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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묵상

찬송가 묵상 #213 내가 깊은 곳에서 (From the Depths, O Lord, I Cry)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11.08|조회수192 목록 댓글 0

찬송가 묵상 #213
내가 깊은 곳에서
(From the Depths, O Lord, I Cry)

 

찬양곡: 363장 내가 깊은 곳에서
영어제목: From the Depths, O Lord, I Cry
작사자: 피득 (Alexander A. Pieters, 1872-1958)
작곡자: 드미트리 스테파노비치 보르트니안스키 (Dmitri Stepanovich Bortniansku, 1752-1825)
찬송곡조(Hymn Tune): ST. PETERSBURG
찬송가사:
1.
내가 깊은 곳에서 주를 불러 아뢰니
주여 나의 간구를 들어주심 바라고
보좌 앞에 나가니 은혜 내려 주소서
2.
주가 죄를 살피면 누가 능히 서리요
오직 주만 모든 죄 용서하여 주시니
주님 앞에 떨면서 용서하심 빕니다
3.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고 바라듯
나의 영혼 주님만 간절하게 바라네
이스라엘 백성아 주를 바라보아라
4.
주의 크신 은혜와 그의 능력 바라라
주의 깊은 은총에 우리 구원 있으니
변함없는 주님만 믿고 기다릴지라


https://youtu.be/9xjIJ9CU9UM

 

[찬송 묵상]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시편 130:1)

 

시편 130:1의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From the depths of my despair I call to you, Lord)’가 배경이 된 이 아름다운 찬송시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시제가 붙어있는 시이다.
이 찬송시의 작가는 21세기 새찬송가에서는 마르틴 루터로 표기되어 있으나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우리나라에서 많은 활동을 한 피득(Alexander A. Pieters) 선교사가 1898년 우리말로 작사하여 당시 애창곡 ST. PETERSBURG를 붙여 발표했다는 자료가 유력하다.

 

1절에서 저자는 시편 130편을 바탕으로 운율화하면서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다.
여기에서 이른바 ‘깊은 곳에서’라는 것은 사람이 물 속에 빠진 것 같이 되고 질식 상태가 될 정도의 극심한 환난을 의미한다.
사실 그런 때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실상 이런 상황일수록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더욱 은혜를 내려 주신다.
2절에서 시인은 또 그런 무서운 환난 가운데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빈다.
극심한 환난을 당하여 죄책감을 갖는 것은 은혜이다.
스스로 죄악에 대하여 통감(痛感)하는 자는 그가 당면한 환난의 아픔을 덜 느끼게 된다.
이 찬송의 저자는 그 난관에서 해결을 얻을 방법이 사죄를 받는 길밖에 없는 줄 알았다.
그가 갖는 소망은 하나님의 용서뿐이다.
하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켜서 자기 백성을 삼으신다.
그가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용서받은 죄인은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을 경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절에서 마치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는 것처럼 하나님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신앙의 중요한 방면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되 정한 때가 있다.
그리고 4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되 소망을 가지고 낙심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은 인자하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자’와 ‘구속’은 우리의 확실한 소망의 근거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기다림에는 너무도 조급해 하지 않아야 한다.
이 찬송가에서 고백한 대로 ‘변함없는 주님만 믿고(바라고) 기다릴지라’가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할 것이다.

 
https://youtu.be/pye2zcwMMwQ

 

[작사자와 작곡자]
작사자: 피득 (알렉산더 앨버트 피터스, Alexander Alburt Pieters, 1872-1958)
알렉산더 앨버트 피터스는 1872년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러시아 남부에서 태어났다.
김나지움(Gymnasium)을 졸업하고 독일 철학을 공부하였으며,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를 말할 줄 아는 청년이었다.
1895년 4월 7일, 당시 23세의 이 청년은 일본 나가사끼의 한 일본인 교회에서, 서양 선교사를 만났다.
그는 러시아를 떠나 호주로 가려고 했으나 선교사로부터 호주에 관한 나쁜 이야기를 듣고 이를 포기하고 홍콩, 일본을 경유하여 동부 시베리아로 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러던 중 한 일본인 교회에서 미국선교사를 만나게 되어 세례를 받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1895년 23세의 나이로 피득(彼得)으로 개명한 그는 출중한 외국어 실력을 활용하여 히브리어 구약성서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1898년 <시편촬요>라는 제목의 번역성서를 출판하였다.
이는 한국 근대사에 한 유대인이 남긴 엄청난 업적으로 평가된다.
그는 장로교 목사로 45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사로 봉사했다.
이 찬송은 1898년에 간행된 찬송가인 <찬셩시>에 처음 채택되었는데, 피득 선교사가 1898년에 시편을 운문화하여 우리말로 작사한 찬송이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 선교사 피득 목사 부부는 찬송가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1908년 장로교, 감리교 합동으로 <찬숑가, 1908>를 내었지만 재정이 없어 곡조 찬송가를 못 내자, 그들 부부는 사재를 털어 <찬숑가> 곡조판을 일본 요코하마에서 찍어 올 정도로 찬국 찬송가를 사랑하였다.
곡도 당시 세계적으로 애창되던 곡조 <성 페테르부르크 (ST.PETERSBURG)>에 맞춰 발표한 찬송이다.
피득 선교사는 우리 찬송가에서 특별히 시편을 운율에 맞춰 우리 말로 표현한 것이 다수 있는데, 우리 찬송가 ‘눈을 들어 산을 보니’(383장), ‘주여 우리 무리를’(75장), 등 다수가 있다.
그는 1958년 6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카운티에 있는 마운틴 뷰 묘지 및 영묘에 안장되었다.

 

[하나님의 사람 알렉산더 앨버트 피터스 (피득:彼得)]
알렉산더 피터스의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김중은 장신대학교 총장의 설교 ‘하나님의 사람 알렉산더 피터스’에서 발췌한 것을 소개한다.

 

알렉산더 피터스(Alexander Alburt Pieters, 1872-1958)는 약 47년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한국과 인연을 맺었던 분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구약국역에 있어서 불후의 공적을 남겼다. 최초로 구약의 한국어 번역을 시작한 선구자로서, 또한 현재 한국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 성경의 구약 개역 작업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한 주역으로서 알렉산더 피터스는 우리에게는 잊지 못할 귀중한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그에 관해 알려진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86년 전, 1895년 4월 7일 아침은 주일이었다. 나가사키의 일본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했던 한 깨끗한 용모의 외국 청년이 예배를 마친 후 독일어를 말할 수 있는 선교사를 찾고 있었다. 마침 그곳에 있던 피터스(A.A.Pieters)라는 선교사가 이 청년의 요구에 응하게 되었는데, 이 낯선 청년은 유대인으로서 개신교 신앙의 교리를 좀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이 청년은 남부 러시아에 있는 어느 유대인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 당시 나이는 23세였다. 그는 인문고등학교(Gymnasium)를 졸업했으며, 독일어, 라틴어, 희랍어, 히브리어, 러시아어에 대한 어학실력을 가졌다. 불어도 좀 알고 고향을 떠나 일본까지 오는 길에 영어도 배우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혹독한 생활환경과 미래에 대한 좌절감 속에서 이 청년은 아버지 집을 떠나 외국으로 나가서 자기의 인생을 개척하려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는 먼저 호주로 가려고 수에즈운하가 있는 지중해안의 항구 포트사이드(Portsaid)까지 갔으나, 거기서 호주에서 되돌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여러 가지 그곳의 악조건 이야기를 듣고 호주행을 포기하였다. 이번에는 미국으로 가려고 마음먹고 홍콩까지 오게 되었는데, 홍콩에서도 이 청년은 미국에 가 봐도 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동부 시베리아로 가서 철도건설 하는데 노동자로 취직하려고 생각하고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하여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ck)로 가는 기선을 타기 위해 며칠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시베리아의 철도 노동자로 취직하러 되돌아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동안, 이 청년은 일본 나가사키에서 주일 아침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던 것이다.
정통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나 유대교 신앙을 배웠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이 청년은 독일 철학을 연구하였다. 독일 철학도 그를 위안해 주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는 개혁교회 신앙을 통해 그의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겠는지 막연한 기대와 동경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찾아온 유대인 청년에게 선교사 피터스 목사는 그가 원하는 기독교의 진리를 가르쳐 주었고, 이 청년은 진지하고 열심히 그 가르침을 받았다.
벌써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는 것과, 기록된 성경의 거룩한 계시를 인정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이 세상의 죄를 지시고 대속하신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리에 심취한 이 청년은 블라디보스토크행 기선에 도착했지만 떠나기를 연기하고, 좀 더 깊은 신앙의 지식을 얻기 위해 그 곳에 머물렀다. 마침내 기독교 교리에 대한 중요한 골자를 다 배웠다고 했을 때, 이 청년은 복음서에서 말하는 세례를 받고 싶다고 간청하게끔 되었다. 그래서 4월 19일 저녁에 선교사 피터스 목사의 집례로 몇 사람의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 유대인 청년의 엄숙한 세례식이 거행되었다. 4월 7일에서 4월 19일까지 불과 12일 만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였다.
이제 기독교인이 된 이 청년은 4월 21일 아침 목적하는 시베리아로 향해 떠나려고 하였다. 그 동안 이 청년은 누구에게 조금도 구차한 도움을 청하지 않는 고상한 인격을 보여주었다. 이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기독교 신앙인이 되었고, 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그를 지켜보고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이 청년이 철도노동자가 되기 위해 시베리아로 떠나버리는 것을 모두 아쉽게 생각하였다. 하나님께서 이 청년을 부르시는 뜻이 계셔서 이곳까지 인도하시고, 또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신 것이 아닐까? 시베리아 철도건설 노동자보다 주님을 위해 좀 더 보람된 일을 할수 있는 일터가 이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마침내 일본 주재 미국성서공회 총무 루미스(H. Loomis)목사는 이 청년에게 미국 성서공회의 성경 매서인(Colporteur) 자격으로 한국에 가서 일할 생각이 있느냐고 제안하게 되었다. 루미스 목사는 “이 제안은 기쁨으로 수락되었다”고 기록을 남기로 있다.
이제 영어를 말하는 선교사들을 돕기 위해 이 청년은 계속 영어를 배우면서 약 열흘 동안 한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는 5월 16일 한국에 도착하여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불과 수개월 후에 그는 어학선생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경을 반포하기 위해 서울 근교 시골로 찾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유대인의 관습에 따르면, 누구든지 종교를 바꾸게 되면 그의 이름도 새로 바꾸어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청년은 세례를 받을 때 그의 전 이름을 버리고, 그에게 기독교 진리를 가르쳐 준 선생이요 친구가 된 일본 주재 선교사 피터스 목사의 이름을 따서 자기 이름도 피터스로 바꾸었다고 한다. 유대인으로서 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바로 이 청년이 최초의 구약국역 선구자인 알렉산더 피터스(Alexander A. Pieters, 피득)였다.
1895년 12월 5일 알렉산더 피터스 청년은 일본에 있는 루미스(H. Loomis) 목사에게 서울에서 그의 권서활동 보고서를 발송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루미스 목사는 이렇게 예언하고 있었다. “만약 이 청년의 생명을 보존하신다며, 그는 저 밤의 어두움이 깃든 땅(한국)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아주 유능한 일꾼이 될 것이다.” 이 예언은 그대로 적중하였다.
23세의 청년 알렉산더 피터스가 한국에 도착한 1895년까지 구약은 아직 번역되지 않고 있었다. 당시 예수를 믿게 된 많은 사람들은 로스(J.Ross)역을 통해서 기독교 진리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알렉산더 피터스는 로스역이 당시 한국인들에게 끼친 영향은 마틴 루터(M. Luther)역의 독일인들에게 대한 영향관계와도 같다고 비교하였다. 그러나 성서위원회에서는 로스역과는 상관없는 완전히 새로운 신약번역에 착수하고 있었고, 구약번역의 전망은 아직 멀기만 하였다. 알렉산더 피터스는 자신이 구약번역에 손대기 시작한 최초의 동기를 이렇게 적고 있다:
한국에서 처음 복음서가 번역되어 나온 지 15년 만에 구약번역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 동기는 필자(알렉산더 피터스)가 정통 유대교 집안에서 자라났으며, 매일 히브리어로 된 기도집을 읽었기 때문에 시편의 아름다움과 그 영적인 영감이 강하게 인상으로 남게 되었고, 많은 시편을 암송하게 된 것이었다. 그 후 하나님의 섭리로 일본에 와서 예수를 믿게 되었고, 미국성서공회의 권서로 한국에 보냄을 받았다. 그것이 1895년이었다. 당시 한국의 성서위원회가 신약을 새로 번역하고 있었으며, 구약이 앞으로 번역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을 알고서 필자는 한국 사람들에게 최소한 시편 중에서 얼마라도 번역해 주고 싶은 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편 영어를 배우면서 한국어도 습득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도착한지 2년째 말에 가서 필자의 히브리어 성경 지식에 힘입어 시편 중에서 저주시편들(the Imprecatory Psalms)만 빼고 나머지를 골라서 감히 번역을 시도하였다. 시편의 절반 정도 분량으로 번역은 1년 내에 끝났다. 이러한 번역 본문이 사용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그 원고를 한국어를 잘하시는 네 분 선교사들에게 보내어 심사를 요청했다. 그 분들이 이 번역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그 중 세 분은 이 시편역을 인쇄하는 비용도 대겠다고 나섰다. 시편촬요라고 제목을 붙인 이 책은 1898년 출판되었고, 이후 8년 동안 유일한 한국어 구약역으로 기독교인들이 사용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어떤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극적인 기독교 개종 역사와 한국에 권서로 파송된 지 3년 후 26세의 청년 알렉산더 피터스는 이 땅에 최초로 구약의 시편을 국역하는 잊지 못할 귀중한 업적을 남겼다. 그런데 알렉산더 피터스의 결정적인 공헌은 1926년 이후 구약개역위원회의 주역으로 1938년 마침내 국역 구약개역성서를 완간하게 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알렉산더 피터스는 구약국역의 최초의 선구자일 뿐 아니라 또한 주역으로서 한국교회의 선교와 그 신앙언어 역사와 신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공로자이다. 이영헌 교수는 제1회 이수정 기념 공개강좌에서 이수정은 “한국의 마케도니아 사람”(행16:6-10 참조)이라고 지적하였는데, 알렉산더 피터스는 아마도 이 마케도니아 사람의 청을 듣고 하나님께서 특별한 섭리로 응답하여 보내신, 그의 한문 이름 <彼得>이라는 문자 그대로 “한국의 베드로”(비교. 행11:1-18)라고 할 만한 하나님의 말씀의 일꾼이었다.

 

작곡자: 드미트리 스테파노비치 보르트니안스키 (Dmitri Stepanovich Bortniansku, 1752-1825)
드미트리 보르트니안스키는 1751년 10월 28일 러시아 제국(현재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지역 교회 합창단에서 드미트리의 놀라운 재능은 그에게 제국의 수도로 가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황실 예배당 합창단과 함께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곳에서 드미트리는 이탈리아의 거장 발다사레 갈루피(Baldassare Galuppi)인 황실 예배당 합창단의 지휘 아래 음악과 작곡을 공부했다.
갈루피는 1769년 이탈리아로 떠날 때 드미트리를 데리고 갔다.
이탈리아에서 1769년부터 10년 동안 작곡을 비롯한 많은 분야를 공부했다.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그는 궁정 예배당 성악 감독에 임직되었고 대원들의 창법 등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였다.
그는 찬양대용 대곡과 찬송가를 많이 작곡하였는데 아카펠라와 오케스트라 반주(2성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Ave Maria 포함)로 라틴어와 독일어로 성가곡을 작곡했다.
보르트니안스키는 오페라와 악기 작곡을 썼지만 그의 찬송가 합창 작품은 오늘날 가장 자주 공연되기도 한다.
이 방대한 작품은 18세기 정교회 종교음악을 이해하는 데 중심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동료 우크라이나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가 라틴 찬송가로 작곡한 Tantum Ergo(지존하신 성체)는 슬라브 지역에서 Коль славен(Kol Slaven)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 형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 찬송으로 불려지고 있다.
‘지존하신 성체(Tantum ergo Sacramentum)’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쓴 중세
시대 라틴어 찬미가인 ‘입을 열어 구세주의 영광을 찬미하세(Pange Lingua)’
의 마지막 두 개 소절(節)이다.
이 찬미가는 가톨릭교회에서 성체를 공경하는 신심 행사를 할 때 노래로 불리거나 엄숙하게 낭독된다.
이 곡은 프리메이슨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그것은 영어권 국가로 퍼져나갔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또는 웰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독일에서 이 노래는 게르하르트 테르스티겐(Gerhard Tersteegen)의 가사와 짝을 이루었고 잘 알려진 합창곡이 되었으며 독일군의 최고 의례 행위인 위대한 문신(Großer Zapfenstreich) 군사 의식의 전통적인 부분이 되었으며 저명한 군인에게 영예를 안겨주었다.
특별한 경우에 있는 사람. 1917년 10월 혁명 이전에는 모스크바 크렘린 카리용이 매일 정오에 이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드미트리 보르트니안스키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출신 작곡가 겸 하프시코드 연주자, 지휘자로 이름을 날렸다.
팔레스트리나에 비교될 정도의 그는 오늘날 전례음악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고 특히 합창음악 장르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가 자국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당대 아르테미 베델(Artemy Vedel), 막심 베레조프스키(Maxim Berezovsky)와 함께 그 시대의 ‘황금 3인’으로 불렸다.
1825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성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https://youtu.be/ve8wgOs4pVg

 

 

찬송곡조(Hymn Tune): ST. PETERSBURG
이 찬송가의 곡조 TANTUM ERGO(우리 찬송가에는 ST. PETERSBURG로 되어 있다.)는 러시아의 위대한 종교음악가인 보르트니얀스키가 작곡한 것이다.
그의 찬송곡 ST. PETERSBURG(RUSSIAN HYMN으로도 불림)은 J. H. Tscherlitzky가 편찬한 <합창곡(Choralbuch, 1825)에 처음 실려 출판됐다.
이 곡은 1822년 작곡된 미사(Mass)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원곡은 전해지지 않아 어느 미사곡인지 혹은 어느 대작에서 택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1884년 차이콥스키는 보르트니안스키의 교회용 작품집을 편집하면서 러시아 찬송가에 ST. PETERSBURG를 포함시켰다.
곡명은 보르트니안스키가 공부하고 일하고 사망한 도시 이름에서 왔다.
이 찬송곡명도 ROYSTON, SHANGANA ST. PETERSBURG, WELLSPRING 등으로 불리며 토마스 호이즈(Thomas Haweis)의 찬송 ‘높이 들린 십자가에서(From the cross uplifted high)’ 비크스테드(Rev. E. H. Bickersteth) 박사의 찬송 ‘주가 오실 때까지(Till He Come!)’와도 결합되어 애창해 왔었다.
엄격한 AAB 형식 구성의 이 곡의 셋째 단은 전체 선율에 훌륭한 클라이맥스와 해결을 제공한다.

 
https://youtu.be/Yxx5YqaqfxE

[가사 영어번역]
From the Depths, O Lord, I Cry
(주님, 깊은 곳에서 울부짖나이다)
* 이 찬송의 영어가사는 피득 선교사가 한국어로 작사를 하였기에 미국찬송가에서는 이 가사로 부르는 찬송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자료에 의하면 영어가사는 한국가사를 원요한(Underwood) 선교사가 1988년도에 한글가사와 동일하게 7.7.7.7. 운율로 영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
From the depths, O Lord, I cry;
Hear me When I pray to Thee.
Mighty, Helper, ever nigh,
Now my sure salvation be.
Here before Thy throne I plead;
Grant me grace in this my need!
주님, 제가 깊은 곳에서 울부짖으며
내가 주님께 기도할 때 들어주소서.
전능하신 도움이시여, 항상 가까이 계시니
이제 나의 구원은 확실하니이다.
여기 주님의 보좌 앞에서 내가 간구하오니
나의 필요에 은혜를 베푸소서!

 

2.
Lord, if Thou shouldst mark our sin,
Who could then before Thee stand?
But all sins, without, within,
Find forgiveness at Thy hand.
Trembling now I seek Thy face;
Oh, forgive me in thy grace!
주님, 만약 주님이 우리 죄를 지적하시면,
누가 주님 앞에 설 수 있으리이까?
그러나 외부와 내부의 모든 죄는
주님의 손에서 용서를 구하오며
이제 나는 떨면서 주의 얼굴을 구하오니
오, 주님의 은혜로 나를 용서하소서!

 

3.
As the watchman waits the dawn,
Darkness done and light restored.
Yearns my soul, the darkness gone,
To behold Thy face, O Lord.
Israel, awake and sing!
Lift your eyes! Behold your king!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는 동안
어둠이 지나가고 빛이 되살아나이다.
어둠이 지나간 내 영혼이
주님의 얼굴을 뵙기를 갈망하나이다.
이스라엘아, 깨어 노래하라!
눈을 들어 너의 왕을 보라!

 

4.
Israel, God's chosen race,
Look to Him and trust His name;
For on His unfathomed grace,
Only, rests salvation's claim.
Changeless God, the Lord, He is;
Trust, and wait on Him in bliss!
하나님의 택하신 민족 이스라엘아,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이름을 신뢰하여라.
오직 구원의 주장은
주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이기 때문이니
변함없는 하나님,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믿고 주의 축복을 기다릴지라!
 
https://youtu.be/MXqJD8sbm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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