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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묵상

찬송가 묵상 #082 주 믿는 형제들 (Blest Be the Tie That Binds)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7.27|조회수174 목록 댓글 0

찬송가 묵상 #082
주 믿는 형제들 (Blest Be the Tie That Binds)


찬송가: 221장 주 믿는 형제들
영어제목: Blest Be the Tie That Binds
작사자: 존 파우셋 (John Fawcett, 1740-1817)
작곡자: 한스 네겔리 (Hans Georg Nageli, 1773-1836)
찬송곡조(Hymn Tune): DENNIS
찬송가사
1.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곡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친교라
2.
하나님 보좌 앞 다 기도드리니
우리의 믿음 소망이 주 안에 하나라
3.
피차에 슬픔과 수고를 나누고
늘 동고 동락하면서 참 사랑 나누네
4.
또 이별할 때에 맘 비록 슬퍼도
주 안에 교제하면서 또다시 만나리


https://youtu.be/Xi8gTyk0kfQ

[찬송 묵상]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편 133:1)
 
형제라는 단어에는 성도간의 관계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 관계에는 하나님과 우리를 묶고 있는 예수님의 끈이 있습니다.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믿음을 지키기에도 큰 힘이 됩니다.
모든 성도는 한 형제가 되며, 성도는 교회와 한 몸이 됩니다.
동일하게 교회와 교회, 교회와 선교단체, 선교단체와 선교단체도 한 몸입니다.
예수님이 끈으로 이어져 있기에 연합함이 참으로 선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아름다운 찬송시는 한 사역자의 감동적인 목회자세에서 빚어진 보석같은 찬송가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천국 이 세 공동체를 연결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결핍되어 있으면 이 셋은 어디에서든지 단절되기 마련이다.
가정에서 솟아흐르는 사랑의 샘이 교회 공동체의 가정으로 흐르고, 그것이 넘쳐서 사회로 흐르는 동안 어두운 사회는 밝아지고 천국은 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 성도의 가정에서 다른 성도의 가정으로, 한 성도로부터 다른 성도에게로 사랑이 흘러가고 들어오는 과정을 우리는 성도의 교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어떤 물건이 반드시 게재돼야만 이뤄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거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물건에 담아 보내는 수도 있고 봉사의 손길로 전하는 수도 있으나 성도와 교제는 내포되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에 그 진가를 나타냅니다.
그 사랑의 테두리 안에 들어간 성도가 어떤 슬픈 일을 당하게 되면 모두가 함께 슬퍼하고, 기쁜 일이 생기면 모두가 기뻐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슬픔이나 아픔을 모두 나눠서 담당하면 큰 슬픔이나 아픔은 아주 미미한 것이 되지만, 작은 기쁨이 모두의 기쁨이 되면 이 기쁨은 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찬송 가사에서 1절에서는 본질적으로 성도의 교제를 통해 사랑으로 묶여 있음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2절에서 예배를 통해 연합되고, 3절에서 서로의 짐을 나누며, 4절에서 영광 가운데 영생을 바라며 서로를 격려하는 성도들의 친교에 관한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원문 5절과 6절에서 어디서나 떠나간 친구들과 재결합하고 슬픔과 수고, 고통과 죄로부터 해방되는 내용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Ov-VUhHpfW0


[작사자와 작곡자]
작사자 존 파우셋 (John Fawcett, 1740-1817)
파우셋은 영국 Yorkshire에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2살 때 고아가 되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재단사에게 오랜 훈련을 받아 재봉사가 되었는데 대부분 독학으로 공부습니다.
16살 때 조지 화이트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의 설교를 듣고 복음을 받아들여 교회에서 많은 활동을 하면서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갔습니다.
갓 결혼을 한 25살 때 그는 웨인스게이트(Wainsgate)의 작은 시골의 침례교회 목사로 초빙을 받게 됩니다.
이 작은 마을의 가난한 주민들은 파우셋의 설교에 대한 사례로 대부분 감자와 다른 농산물에서 나온 매우 적은 급료였습니다.
그의 아내가 임신을 하면서 이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1772년 런던 카터 레인교회(Carter's Lane Church)에서 시무하고 있던 길(Gill) 목사가 고령으로 강단에 설 수 없게 되자 작고 가난한 웨인즈교회에서 봉직하던 파우셋 목사에게 요청하여 설교를 맡기도 했습니다.
길(Gill) 목사가 세상을 떠나자 카터레인교회에서는 즉시 파우셑 목사를 청빙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작고 가난한 웨인즈교회에서 궁핍한 사역을 해오던 파우셑 목사로서는 정말 대단한 기회가 온 것이었습니다.
연봉을 25파운드밖에 받지 못하던 파우셑 목사는 너무 생활이 어려워서 가구와 서적을 팔아가며 생활을 영위했고 견디다 못해 여러 차례 연봉을 40파운드로 올려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형편을 알면서도 인상해 주지 못하는 웨인즈교회 교인들은 자신들의 가난 때문에 안타까움만 더해갔습니다.
이런 때에 카터레인 침례교회에서의 청빙소식은 파우셋 목사를 대단히 기쁘게 했고 오랫동안 하나님께 간구한 기도의 응답이라고 감사했습니다.
파우셋 목사는 곧 승락 서신을 보내고 난 후 웨인즈교회에 사임을 통보했습니다.
웨인즈교회의 성도들은 비록 대접은 잘못해 드렸으나 목사와 성도들 사이는 마치 한 가족처럼 서로 사랑했었고 그만큼 정도 깊이 들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궁핍을 면할 뿐만 아니라 대우와 지위도 훨씬 높게 약속된 새 목양지로 향하는 목사님을 보내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우셋은 마지막 이별설교를 마치고 짐정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성도들이 모이고 생활도 안정을 갖게 되는 수도 런던에 있는 교회 목사로 가는 뿌듯한 기쁨이 파우셋 목사를 들뜨게 하였습니다.
떠나는 날 웨인즈의 전교인들이 모두 나와 짐 꾸리는 것을 도왔고 그러면서도 섭섭한 표정들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짐들은 하나 하나 런던으로 떠날 마차 위에 실려졌습니다.
마차에 책과 가구를 다 싣고, 막 떠나려고 하는데 교구 교인들이 몰려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고생스럽지만 여기 남아서 우리를 말씀으로 먹여 주세요”하고 간청하였습니다.
막상 떠나려니 정들었던 다정한 이웃, 비록 가난했을 망정 얼마나 자신을 사랑했던 성도들인가를 생각하니 이들을 두고 가는 것이 마치 배반하는 것 같은 마음의 괴로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파우셋 목사의 부인도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마지막 짐까지 다 실은 영국행 마차 앞에서 두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일순간 침묵에 잠겼습니다.
“우리가 웨인즈를 두고 런던으로 떠나는 것이 잘하는 것이 아닌 것 같소.
큰교회에서의 초청에 너무 기뻐한 나머지 이것이 과연 하나님께 향한 내 기도의 응답인지를 살펴보지 못했소.
큰교회에서의 많은 봉급으로 불편없이 사는 것만 생각하다니!
당신이 허락한다면 우리는 어디서나 행복한 것이오.”
파우셋 목사의 말에 그 부인도 기뻐하며 동의해 주었습니다.
 
짐들이 다시 마차에서 내려져 집으로 옮겨졌습니다.
웨인즈의 성도들은 "할렐루야!"를 외치며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습니다.
파우셋은 곧 정중한 거절 편지를 런던 카터레인교회에 보낸 후 웨인즈의 가난한 교회에서 45년간 시무했습니다.
이 찬송은 1772년 작자가 웨인즈게이트 교인들과 함께 머물겠다는 결심을 기념하기 위해 쓰여진 것입니다.
존 파우셋 목사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 눈물을 흘리며 이 찬송을 써내려 간 것입니다.
그 후 파우셋 목사는 생애 동안 많은 찬송시를 썼는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봉사하며 살고자 선택한 자신과 아내의 심정이 담긴 이 찬송 ‘Blest Be the Tie’가 탄생된 것입니다.
 
작곡자 한스 네겔리 (Hans Georg Nageli, 1773-1836)
내갤리는 영국 성공회 목사의 아들로 스위스 취리히 근처 베치콘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세상을 떠났다.
작곡가 겸 음악출판업자였던 그는 아버지에게서 음악을 배웠습니다.
1790년대 음악 관련 상점과 출판사를 연 그는 1803년부터 Repertoire des Clavecinistes 출판을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Muzio Clementi와 Johann Baptist Cramer, 그리고 Ludwig van Beethoven과 같은 음악가의 건반작품들이 실렸습니다.
그가 남긴 작품 대부분은 건반음악과 성악곡입니다.
한스 네겔리는 그는 "스위스 사람에게 노래를 가르친 사람"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는 찬송가 ‘Dennis’(주 믿는 형제들) 작곡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찬송곡조 DENNIS
곡명 DENNIS는 매사츄셋츠주(Massachusetts)의 한 도시 이름이기도 합니다.
‘DENNIS’는 스위스 작곡가 한스 네겔리(Hans G. Nägeli)가 작곡한 곡조를, 미국의 로웰 메이슨(Lowell Mason)이 편곡하여, <헨델과 하이든협회(Handel and Haydn Society)>에서 출판한 <시편가(The Psaltery, 1845)>에 ‘하나님의 계명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How Gentle the God's Commands)’ 곡조로 처음 사용한 것입니다.
단순한 곡으로 여러 개의 시퀀스로 시작됩니다.
1절과 6절은 제창, 그리고 나머지는 화성(이별과 관련된 예배인 경우 4절은 무반주)으로 노래하고, 두 그룹 (한 그룹은 떠나가는 그룹)으로 나누어 찬송 전체를 대창 방식으로 노래하는 것도 좋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를 한 박으로 카운트하며 곡조를 두 개의 긴 선으로 노래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https://youtu.be/coP7Vsifhvk

[찬송 작사와 번역에 얽힌 이야기]
파우셋 목사는 카터레인 침례교회의 목사 초빙을 받고 이사 가기 전 웨인즈 교회 성도들의 간곡한 받게 됩니다.
비록 어려운 생활환경 속에서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얽히고설킨 웨인즈 교회 성도들이 더 좋았던 것입니다.
성도들은 몹시 안타까워했으나, 가난한 자기들의 생활로서는 파우셋 목사의 생활을 도울 수 없었으므로 다만 하나님의 기적만 일어나기만을 바랬습니다.
주일이 지나자 퍼실 목사는 짐을 싸고 마지막 정리에 들어갔고, 성도들도 모두 와서 짐을 꾸리며 퍼실 목사를 도왔습니다.
런던 카트레인 교회에서 보낸 마차도 약속한 날짜에 도착했는데. 떠나는 날 성도들은 모두 와서 떠나는 목사의 일을 도우며 서운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습니다.
파우셋 목사가 마지막 짐을 운반하러 왔을 때 곁에 서 있던 그의 부인이 깊은 생각에 잠겨 슬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보 왜 그러우?”
퍼싵 목사가 물었습니다.
부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여보, 우리가 웨인즈게이트를 떠나 런던으로 가는 것을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부인은 퍼싵 목사의 바로 아픈 곳을 찔렀던 것입니다.
“여보, 그러면 우리가 너무 서두르고 있단 말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런던으로 가는 것을 단념하고 이 성도들을 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파우셋 목사의 마음에도 심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소.
큰교회에서의 초빙에 너무 기뻐서 이것이 나의 기도의 응답인지 미쳐 분간할 사이도 없이 응낙을 하고 말았던 것이요.
나는 다만 우리 가족이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고 큰교회에서 약속한 많은 봉급으로 유익하게 사는 것만 생각했었소.”
퍼싵 목사의 괴로웠던 심정이 후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당신만 만족하신다면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어디에 있든지 만족하고 행복한 것뿐이에요.”
 
잠시 후 파우셋 목사의 새로운 결심을 전달하자 성도들은 모두 기뻐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파우셋 목사는 런던 카터레인 교회에 사과의 서신과 함께 웨인즈게이트 교회에 머물기로 한 자기의 결심에 동의해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파우셋 목사는 이 마음으로 아름다운 찬송시를 쓰게 되었고, 다음 주일 설교 후 이 찬송시로 온 교우가 함께 찬송을 불렀습니다.
파우셋 목사는 이 찬송 제목을 ‘Brotherly Love’라고 했습니다.
파우셋 목사는 이 웨인즈게이트 교회에서 그의 일생을 마친 1817년 7월 25일 까지 무려 45년간을 시무했습니다.
조시아 밀러(Josiah Miller)는 그의 저서 <교회음악가와 음악, 1867>에서 이 찬송은 1772년 파우셋 목사가 정든 웨인즈게이트 교회 성도들과 같이 있기로 한 결심을 기념하기 위하여 쓰게 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편곡자 로웰 메이슨 (Lowell Mason, 1792-1872)
미국 교회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의 공로로 미국의 음악과 교육 환경, 지식수준이 전체적으로 한 단계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사랑하고 열정을 보인 그는 틈날 때마다 개인 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1,100곡의 찬송을 작곡하고 500여 곡을 편곡한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가지만 정작 자신은 전문 음악교육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은행에서 일하면서 부업으로 틈틈이 곡을 쓰던 아마추어 작곡가였습니다.
그러다가 보스턴의 '헨델과 하이든협회'에서 그의 곡을 출판했는데 이것이 인기를 얻게되면서 본격적인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한글가사 번역자 F. S. Miller (민로아, 1866-1937)
영어 본명이 프레드릭 S. 밀러인 민로아(민로아) 목사는 1892년 조선 땅에 첫발을 디딘 미국 북장로회 소속의 선교사입니다.
그는 많은 찬송가를 한글로 번역하였으며, 지금도 그가 번역한 천송가가 다수 불려지고 있습니다.
청주지역에서 40여 년간 선교사로 활동한 민로아 목사는 양화진 묘역에 묻혔습니다.


https://youtu.be/TQ0Epw1rwbc

[가사 영어원문]
우리 찬송가에는 4절로 된 찬송이지만 영어 원곡에서는 6절로 이루어져 있어 6절 모두를 소개합니다.
 
Blest Be the Tie That Binds
1.
Blest be the tie that binds
Our hearts in Christian love;
The fellowship of kindred minds
Is like to that above.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묶는 것은
가장 복된 것입니다.
친절한 마음으로 나누는 교제는
하늘의 것과 같습니다.
 
2.
Before our Father's throne
We pour our ardent prayers;
Our fears, our hopes, our aims are one,
Our comforts and our cares.
우리 아버지의 보좌 앞에서
우리는 뜨거운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두려움, 소망, 목표는 하나이며.
우리의 위로와 돌보심도 하나입니다.
 
3.
We share each other's woes,
Each other's burdens bear;
And often for each other flows
The sympathizing tear.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다른 사람의 짐도 나누네
그리고 종종 서로를 위하여
위로의 눈물을 흘립니다.
 
4.
When we are called to part,
It gives us inward pain;
But we shall still be joined in heart,
And hope to meet again.
우리가 잠시 헤어질 때
내적인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으로 바라는 것은
다시 만남을 소망합니다.
 
5.
This glorious hope revives
Our courage by the way;
While each in expectation lives,
And longs to see the day.
이 영광스러운 소망이
우리의 용기를 되살려 줍니다.
기대 속에서 각자가 살아가는 동안
그날을 보기를 갈망하네.
 
6.
From sorrow, toil, and pain,
And sin we shall be free;
And perfect love and joy shall reign
Through all eternity.
슬픔과 수고와 고통과
죄로부터 우리가 자유하였을 때.
완전한 사랑과 즐거움이
영원토록 함께 할 것입니다.
 
 https://youtu.be/T3I4cO9CC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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