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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왜성,,, 송진포왜성

작성자옥건수|작성시간13.02.16|조회수1,016 목록 댓글 5

 

송진포왜성

성이름

송진포왜성, 다른 이름(시루성, 장목우측성, 농암산籠岩山왜성)

소재지

장목면 송진포리 산36-3번지 일대

시대

선조27년 (1593)

축성자

福島正則, 戶田勝降, 長宗我部元親 또 다른 자료는 島津義弘, 里田長政이라고 함.

규모

둘레420m, 높이3m,폭3.2m

찾아가기

장목검무정에서 주차하고 100m 정도 올라가면 됨.

 

송진포왜성은 떡시루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시루성(甑城) 또는 삼태기처럼 생겼다고 하여 농바우라 하며 이 성을 농암산왜성(籠岩山)이라한다.

 

구전에 의하면 장목항의 좌우에 왜성을 설치하고 약 500m 되는 거리에 다리를 놓고 건너다녔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작고했으나 지금부터 100년 전에 수기목(삼나무)과 소나무가 울창하였다고 한다. 좀 과장되게 추정해보면 1593년경에 일본인들이 삼나무를 심어 1890년대까지 있었다고 추정해보나 황당한 이야기이다.

 

1970년도에 농마우( 籠岩山)는 해동의원 장종석씨가 구입하여 농장을 개설하였는데 그 당시 농장을 둘러보면 감나무가 대부분 배상형이나 변칙주간형이어서 왜놈들이 거주하였다고 추정해본다. 왜냐하면 그 당시 우리나라는 감나무를 자연형으로 키웠지, 배상형이나 변칙주간형으로 키우지는 않았다.

 

장목궁도장에서 100m 정도 올라가면 정상에 약 50평정도의 지휘소가 있던 자리로 보이는 곳에는 평지이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조금가면 큰바위가 몇 개있다. 지금은 이름 모를 산소가 있는 곳인데 1973년 내가 답사했을 때는 이곳에서 기와와 사발조각 등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망루인 것 같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힘들다. 계속 바다 쪽으로 가다보면 바다가 접하는 곳에는 기와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일본인들은 기와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장목우체국 앞에 독일집이 있는데 그 집을 수리하면서 기와를 일본에서 수입하여 사용하였다. 한국기와를 사용하지 않고 일본기와를 사용한 것은 기와 품질이 월등히 우수하여 그렇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본다.

 

 

장목만 양쪽에는 임란 시 왜군들의 군사용으로 두 성을 축조하였다. 오른쪽은 송진포왜성 왼쪽은 장문포왜성이다. 이 왜성은 해발 약60m 정상부를 중심으로 하는 東曲輪群과 서쪽약90m 정도로 중심으로 하는 서곡륜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현재 곡륜군사이를 연결하는 鞍部에는 궁도장이 들어서 있다. 궁도장이 설치되면서 동곤륜군의 개곡륜을 진입로로 이용하여 일부가 훼손되었으나 비교적 양호하다.

 

동곡륜군은 3개의 곡륜으로 이루어져 잇다. 중심이 되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곡륜은 동서약 25m , 남북 약 40m의 규모로 석축 높이는 약3m이다. 출입구는 남쪽으로 치우친 곳의 동서 양족 두 곳에 설치되어 있다. 동족의 출입구에는 계단이 있다. 동족 출입구에는 <L>자상의 곡륜이 설치되어 있다.

 

서곡륜군은 동국륜군에 비해 복잡하게 축성된 전형적인 왜성의 형태를 띠고 잇다. 높이나 구조적인 측면, 군사적인 측면에서 서곡륜이 중신적인 곡륜으로 기능상 차이점을 생각할수 잇다. 구릉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하는 곡륜과 산록을 중심으로 하는 곡륜, 이 두곡륜을 연결하는 석축으로 이루어져 잇다. 정상부를 중심으로 하는 곡륜은 약10M, 남북 약15M의 규모이고 석축의 잔존 높이는ㄴ 약2M이다. 출입구는 남쪽과 서족 두 곳에 설치되어 잇다. 두 곳 모두 외측에 <L>자상의 석축을 두루고 있다. 이 곡륜에서 북서쪽으로 단을 이루며 해안가로 바로 접하는 곡륜에 연결되어 있다.

해안가에는 성벽에 사용한 석재를 가공한 흔적이 잇는 바위들이 곳곳에 확인된다.

다음은 동아문화연구원에서 펴낸 자료를 옮겨본다.

 

 

 

송진포왜성지 조감도

 

장목에서 송진가는 길목에 안내판이 있다. 장목검무정(궁도장)으로

 올라가니 그곳으로 가면 된다.

 

돌로 싸놓은 곳이 곳곳에 보인다.

 구골나무가 집단으로 생육하고 있다.

 이곳에서 기왓장과 사발쪼가리를 수거한 곳이다.

 장목항 입구의 모습, 꼭 떡동구리를 포개놓은 모양이다.  저 멀리 보이는

 곳이 송진골프장이다.

 

범벅섬을 뒤로 하고 장목 모구리배들이 입항하고 있다.  장목은 우리나라

 최대의 개조개 생산지이다.

 

왜성이 있는 곳에는 지금은 장목궁도장이 있다.

 

검무정 안에 걸려있는 박대통령 글씨

 

장목해양연구소 시험선 뒷쪽으로 보이는 산이 시루성이며, 송진포왜성이 있는 곳이다.

찾아가기: 장목궁도장에 주차하고 약100m 올라가면된다.

 아직 시지정문화재로 등록이 되지 않아 안내판이 없다.

바다 동쪽에 있는 해양연구소 주변이 장문포왜성이 있는 곳이다.

 장목에는 우리나라 모구리배 시조로 개조개가 대량 위판되고 판매되는 곳이다.

장목에는 왜성이 3곳이 있다. 그리고 조선성도 3곳이 있다.

   -왜성: 장문포왜성, 송진포왜성, 영등포왜성

  - 조선성: 율천성, 구영성, 중금산성

관광지

  - 장목중학교 옆에 장목진 객사가 있다.

  - 이웃 관포에 위판장이 있다.

  - 바닷가에는 대규모 활어 판매산터가 있다.

  - 우리나라 초서의 대가 김현봉선생님이 장목초등학교옆에 있다

  - 이웃에 송진골프장과 송진초등학교에는 예술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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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고영화 | 작성시간 13.02.16 잘 봤습니다.^^ 왜성 조감도는 상세히 측량해 났네요.
  • 작성자올카 | 작성시간 13.02.17 와, 거제에 골프치는 곳도 있군요. 세월 탓인가요, 찾아가는 길은 어마어마한데 성의 윤곽이 흔적을 숨기고 있네요. 그래도 성터는 남아 있으니....참 수고가 많으십니다.
  • 작성자bangyang | 작성시간 17.10.14
    1970년도에 농암산(籠岩山)은 해동의원 장종석씨가 구입하여 농장을 개설하였는데... 이부분은 考證(고증)이 잘못되어 訂正(정정) 합니다. 1970년 이전에 말못하는 버부리 남편을 데리고 사신 우씨 아주머님께서 살았다가 1970년경에 三千浦(삼천포) 사람 이신 長木(장목) 海東病院(해동병원) 金鍾碩(김종석) 선생이 購入(구입)하여 果樹園(과수원)겸 別莊(별장)으로 가꾸던 생각이 납니다. 바로 이웃에 우리 집이 있어 1950년 대 부터 자주 놀러 갔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때 감나무 배나무 밤나무 등 有實樹(유실수)가 많아 가면 따 먹으라고 주었고, 농암산이 아니라 농바우산입니다. 농같이 생긴 바우가 있어 붙힌 이름입니다.
  • 작성자bangyang | 작성시간 17.10.17
    그 버부리 어른께서 이 농장을 떠난 이유가 기막힌 사연이 있습니다. 농바우산을 농암산이라고 主張(주장)하시면 歷史(역사)가 歪曲(왜곡) 됩니다. 농암산의 由來(유래)는 없습니다. 訂正(정정) 바람니다. 그래야 長木面(장목면) 歷史(역사)가 正論(정론)이 되어 선대 선조님들께서 전해 주신 口傳(구전)데로 바른 歷史(역사)를 만들수가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歷史(역사)를 說話(설화)나 傳說(전설)의 故鄕(고향)쪽으로 이끌어 가게 되어있습니다. 歷史(역사)는 歷史(역사) 科學(과학)입니다. 고향이 거제 시루성이 고향인 양방수 제공 합니다. 아래 원글 보기
    http://blog.daum.net/bangyang/2661


  • 작성자bangyang | 작성시간 17.10.14 농바우산을 농암산이라고 主張(주장)하시면, 籠岩山(농암산)으로 주장 하시는지를 밝혀 주시면 대단히 감사 하겠읍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正史(정사)라고 보아야 합당합니다만, 今始初聞(금시초문) 입니다. 해명이 꼭 필요 합니다. 그러나 견해라면 그것은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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