 없는 천국의 행복과
영원한 안식을 맛보리라.

 

8.
The bliss of those that fully dwell,
Fully in Thee believe,
'Tis more than angel tongues can tell,
Or angel minds conceive.
완전하게 거주하는 그들의 기쁨은
천사의 혀가 말하거나
천사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이상으로
그대의 믿음 안에서 충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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