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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묵상

찬양곡 묵상 #051 저 십자가 나 생각할 때에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4.15|조회수204 목록 댓글 0

찬양곡 묵상 #051
저 십자가 나 생각할 때에
(2022-04-15)


성가곡: 저 십자가 나 생각할 때에
영어제목: When I think to the Cross
작사자: 김국진 (1930~2020)
작곡자: 김국진 (1930~2020)
찬송가사
 
저 십자가 나 생각할 때에
내 가슴 쓰린다
그 가시관엔 붉은 피가 맺혔구나
날 위한 십자가여
오 사랑의 십자가
오 사랑의 십자가 (내 마음속에)
사랑의 십자가 (내 마음속에)
사랑의 십자가 (영원히 있도다)
 
그 흘린 피 나 생각할 때에
내 가슴 쓰린다
허리엔 창에 물과 피를 흘렸구나
날 위한 십자가여
오 사랑의 십자가
오 사랑의 십자가 (내 마음속에)
사랑의 십자가 (내 마음속에)
사랑의 십자가 (영원히 있도다)
 
그 십자가를 영원토록 사랑하네
영원히 영원히

https://youtu.be/TjZ3uNV34B4

 


[찬송 묵상]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요한1서 3:16)
 
이 곡은 김국진 장로님의 작사 작곡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는 영감 있는 찬양입니다.
이 찬양은 고난주간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머리에 쓰신 가시관과 흘리신 보혈이 나를 위한 사랑의 십자가임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수욕과 고통의 비밀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보았을 때,
자신을 희생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자신을 부정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았을 때,
내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 죄인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해마다 수난주간을 맞이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학창시절보다, 청년시절보다 더 무뎌 간다는 것입니다.
처음 신앙의 감격과 환희 대신 무감각적으로 맞이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무릎을 꿇게 만듭니다.
날 위한 십자가여!
오 사랑의 십자가!
이 찬송이 비단 고난주간만의 찬송이 아니라 우리는 약하나 나를 사랑하심으로 대신 지신 그 십자가를 평소의 삶에서도 영원히 사랑하게 하는 찬송이기를 간구합니다.
 
[작사자와 작곡자]
작사 및 작곡자 김국진 장로 (金國鎭, 1930~2020)
김국진은 평안남도 대동군 청룡면 이천리에서 나서 그곳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가 작곡을 하게 된 동기는 교회의 풍금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그 당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경험했듯이 교회의 풍금은 그가 음악을 하는 데 눈을 뜨게 했고 동기 부여를 해주었습니다.
풍금을 처음 쳐본 것은 중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그 이전의 소학교 시절은 시대 상황이 너무나 어려웠던 때라 오늘날과 갖은 환경과 음악교육은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일한 음악교육기관이 있었다면 평양 음악학교와 평양 숭실전문학교가 전부였습니다.
그가 풍금을 치며 작곡을 하는 것을 보고 그가 다니는 교회의 이재명 목사가 작곡을 하려면 화석학을 배우라는 충고를 하게 된다. 이때(중학시절) 화성학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고 한다. 이말은 그에게 충격적이었고 새로운 것을 발견한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평양음악학교에 다니고 있는 일가친척벌 형인 김명주를 찾아가 화성학 책에 대해 물어보니 그가 일본어판 화성학을 내 놓았다. 이것을 빌려다가 밤새도록 베껴서 독학으로 화성학을 터득했다. 그는 화성을 풀면서 풍금으로 화음의 울림을 확인했고 감지했다. 그리고 그 기능적 특성과 쓰임도 스스로 터득했다. 화성학 공부에 어려움이 있을 때가 있으면 이재명 목사를 찾아 조언을 구했다. 이재명목사는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풀고 암기하라는 충고를 하게 된다. 그는 이재명목사가 시키는 대로했고 화성학 책 전체를 베끼는 작업을 통해 터득하기도 했다.
어느날 곡을 써가지고 형인 김명주에게 보이니까 깜짝 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만큼 그는 형 이상으로 급성장 한 것이다.
 
김국진은 평남 출신으로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동요를 써서 발표하였습니다.
선교사 말스베리(Dwight R. Malsbary, 1899~1977)에게 5년 동안 피아노, 작곡, 관현악법 등 작곡가로서 갖추어야 하는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1.4후퇴 때 김재명 목사의 인솔로 월남한 그는 폐병을 앓고 있음에도 군(軍)에 입대하게 됩니다.
정보계통의 첩보원이었고 낙하산도 타야만 하는 부대였습니다.
다행히 미군과 합병하게 돼서 그곳에서 건강을 회복하게 됩니다.
군 제대후 그의 생애의 전환점이 오게 됩니다.
독일계 미국 작곡가인 말스베리(Dweight Malsbary)와의 만남이 그것입니다.
이 만남은 영원한 스승과 제자관계가 됩니다.
부산에 거주하는 친구인 김재승 집에 기거하며 온천장교회 성가대를 맡아 지휘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성가대를 통해 자작 성탄절 칸타타와 성가작품을 연주하게 됐는데 이것을 당시 당회장이었던 이재만 목사가 부산에 선교사로 와 있는 드와이트 말스베리(Dweight Malsbary)에게 그의 작품을 갖다 보여주면서부터 사제관계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말스베리는 전 평양신학교와 숭실전문학교 교수였다가 선교사로 변신해 부산에 파송 왔던 것입니다.
말스베리는 그의 작품을 보고 제자로 삼고 싶어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말스베리 제자가 됐고 5년간이나 피아노, 작곡, 관현악법 등 작곡가로서 갖추어야만 되는 모든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그가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를 하게 된 동기입니다.
그가 그의 스승 말스베리에게 한 약속이 있습니다.
작품을 쓰면 십일조를 드리는 일과 교회음악을 하겠다는 약속이 그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살려주셨기 때문에 찬양곡을 안 쓰면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그와 교회음악은 어떤 숙명적인 관계성을 갖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후 부산 교회음악지도자협회 회장, 한국작곡가회 이사, 부산작곡가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으로는 40여 곡의 기악곡을 비롯해서 수백 편의 가곡과 성가합창곡, 오라토리오 등 많은 교회 음악을 작곡하여 한국 교회 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는 16마디의 찬송가를 작곡할 때면 언제나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당신을 위한 곡을 쓸 때면 왜 그렇게 어렵고 힘든지요. 저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주님”
그는 우리들에게 음악교육자 특히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겸 음악교육자인 Czerny, Carl(1791-1857)이나 독일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바이엘(Beyer, Ferdinand, 1803 -1863) 등과 비교할 수 있는 작곡가 겸 교육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교육용 피아노 작품을 써서 제자들을 교육시켰고 이것을 연주회를 통해 보급도 시켰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목록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김국진이 남긴 3000여 작품 중에서 많은 찬송가를 비롯한 성가합창곡이 있습니다.
김규현 음악평론가는 김국진을 가리켜 ‘한국의 슈베르트’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는 생전에 “한국의 음악인들이 서양음악 전도사가 되지 말고 자생하는 한국의 소리를 세계가 가진 악기, 피아노에서 연주되도록 악보를 던져주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1950년대부터 우리 민요와 동요를 수집해 연구하며 ‘어떻게 하면 한국의 소리를 서양 음악 즐기듯 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교회음악의 뉘앙스 즉 종교성이 강하게 느끼게 하고 있는 반면 그의 교회음악관은 일반음악과 교회 음악의 차별의식을 두지 않으려는 사고를 가졌습니다.
Bach나 Mozart, Beethoven 등도 이런 사고로 작품을 썼다는 그의 논리입니다.
음악 자체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지 뉘앙스나 종교성은 그렇게 문제가 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음악의 세속화 문제도 그는 그렇게 걱정을 안 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작곡가 바하 마냥 하나의 유형(틀)을 만들어 놓으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거룩성(sanctity)은 신축성 있게 다루어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다작(多作)을 하는 이유는 곡을 안 쓰면 혈압이 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졸작이든 걸작이든 서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렇게 쓰다보면 유사한 작품이 나오게 되는데 쓸모없는 곡은 과감히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작품 중에 선택해 쓰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니까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긴다는 낙천적인 사고입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언젠가는 후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인정하고 불러주겠다는 인위적인 사고는 생각조차 하기 싫다고 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곡을 썼다고 합니다.
 
https://youtu.be/sM45XReAr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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