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힐링좋은글

❤ 아내와 나 사이 ❤

작성자부자아빠,|작성시간22.11.15|조회수50 목록 댓글 0

❤ 아내와  나  사이 ❤

 

   시 /이   생   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들어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지난 2019년 봄 평사리 최참판 댁 행랑채 마당에서 

박경리 문학관 주최로
‘제1회 섬진강에 벚꽃 피면 전국시낭송대회’가 열렸습니다. 

 
 60여 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낭송시가 
바로 이생진 시인의 
이 작품입니다. 

 7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 낭송가의 떨리고 갈라지는 목소리에 실려 낭송된 이 시는 

청중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젖게 하였습니다.

 좋은 낭송은 
시 속의 ‘나’와 
낭송하는 ‘나’와 
그것을 듣고있는 ‘나’를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내 몸의 주인인 기억이 
하나둘 나를 빠져나가서 
마침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나이.
 

 나는 창문을 열려고 갔다가 

그새 거기 간 목적을 잊어버리고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에 갔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앞이 막막하고 

울컥하지 않습니까?
 

 시인은 차분하게 
이 참담한 상황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삶이란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일 뿐이라고. 
 
그리고 자책하는 목소리에 담아 
우리를 나무라지요. 

거창하게  
인생이니, 
철학이니, 
종교니 하며 

마치 삶의 본질이 
거기에 있기나 한 것처럼 핏대를 올리는 당신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고.  

진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나 사이’의 거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셈이지요. 

오늘도 당신은 좋은일만 있을겁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