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군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나홍곡(囉嗊曲)’> 고영화(高永和)
중국 당나라 때 유행했던 「나홍곡(囉嗊曲)」이라는 악곡(樂曲)이 있다. 당나라 여성시인 유채춘(劉采春)이 여기에 가사를 쓴 ‘나홍곡(囉嗊曲) 6수(六首)’가 최초 ‘나홍곡’으로 전해온다. 나홍곡은 아내가 먼 길 떠난 남편을 기약 없이 기다리며, 하염없는 그리움과 원망을 여성 화자의 시각에서 노래한 가곡(歌曲)이다. 그런데 때론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 간의 슬픈 사랑을 사물에 빗대어 노래하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사랑하는 연인(戀人)이 어쩔 수 없는 이별로 인한 그리움과 한탄을 그린 노래로, 여성 화자의 입장에 서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뒤이어 창작하였다.
◉ 한편 전해오는 대부분의 「나홍곡(囉嗊曲)」은 중국 악부시(樂府詩) 「나홍곡(囉嗊曲)」을 본떠 지은 작품으로, 한 여인이 사랑하는 이와 유리(遊離)된 상황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시로, 애틋하고 담백하다. 이토록 애타는 상황에서 체념할 수도 그렇다고 희망을 갖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발상이 새삼스럽다. 낭군의 직업이 먼 길을 오가는 장사꾼이라는 숙명을 지녔기에 그리움과 한탄, 그리고 간절함이 저절로 배어 나온다. 게다가 바라건대 제발 님께선 굳센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처럼 어떤 유혹에도 변치 마시고, 저 가벼이 물에 떠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부평초처럼 이 여자 저 여자에게 흔들리며 정(情)을 남용(濫用)하지 말기를 소원한다. 게다가 무엇보다 무탈하길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다른 시가(詩歌)와 다른 <나홍곡(囉嗊曲)>의 특징이 있다면 대부분 5언 4구(句) 절구로써 3수(首), 6수(首), 12수(首)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 본디 나홍곡(囉嗊曲)은 가곡의 한 이름이었다. 당나라 범터(范攄)의 《운계우의(雲溪友議)》에는 “금릉에 나홍루(囉嗊樓)라는 누각이 있는데, 바로 진 후주가 세운 누대이다. 처음 나홍곡(囉嗊曲)은 당(唐)나라 여성시인 유채춘(劉采春)이 부른 곡이었다. [원진이 유채춘에게 선사능창망부가(選詞能唱望夫歌)를 주었는데 그것이 곧 나홍곡이다.] 모두 당시 제자들이 지은 오언, 육언, 칠언의 절구이다. 일명 남편을 그리는 〈망부가(望夫歌)〉라고도 한다.[金陵有囉嗊樓 乃陳後主所建 囉嗊曲劉采春所唱 皆當代才子所作五六七言絕句 一名望夫歌]”하였다.
또 청나라 고사기(高士奇)의 《천록지여(天祿識餘)》에는 “나홍(囉嗊)은 옛날 진 후주(陳後主)가 세운 누대 이름이다. 당나라 원진(元稹)이 절동(浙東)을 염찰(廉察)할 때 기생 유탐춘(劉探春)이 이 가곡을 잘 불렀다.”하였다. 한편 원진(元稹)은 설도(薛濤)의 마음을 흔들었던 한량으로 춘망사(春望詞)를 짓게 한 장본인이 아닌가 추정된다.
또한 명나라 문학비평가 호응린(胡應麟 1551~1602)은 그의 평론집 『시수(詩藪) 1589作』에서 “이 노래는 유채춘(劉采春)이 부른 노래라 하는데 당대의 제자들이 지었고, 성당 이전의 작품이다.”라고 설명했다. 장사하는 여인들이 손님을 마주하고 부른 노래이다. 참고로 조선초기의 시인 성간(成侃 1427~1456)의 『진일유고(眞逸遺稿)』 권2에는 ‘나진곡(羅嗔曲)’으로 되어 있는데 나홍곡(囉嗊曲)의 오기인듯하다.
◉ 이번 지면에 소개하는 4편의 <나홍곡(囉嗊曲)>은 모두 5언 4구(句) 절구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조선초기의 시인⋅문신인 진일재(眞逸齋) 성간(成侃 1427~1456)의 12수(首)는 중국의 악부시(樂府詩) 「나홍곡(囉嗊曲)」을 본떠 지은 작품으로 낭군(님)을 그리는 여인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했다. 이어 조선후기 남포현감, 황산찰방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인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 1741~1826)의 오언절구 3수(首)는 님에게 항구 불변하는 사랑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그리고 조선후기 문신 서주(西州)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의 오언절구 3수(首)는 먼 길 떠난 남편의 장삿배가 바람 부는 물길 따라 떠다니다보니 근심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날마다 낭군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장삿길로 떠난 남편을 한 해가 가고 또 한해가 지나가도록 애타게 기다리며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낸, 당(唐) 시인 유채춘(劉采春)이 애창한 악부시(樂府詩) 6수(首)를 차례대로 소개하겠다.
● 다음 ‘寘(支)’, ‘尤’, ‘先’, ‘眞’, ‘月(屑)’, ‘董(腫)’, ‘魚’, ‘寒(刪)’, ‘東’, ‘庚(靑)’, 歌(麻)‘, ’文(眞)‘ 압운자(押韻字)를 사용한 오언절구 12수(首)로 이루어진 <나홍곡(囉嗊曲)>은 조선초기의 시인⋅문신 진일재(眞逸齋) 성간(成侃 1427~1456)의 작품이다. 성간(成侃)의 『진일유고(眞逸遺稿)』 권2에는 ’나진곡(羅嗔曲) 12수(十二首)‘라고 되어있는데 나홍곡(囉嗊曲)의 오기인듯하다. 중국의 악부시(樂府詩) 「나홍곡(囉嗊曲)」을 본떠 지은 작품이다. 낭군(님)을 그리는 여인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했다. 조선중기 문신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1618)이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 이르길, “진일재(眞逸齋) 성간(成侃)이야말로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중국의 고시를 배워 그 법을 깊이 체득했다”고 칭송했다.
○ 첫 수(一首)에선 낭군(님)과 함께 하지 못하는 슬픈 마음을 희망에 부푼 계절인 봄과 대조시켜 극적으로 드러냈다. 둘째 수(二首)에선 그대를 그리다가 흘린 눈물을 고향으로 흘러가는 강물에다 뿌리며 나의 애타는 마음이 전해지길 거듭 거듭 소원한다. 셋째 수(三首)에선 예전에 낭군이 아이들과 함께 이 강을 따라 학당으로 오고 갔다. 그래서 낭군이 다니는 강의 강신(江神)에게 한 잔 술을 따라주며 낭군과 다시 만나게 해 주길 기원한다. 아마도 가련히 여겨 강신이 소원을 들어 줄지도 모르겠다. 네째 수(四首)에선 수레바퀴(낭군)와 흙(자신)의 비유를 들어 다시 한 번 화자의 슬픔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그 바퀴에 붙어서라도 함께 하고 싶은데, 지나가 버리는 바퀴는 땅바닥의 흙을 돌아보지 않는다.
다섯 번 째 수(五首)에선 자연에서 대나무와 둥근 달은 잘 어울리는 환상의 짝이다. 그런데 달은 변덕이 심해 둥근달에서 초생달로 초생달에서 보름달로 날마다 변한다. 그러나 대나무는 뿌리가 깊다보니 좀처럼 뽑히질 않는다. 대나무는 밝은 달과 어우러져 이 밤을 더욱 노래하고 싶다. 그러나 낭군은 변함없는 대 뿌리 같지 않고 달처럼 자꾸 떠나려 한다. 여섯째 수(六首)에선 낭군이 계시는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고 싶어도 청산이 천만 겹이 막혀 있어 낭군의 안부를 물을 곳이 없다. 오직 기러기만 하늘을 날아다닐 뿐. 일곱 번 째 수(七首)에선 강가에 핀 난초 어여쁘고 강가의 마름 또한 수북하게 자랐다. 북쪽에서 물고기도 돌아오는데 북쪽의 장안의 낭군은 돌아오질 않는다고 하소연 한다. 여덟 번째 수(八首)에선 보름달이 뜨는 차가운 저녁에 달님에게 낭군을 만나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 언제쯤에나 오시려나? 애끓는 마음에 집으로 가야하는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아홉 번째 수(九首)에선 낭군과 헤어진 후로 매일 근심 속에 보내다보니 머리가 쑥대처럼 되었다. 차가운 얼음과 하얀 눈처럼 절조를 지키느라 수궁(守宮)으로 만든 연지로 점찍고 기다린다.
열 번째 수(十首)에선 바람이 불면 대숲은 통째로 일렁인다. 연못 위 부평초는 사방으로 흩어진다. 나는 님이 한 뿌리로 곧게 서서, 흔들리는 대나무 가지 같았으면 좋겠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이리저리 떠돌며 자꾸 딴 곳만 기웃거리는 부평초는 싫다. 열한 번 째 수(十一首)에선 시적화자가 남쪽 호수에서 마름을 캐다보니 날은 저물고 이슬이 흰 마름에 맺히기 시작한다. 문득 돌아본 서쪽 밭두렁은 예전에 그리운 낭군이 살던 집이었다. 마지막 수(十二首)에선 금세 돌아 오마는 다짐을 하고 낭군이 내 곁을 떠난 지도 어언 한 해가 다 되어 간다. 편지는 오는 둥 마는 둥 시늉만 하다가 이내 끊겼다. 참으로 박정한 사람이다. 탄식의 눈물이 절로 흐른다.
1) 나홍곡 12수(首)[囉嗊曲 十二首] / 성간(成侃 1427~1456)
一首
爲報郎君道 낭군에게 전해 묻노니
今年歸不歸 금년에는 오시나요 못오시나요
江汀春草綠 강가에 봄풀 자라 푸르러갈 때
是妾斷腸時 이 소첩의 애간장은 다 녹는다오.
二首
一掬相思淚 한 움큼 그대 그리는 눈물을
洒向江上流 흐르는 강물에 뿌립니다.
慇懃再三祝 은근히 두세 번 거듭 빌고 비니
幾日到神州 어느 날에 신주(고향)에 이르려나.
三首
滴酒賽江神 한 방울 술을 따라 강신에게 기원하니
江神倘見憐 강신(江神)이 아마도 가련히 보리라.
載兒夫壻舶 낭군은 아이를 배에 태우고
來往此江邊 이 강변에서 오고 갔었지요.
四首
郎如車下轂 낭군은 수레바퀴통과 같다면
妾似路中塵 저는 길 위의 흙과 같답니다.
相近仍相遠 서로가 가까워졌다 곧 멀어지니
看看不得親 바라볼 뿐 가까워질 수가 없네요.
五首
妾心如斑竹 내 마음은 얼룩진 대나무 같고
郎心如團月 낭군의 마음은 둥근 달과 같지요
團月有虧盈 둥근달은 찼다가 이지러져도
竹根千萬結 대뿌리는 천만년 얼키고 설켜 있다오.
六首
欲問長安道 장안으로 가는 길 물어보고 싶지만
靑山千萬重 푸른 산이 천만 겹으로 막혀 있으니
郎期無處卜 낭군님 오실 날 물을 곳조차 없는데
天際數冥鴻 하늘가엔 수많은 기러기만 오가네.
七首
渚蘭初婉婉 강가의 난초는 처음이라 어여쁘게 피어나고
江荇亦踈踈 강가의 마름 또한 수북한 것을.
朝朝江上路 아침마다 강가 길에서
冀得北來魚 북쪽에서 오는 물고기 만나고 싶어요.
八首
黃昏拜新月 황혼에 새로운 달님에게 절 하느라
不覺玉纖寒 고운 손이 춥다는 걸 생각지 못하네.
何日郞君至 어느 날에 낭군님이 오시려나?
山頭不放山 산 정상에서 내려오질 못하네.
九首
自從郞去後 낭군께서 떠난 후로 저는 근심에 잠겼고
鬢髮似秋蓬 내 머리카락은 가을 쑥대 같다오.
氷雪爲情操 얼음과 눈처럼 지조를 지키니
無勞鮎守宮 수궁(守宮)으로 만든 연지 점찍은 것 수고롭지 않아요.
十首
綠竹條條勁 푸른 대나무 마디마다 굳세고
浮萍箇箇輕 부평초는 하나하나 가볍구나.
願郞如綠竹 낭군은 푸른 대나무 같기를 바라오니
不願似浮萍 부디 부평초는 닮지 마소서.
十一首
南湖採白蘋 남쪽 호수에서 흰 마름 캐다보니
日暮零露多 날 저물어 찬 이슬 방울 맺히네.
回頭指西畔 고개 돌려 서쪽 밭두렁 가리키니
是處故人家 바로 그곳이 낭군의 집이였지요.
十二首
憶昔別離日 옛날 이별했던 날 생각해보니
臨岐誓已勤 갈림길에서 맹세하고 다짐 했었지.
經年書小到 한해가 다가도록 소식이 없네.
眞箇薄情人 참으로 박정한 사람이구려.
[주1] 신주(神州) :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추연(騶衍)이 중국을 적현신주(赤縣神州)’라고 했는데, 이로 인하여 후세 사람들이 중국을 신주라고 했음. 여기서는 고향을 의미한다.
[주2] 반죽(斑竹) : 볏과(科)에 딸린 대의 한 가지. 줄기 겉에 흑색의 아롱진 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며, 버들잎 모양의 잎은 가지 끝에 1~5개씩 달림. 4~5월에 붉은 갈색의 죽순이 나온다. 죽순은 식용하고, 나무는 죽세공에 쓴다. 중국이 원산지로,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서 재배한다.
[주3] 수궁(守宮) : 여자의 팔뚝에 붉은 점을 찍어서 여인들의 정조를 검증하는 것. 수궁사(守宮砂)로서 처녀일 때는 지워지지 않는다함.
[주4] 거복응(擧服膺) : 마음에 간직하여 정성을 다 한다.
● 다음 ‘微’, ‘文’, ‘語’를 압운(押韻)한 오언절구 3수(三首) <나홍곡(囉嗊曲)>은 조선후기 남포현감, 황산찰방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인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 1741~1826) 선생이 57세 때 지은 작품이다. 떠난 님이 소식도 없이 돌아오질 않자 그리움에 애타는 심정을 담아낸 노래이다. 변화무쌍한 구름보다 흠결 없는 해가 되길 기원한다. 부디 술과 기녀 조심하시고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소망한다.
첫 수(首)에선 여성 화자의 입장에서 떠난 후 돌아오지 않는 님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의 마음을 담았다. 둘째 수(首)에선 역시 여성 화자의 입장에서 님에게 항구 불변하는 사랑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세째 수(首)에선 역시 여성 화자의 입장에서 기루의 미녀를 찾는 님을 원망하는 마음을 담았다.
2) 나홍곡 3수[囉嗊曲 三首] / 윤기(尹愭 1741~1826)
江潮還能汐 썰물 빠지면 다시 밀물 드는 법인데
郞去不肯歸 님은 가신 뒤 어이해 돌아오지 않나.
可憐水有信 슬프다 저 물은 믿음이 있건만
所嗟人却非 딱하다 사람은 그렇지 않구나.
白日圓無缺 해는 둥글어 흠결 없거늘
浮雲聚却分 구름은 뭉쳤다가 흩어지네.
願郞如白日 님이여 부디 해처럼 되시고
不願似浮雲 뜬구름처럼 되지는 마소서.
伐性靑帘醪 본성 해치는 건 청루의 술이요
憐錢大堤女 돈을 밝히는 건 대제의 기녀인데
如何郞不知 어이하여 낭군님은 그걸 모르고
使我徒延佇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게 하시나.
[주1] 벌성(伐性) : 인간의 성품을 해침. 전의되어, 술의 해독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한(漢)나라 매승(枚乘)의 〈칠발(七發)〉에, 초(楚)나라 태자가 병에 걸리자 오객(吳客)이 찾아가서 “아름다운 여인은 본성을 해치는 도끼요, 맛 좋은 주효(酒肴)는 위장을 썩게 하는 약물이다.〔皓齒蛾眉 命曰伐性之斧 甘脆肥醲 命曰腐腸之藥〕”라고 한 것에 전거를 둔 표현이다.
[주2] 연전대제녀(憐錢大堤女) : 당나라 장조(張潮)의 시 〈양양행(襄陽行)〉에 “대제의 여러 기녀들은 돈 있는 남자를 사랑하지 결코 덕 있는 군자를 사랑하지는 않는다네.〔大堤諸女兒 憐錢不憐德〕” 하였다. 대제(大堤)는 술의 고장으로 유명한 중국 양양(襄陽)의 지명이다. 대제녀는 대제에 세운 청루에 있는 여인, 곧 기녀를 뜻한다.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수왕(隋王) 유탄(劉誕)이 양양에서 밤에 기녀들의 노래를 듣고 지은 〈양양악(襄陽樂)〉과 남조 양(梁)나라의 간문제(簡文帝) 소강(蕭綱)이 대제의 기녀를 읊은 〈대제곡(大堤曲)〉이 유명하다. 또 남조 양나라 소강(蕭綱)의 시 〈대제(大堤)〉에 “길쌈 잘하는 아내를 몰아내고, 돈 밝히는 요망한 계집 사랑하네.〔出妻工織素 妖姬悽數錢〕”라고도 하였다.
● 다음 ‘東’, ‘齊’, ‘支’ 압운의 오언절구 3수(三首) <나홍곡(囉嗊曲)>은 조선후기 문신 서주(西州)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의 노래이다. 이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시적화자는 강과 바다의 뱃길을 통해 장사하는 상인도 되지 말고 그 부인도 되지 말라 한다. 물 걱정 바람 근심에 잠 못 들면서 애간장을 태우기 때문이다. 장삿길로 떠난 남편으로부터 오랜만에 온 편지에서, ’좋은 값에 물건을 팔았다‘는 글에 남편과 함께 다니던 파릉(巴陵)의 서쪽으로 다녀왔다. 늘 그렇듯, 날마다 남편을 기다리며 강어귀를 바라보는데 애간장이 타서인지 강가 버들엔 움도 돋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남편 걱정에 찌푸린 이맛살도 남편이 돌아오면 금세 펴질 수 있을 거라면서 마무리 했다.’
3) 나홍곡 3수[囉嗊曲 三首] / 조하망(曺夏望 1682~1747)
莫作江南賈 강남의 상인이 되지 마세요
愁水復愁風 물 걱정 바람 근심 달고 사니 말이에요
莫作賈人婦 상인의 부인이 되지 마세요
夢寐風水中 꿈속에서도 바람 부는 물 위를 떠다닌다오.
其二
前日遠書至 어제는 멀리서 편지가 왔는데
販寶武陵溪 무릉(武陵)의 시내에서 보화를 팔았다네요.
昨夜風色好 어젯밤엔 경치가 너무 좋아
應下巴陵西 당연히 파릉(巴陵)의 서쪽으로 갔다 왔지요.
其三
日日江口望 날마다 강어귀를 바라보는데
江柳不生枝 강가 버들엔 가지가 생기질 않네요.
惟應待郞至 응당 기다리는 낭군께서 돌아오신다면
與儂方舒眉 당신으로 인해 생긴 이맛살이 금세 펴질 거예요.
● 다음 ‘先’, ‘先’, ‘先’, ‘魚’, ‘先’, ‘寒’ 압운의 5언 4구(句) 6수(首)의 악부시(樂府詩) 「나홍곡(囉嗊曲)」은 당(唐) 시인 유채춘(劉采春)이 애창한 「망부가(望夫歌)」이다. 먼저 6수(首)의 내용을 살펴보자.
한 해가 가고 또 한해가 지나가도 진회(秦淮) 운하를 통해 장삿길로 떠난 남편은 돌아오질 않는다. 운하에 오고가는 배들이 얄밉기만 하다. 버드나무도 시들고 가지와 잎들도 절로 떨어졌다. 제발 상인의 아내는 되지 마시길, ‘기다리다 돈이 없어 금비녀로 채소를 산다네.’ 남편이 예전에 말하길, ‘돈을 많이 벌어서 동강에서 조용히 낚시질 하며 숨어살자’ 했었다. 오늘에야 남녘 광동성 광주에서 편지가 왔다. 내년에야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어제부터 북풍이 싸늘하게 불기 시작하니 마을 물가에 배들이 매여 있다. 조수가 밀려 들이쳐 닻줄이 끊어지고 노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상선을 타고 먼 길을 다니는 남편의 수고로움을 알겠다. 그리곤 그리운 남편을 생각하며 끝맺었다.
○ 저자 유재춘(劉采春)은 설도(薛濤), 어현기(魚玄機), 이야(李冶)와 더불어 당나라 4대 여류시인으로 불리고 있다. 나홍곡(囉嗊曲)은 일명 <망부가(望夫歌)>로 불리며 유채춘이 지어 애창한 시이다. 그녀는 관료인 주계숭(周季崇)의 처로 노래·춤·문학에 뛰어났으며 유채춘 부부는 백거이의 벗인 원진(元稹)이 월주자사(越州刺史)와 절동관찰사(浙東觀察使)로 있을 때 찾아가서 예술과 문학 교류를 하였다. 나홍곡(囉嗊曲)은 나홍루(囉嗊樓)에서 따온 제목인데 남북조 진(陳, 557~589) 말기 5대 황제(583~589) 후주 숙보가 금릉에 세웠던 누각이다.
4) 나홍곡[囉嗊曲] 6수(首) / 당(唐) 시인 유채춘(劉采春)
不喜秦淮水 진회(秦淮)의 강물은 즐겁지 아니하고
生憎江上船 강물 위의 배들은 얄밉기만 하네요.
載兒夫婿去 아이 같은 낭군님 싣고 가버려
經歲又經年 해가 가고 또 한해가 지나가네.
借問東園柳 동쪽 언덕의 버드나무에게 묻나니
枯來得幾年 마른나무가 된지 얼마나 되었는지.
自無枝葉分 가지와 잎들도 절로 떨어져 없으니
莫恐太陽偏 햇빛이 심하게 비쳐도 두려움이 없겠구나.
莫作商人婦 상인의 아내는 되지 말지니
金釵當蔔錢 금비녀로 무우 값을 치르네요.
朝朝江口望 아침마다 강어귀를 바라보자니
錯認幾人船 몇 번이나 사람과 배를 잘못 알아보는지.
那年離別日 어느 해 이별하던 날
隻道住桐廬 님은 동려에서 살자했지요.
桐廬人不見 동려(桐廬)엔 그 사람 보이지 않더니
今得廣州書 오늘 광주(廣州)에서 편지가 도착했네요.
昨日勝今日 어제가 오늘보다 좋았지만
今年老去年 올해도 다갔으니 내년이구나.
黃河淸有日 황하도 맑게 되는 날 있으리니
白發黑無緣 까닭 없이 검은 것이 희어지기 시작하네.
昨日北風寒 어제는 북풍이 싸늘하게 불더니
牽船浦里安 마을 안 물가에 배들이 매여졌네요.
潮來打纜斷 조수가 밀려 들이쳐 닻줄이 끊어지고
搖櫓始知難 노가 흔들리니 비로소 어려움 알겠네요.
[주1] 진회(秦淮) : 남경(南京)을 지나 양자강으로 흐르는 운하 이름. 秦[진] 때에 만들고 양쪽 기슭은 유람지로 유명함.
[주2] 생증(生憎) : 공교롭게도, 마침, 하필이면
[주3] 동려(桐廬) : 후한(後漢) 광무제(後漢光武帝) 때 엄광(嚴光)이 죽마고우 광무제(光武帝)가 부르는데도 나가지 않고 동강(桐江)에서 낚시질하며 숨어살았다 한다. <後漢書 嚴光傳> 동려현(桐廬縣)은 절강성(浙江省) 엄주부(嚴州府)에 속한 현이다.
[주4] 견선(牽船) : 배를 뒤에 달아매고 끄는 배. 배를 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