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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묵상

찬송가 묵상 #032-1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찬송의 일화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2.27|조회수273 목록 댓글 0

찬송가 묵상 #032-1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찬송의 일화
(2022-02-27)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원문제목: I'd Rather Have Jesus
작사자: 레아 밀러 여사 (Mrs. Rhea F. Miller, 1894-1966)
찬송곡조: I'D RATHER HAVE JESUS
작곡자: 조지 비벌리 쉐아 (George Beverly Shea, 1909-2013)
찬송가사:
1.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내 영 죽은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후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2.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전에 즐기던 세상 일도 주 사랑하는 맘 뺏지 못해
3.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않아
 
https://youtu.be/Wg0s1sy7TPg

[찬송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 모음]
하나.
오직 예수만이 우리 삶의 전부가 되심을 고백하는 이 아름다운 신앙詩는 미국 나사렛 감리교회 레아 밀러 목사의 부인이 1922년에 써서 한 여인에게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이 詩를 혼자서 10여 년간 애송하면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레아 밀러 목사 부인의 신앙시를 받았던 여인의 아들이 조지 비블리 쉐아(George Beverly Shea)였습니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1928년 미국의 상업경기는 밑바닥이 날 정도로 침체되어 많은 기업체들이 도산 위기에 놓여 있었고 실업자들이 속출하여 사회는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때 Houghton College에 다니던 조지에게 아버지로부터 편지 한 장이 왔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네 어머니와 나는 이 일을 위해 기도해 왔고 우리가 아는 방법이란 모두 생각해 보았으며 아무리 깊이 생각해 보아도 가을 학기에 너를 학교에 보낼 형편이 되질 않는구나.
너도 알다시피 요즘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네가 힘들어도 한 일 년쯤 직장을 잡아 일을 해서 돈을 모아 다시 학업을 계속해야 될 것 같다.
이 일에 관해 뉴욕에 있는 상호보험회사 의무부에 있는 내 친구 해롤드 비즈(Harold Vaege)씨에게 이야기하였는데 그의 사무실에서 같이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조지는 아버지의 제안대로 뉴욕 상호 보험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 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에서 매주 찬양을 부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방송국 편성부장 프레드 알렌(Fred Allen)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지는 자신이 노래에 소질이 있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 NBC 의 유명한 8H 스튜디오에서 1.500명의 방청객과 전국의 청취자들 앞에서 그는 흑인영가 ‘가라 모세’를 불렀는데, 그의 찬양은 방송을 통해 전 미국 국민에게 울려 퍼져 대단한 인기를 모으게 되었습니다.
방송국 편성부장은 즉각 조지에게 정기 출연을 요청하기까지 되었습니다.
갑자기 그는 유명 스타가 되었고, 여러 방송사에서 끊임없는 계약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수상하였고, 인기가 올라 많은 수입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돈이 수중에 들어오자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자식이 프로 가수의 길로 가다 보면 부와 쾌락에 노출되어 신앙과 멀어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목사 부인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밀러 부인에게 받았고 자기가 애송하던 신앙시를 이들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앞길에 대한 번민과 함께 기도를 해왔던 조지 베블리 쉐아는 어머니가 보내준 시를 보는데 가사가 마음 깊은 곳을 찌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제가 잠시 동안 돈에 취하고 인기에 취해서 주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교회에서 부를 찬송을 연습하다가 이 시를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을 따라 피아노를 치면서 이 시에 곡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는 이렇게 탄생되었습니다.
조지 쉐아는 말하기를 “단숨에 곡을 붙였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감사하여 작곡한 후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라고 간증하였습니다.
 
다음 날 시카고 방송국에서 그의 일정을 의논하기 위해 전화가 왔는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음악의 재능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만 사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영광과 부귀가 보장된 가수의 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포기한 것입니다.
 
그는 1947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의 찬양 가수가 되어서 찬양으로 주님의 영광을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빌리 그레엄과 함께 평생을 세계로 다니면서 이 찬양을 불렀습니다.
1973년 한국 여의도에서 빌리 그레이엄 전도집회가 열렸을 때도 그는 함께 내한해서 이 찬송을 불러 한국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1983년 7월 15일 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있는 센트룸 라이회관에 세계 순회전도자 대회가 있었을 때는 70세가 넘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5천여 명의 순회전도자들 앞에서 심령을 쥐고 흔드는 찬양으로 은혜를 끼쳤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고 기립해서 갈채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내주신 찬사, 감사합니다. 하지만 동역자 여러분! 이 갈채조차도 그리스도와는 바꿀 수 없습니다.”
 
조지 비블리 쉐아는 2013년 104세에 이 세상을 떠나 주님 품에 안길 때까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에밀리 뮤직 어워드를 세 번이나 받았는데 102세 때 전 세계인 음악상을 받았을 때의 수상 소감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였습니다.
 
https://youtu.be/sP6vEnA5D9U


둘.
한 고독한 선원이 미국 필라델피아 거리를 방황하다가 화려한 나이트클럽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이끌리어 그곳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건너편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는데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이 끝나고 타임 시그널(Time Signal)이 울려 나오자 다음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장내 취객들은 잠잠하기 시작하였으나 별로 관심을 갖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때 한 젊은 바리톤 가수가 깊고 굵은 아름다운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오늘날 세상이 줄 수 있는 그 무엇보다도 나는 차라리 주 예수를 가지리.”라는 이색적이고 확신에 찬 간증 노래였습니다.
그 후 두 주일이 지났습니다.
그 고독했던 선원이 필라델피아 브로드 거리를 걸어 내려오고 있었는데 전과는 달리 그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로 가득차 있었고 그의 팔에는 자그마한 성경 한권이 끼어 있었습니다.
 
그가 동료 선원을 만나자
“내 성경은 당신의 것만큼은 크지 않군요.
내 성경은 간직하게 된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바로 두 주전의 일이었으니까요,
가서는 안 될 장소에 갔었지요.
그것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라디오 소리가 울려 나오는데 한 젊은 가수가 “오늘날 세상이 줄 수 있는 그 무엇보다도 나는 차라리 주 예수를 가지겠노라”고 하며 참으로 감동적인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그 노래를 듣고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노래가 끝나자 계속해서 어떤 분이 마음을 묶어 예수께 바치고 죄악 된 생활에서 어서 속히 회개하고 떠나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나는 곧 그 장소를 나왔습니다.
조금 걸어서 한 골목을 돌아가니 그곳에는 기독교 봉사회(Christian Service Center)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이 성경을 받았고 그들이 나를 그리스도 예수께 인도해 주셨습니다.”라고 간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노래를 부른 굵직한 바리톤 가수는 다른 사람이 아닌 조지 비벟리 쉐아였고 그의 감동적인 간증의 복음성가가 그 고독한 선원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큰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셋.
영국의 왕과 왕비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루스벨트 대통령 부처와 더불어 하루 저녁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은 씨팅 불(Sitting Bull,1843-)의 손자 화인페터(Chief Whitefeather)에게 만찬 준비를 지시했습니다.
이때 부른 많은 노래 가운데 하나가 역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였습니다.
이 찬송을 감명 깊게 듣던 죠지왕은 “저 노래는 바로 나의 간증입니다.”라고 하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https://youtu.be/LO3rCAbdxRI


넷.
이 찬양은 특히 미국 해병대가 남태평양 군사작전에서 승리했을 때 감사의 고백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천여 명의 미국 해병대가 남태평양에 상륙한 후 모두 한 자리에 앉아 멀리서 간간히 들려오는 포성을 들으며 하나님께 전승의 감사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종군목사가 설교를 마치자, 한때 오페라 가수였던 해병대 용사가 나와 “나는 차라리 주 예수를 택하고 그의 손에 이끌리리라.”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 찬송을 듣던 많은 역전의 해병용사들은 큰 감동을 받았고 100여명이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세주로 받아들인 일이 있었습니다.
탄흔으로 찢어진 종려나무 잎이 바람에 허느적거리는 싸움터에서 그 억척스러운 해병용사들의 마음속에 평화의 은총과 구원의 햇살이 강하게 비쳤던 것입니다.
 
다섯.
세계 2차 대전 때 노르망디에 공격이 있은 지 얼마 후의 일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불란서 노르망디의 한 교회에 콘솔(Console)올갠 한대가 있었습니다.
보조 군목 한명이 교회 안을 들여다보니 창은 다 부서지고 교회 건물은 심하게 파괴되어 기울어져 있었으나 올갠은 조금도 부서지지 않았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올갠에 앉은 그 보조 군목은 주위의 폐허를 바라보며 이 찬송을 열심히 연주했고, 메어진 목소리로 열심히 찬송을 불렀습니다.
“금이나 은보다 차라리 주 예수 가지리.
많은 부를 갖는 것보다 차라리 주님의 소유가 되겠네.
집과 땅보다 차라리 예수를 가지리.
차라리 못 박힌 주님의 손에 이끌려 가리”
 
이 아름다운 찬송이 다 부서진 유리창 사이로 흘러나왔습니다.
인간들의 불장난으로 폐허가 된 교회에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찢어놓은 교회 안에서 인간들이 잘못한 행위의 용서를 간구하는 듯한 하나님의 종이 부르는 찬송이 밖으로 흘러나왔을 때 많은 심령들에게 큰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던 미군들이나 전화(戰禍)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은 불란서 농민들까지도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이 노래를 들었고 모두가 감동하여 눈시울이 젖어 있었다고 합니다.
 
여섯.
프랑스 보웨이러(Bauxweiller)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때 유명한 의사요 콘서트 연주자였던 아프리카의 성자 알베르티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박사가 사용하던 올갠을 보자 그 보조 군목은 올갠에 앉아 또다시 그 찬송을 올갠을 연주하며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서도 예외 없이 큰 감동을 주어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 그 보조 군목은 조지 비벌리 쉐아에게 편지하기를,
“선생님의 노래가 얼마나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를 아시게 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지금 프랑스는 물론 독일 전역에 걸쳐서 모든 교회에서 이 찬송이 울려 퍼지고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라는 말로 글을 맺는 편지입니.
 
지금도 이 찬송은, 주 예수보다 세상에 속한 것을 더 위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믿음을 가르쳐 주며, 교회 안과 밖에서 많은 신앙인들에게 애창되는 찬송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게 합니다.


 https://youtu.be/CBtgebnvu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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