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재기(默齋記), 군자는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분간한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말과 글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요즘 우리에게 ‘말해야 할 때는 말하고 침묵해야 할 때는 침묵해라(當言則言 當黙則黙)’는 공자의 말씀이 무엇보다 한결 가슴에 와 닿는다. 군자(君子)란?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잘 분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번 지면에 소개하는 「묵재기(默齋記)」는 1912년 우국지사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이 그의 제자 묵재(默齋) 이병철(李柄喆, 希彦 1874~1914)에게 써준 한문고전(漢文古典)이다. 이 작품은 송병순(宋秉珣)의 『심석재선생문집(心石齋先生文集)』 권18(卷之十八)에 수록되어 전한다.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은 1912년에 대구에 거주하는 이병철이 ‘묵재(黙齋)’라는 편액을 걸고자 하니 이에 대한 글을 좀 써달라고 청하니,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아는 것”에 대한 내용을 「묵재기(默齋記)」에 담아 보내면서 그를 면려(勉勵)한 것이다.
○ 「묵재기(默齋記)」에서 송병순은 공자의 침묵을 실천하려는 이병철(이희언)에게 “만 번 말하여 만 번 말이 합당하더라도 한 번 침묵하는 것만 못하다(萬言萬當 不如一黙)”라는 명나라 학자 설문청(薛文淸, 薛瑄)의 말을 먼저 제시한다. 그러다가 공자가 말했던 ‘반드시 침묵만이 정의가 아니다. 꼭! 말을 해야만 할 상황에는 말해라.’고 덧붙인다. 참고로 소크라테스 또한 ‘진리에 이르려면 끊임없이 질문하라’고 했었다. 그러므로 사회 정의와 사회의 부조리, 불평등에 대해서 용기 있게 대응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올바르고 공정한 처신이야말로 인류사회의 발전과 공동체의 융성에 기여하기 때문에 정의를 위해 반드시 말하고 당당히 밝혀야 한다. 또한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신의와 약속, 공공선(公共善)은 인간으로서 반드시 지켜야만 하기에, 주권을 가진 시민으로서, 이러한 모순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는 공자의 말씀처럼 침묵하지 말고 표출해야 한다. 반면에 이러한 사회모순에 봉착해서 ‘말해야 할 때 침묵한다’면 인류는 야만의 세계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 그런고로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아는 것’이야말로 소통의 핵심이자, 자신의 품격을 지키고 지혜로운 대화를 통해 더 나은 상호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필수 요소인 것이다. 보통 이런 행위는 용감한 사람과 양식 있는 사람들이 행한다. 반면 가장 잘못된 행위이자 지성(知性)의 수치(羞恥)로는, ‘말해야 할 때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이다.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나약(노예 근성), 비겁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고, 침묵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은 꿍꿍이속이 있거나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 한편 우리의 신체 중에는 입(口)이 가장 폭력적이고 귀(耳)가 가장 비폭력적이다. 고로 되도록이면 입은 다물고 귀는 열어 놓아야 한다. 남의 말을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질병은 입을 쫓아 들어가고 화근은 입을 쫓아 나온다.’ 고로 다물어라, 그 주둥이! 게다가 인간이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폭력적이며 또한 인간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사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가장 폭력적인 인간의 그 입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침묵의 예술을 배워야 하고 고요히 주의를 기울이며 머무는 법도 배워야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자제력과 성숙한 침묵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인하는 것들이다.
혹여 침묵이 필요하다고 해서 진솔함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어떤 생각들을 표출하지 않을지언정 그 무엇도 가장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닫아걸지 않고도 입을 닫는 방법은 많다. 침묵이 때론 경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반면에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대지에 웅크린 채 침묵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우리가 가진 사랑을 세상의 중심에 서서 마음껏 외쳐야 할 것이다.
<「묵재기(默齋記)」 원본,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아는 것> 송병순(宋秉珣 1839~1912)
명나라 학자 설문청(薛文淸, 薛瑄)이 일찍이 “만 마디 말이 만 번 합당해도 한 번 침묵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몰래 그걸 의아했다. 대개 사람의 말함과 침묵은 말하는 게 합당하면 말하고 침묵하는 게 합당하면 침묵해야 비로소 법도에 맞다. 침묵해야 할 때 말하고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실로 불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야 하는지와 해서는 안 되는지의 여부를 도외시한 채 침묵으로만 일관한다면 불가(佛家)의 적멸(寂滅)에 가깝지 않은가. 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것이 하늘이지만 우레 소리는 아닌 게 아니라(未嘗不) 스스로 그윽하고 침묵 속에 터져 나오니 또한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무릇 하늘과 덕이 합치하고 이치가 같은 사람은 성인(聖人)뿐이다. 이 때문에 주자(朱子)의 〈감흥(感興)〉 시에 “하늘은 그윽하고 말이 없으니 중니(仲尼, 공자)께서 말을 안 하려 하셨네.(玄天幽且黙仲尼欲無言)”라고 하였으니, 이를 보면 성인은 말하고 침묵하는 데 때가 있음을 또한 알 수 있다. 대령(大嶺, 새재)의 남쪽(대구)에 이희언(李希彦) 군이 그 서재에 ‘묵재(黙齋)’라는 편액을 걸고 나에게 이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청하였다. 희언, 그대는 중니(仲尼, 공자)를 배우려는 사람인가, 아니면 문청(文淸, 설문청)을 본받으려는 이인가? 나는 그 뜻을 묻고자 하노라.
아, 최근에 사악(邪說, 그릇되고 바르지 않은 말)한 말이 세차게 일어남에 사람들의 마음이 휩쓸리니 온 세상 가득 시끄러운 것은 모두 의리를 등지고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그대는 이를 경계하여 뒤로 물러나 침묵에 의탁하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대가, 말을 하려 하지 않는 중니를 사모한다는 것을 실로 알겠다. 또 한 가지 물을 것이 있다.
그저 성인을 사모하기만 할 뿐, 좋은 가르침이 담긴 경서(經書)에 침잠하여 체험하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 침묵은 단지 입을 닫는 것일 뿐이니, 실천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진실로 일상생활 속에서 동할 때나 정할 때나 마음을 수렴하고 이익의 유혹을 끊어내어 반드시 성인 문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의 가르침을 모범 삼아 실천하고(依樣) 실행하여 나가야(做去) 비로소 침묵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薛文淸嘗謂 “萬言萬當 不如一黙” 余竊疑之 蓋人之語默 當言則言 當黙則黙 方有儀則 而當黙而言 當言而黙 則固不可耳 然抛郤其當不當 而一主乎黙 則不幾於釋氏之寂滅乎! 彼無聲無臭者天也 而雷聲未嘗不自幽黙中發 則亦非一於黙也
夫人之於天 合其德同其則者 惟聖人能然 故朱子「感興」詩云 ‘玄天幽且黙 仲尼欲無言’ 觀此 亦可見聖人之語黙有時也
大嶺之南 李君希彦顔其齋曰黙 要余識之 希彦乎! 子欲學仲尼者歟? 抑效文淸者歟? 余欲叩其志 噫! 近日邪說蠭起 人心流蕩 溢世啾喧 皆背義趨利者 則子其懲於此而退託於黙歟? 然則固知子之志慕在仲尼之欲無言乎!
又有一可叩者 徒有志慕聖人 而若於謨訓 無沈潛體驗之工 則其黙也 只閉口而已 何益於實踐哉? 苟日用動靜之間 收其本原 絶其利誘 必以聖門之正法眼藏依樣做去 始可謂黙而成之也]
[주1] 송병순(宋秉珣 1839~1912) : 우국지사, 호 심석재(心石齋),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으로,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순절한 송병선(宋秉璿)의 아우이다. 종형인 송병선과 함께 큰아버지 송달수의 문하에서 성리학과 예학을 수학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두문불출하고 망국의 슬픔을 시로써 달래다가 1912년 일제가 회유책으로 경학원(經學院) 강사에 임명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대의를 지켜 순국할 것을 결심, 유서를 남긴 뒤 독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주2] 설문청(薛文淸 1389~1464) : 문청은 명(明)나라 성리학자 설선(薛瑄)의 시호이다. 영종(英宗)이 복위하자 예부우시랑 겸 한림원학사(禮部右侍郞兼翰林院學士)로 입각(入閣)하여 기무(機務)에 참여하였다. 그는 정주(程朱)에 뿌리를 두고 복성(復性)에 힘쓰면서 함양(涵養)을 위주로 학문하였는데, 주희(朱熹)가 나온 이후로 사도(斯道)가 크게 밝아져 굳이 저작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다.『明史』
[주3] 적멸(寂滅) : 불교(佛敎)에서, 번뇌의 경지를 벗어나 생사의 괴로움을 끊음. 죽음 입적(入寂), 열반(涅槃) 등 번뇌의 세상을 완전히 벗어난 높은 경지
[주4] 중니(仲尼) :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 유학(儒學) 철학자 공자(孔子 BC 551~BC 479)의 자(字), 본명은 공구(孔丘) 자는 중니(仲尼), 공부자(孔夫子)라고도 한다.
[주5] 이희언(李希彦) : 묵재(默齋) 이병철(李柄喆 1874~1914)의 자(字)다. 호는 묵재(默齋),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조선후기 애국지사인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과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의 문인이다. 이병철은 심석재에게 『중용(中庸)』을 배우고 성리(性理)의 설을 얻어들었다. 송병선이 1905년 을사조약을 성토하다가 구금되었는데, 이병철은 탁와(琢窩) 정기연(鄭璣淵), 택와(擇窩) 우하철(禹夏轍), 치재(癡齋) 서한기(徐翰基), 긍재(兢齋) 이병운(李柄運), 중재(重齋) 윤봉주(尹奉周) 등과 더불어 상경하여 부당성을 상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또 향리의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 1825~1905)와 경재(景齋) 우성규(禹成圭 1830~1905)의 강학에 참여하여 공부하였다. 이병철은 몸이 약하여 41세로 일찍 타계하였다. 현재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951에 그를 추모하는 정자 정관정(靜觀亭)이 있다.
[주6] 정법안장(正法眼藏) : 불교 용어로, 석가(釋迦)가 깨달은 최고의 묘리(妙理)를 가리킨다. 우주를 밝게 비추는 것을 안(眼), 모든 덕을 포함하는 것을 장(藏)이라 하며, 정법(正法)은 이 안과 장을 구비하는 것이다. 석가가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강설할 때 연꽃을 꺾어 들자 대중이 모두 침묵하는 가운데 오직 가섭(迦葉)만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는데, 이에 석가가 “나에게 있는 정법안장(正法眼藏)ㆍ열반묘심(涅槃妙心)ㆍ실상무상(實相無相)ㆍ미묘법문(微妙法門)ㆍ불립문자(不立文字)ㆍ교외별전(敎外別傳)을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맡기노라.”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聯燈會要』
[주7] 심석재집(心石齋集) :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송병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0년에 간행한 시문집으로 송병순의 아들 송증헌(宋曾憲)이 편집·간행하였다. 35권 15책의 목활자본이다.
● 위에서 소개한 「묵재기(默齋記)」는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이 묵재(默齋) 이병철(李柄喆 1874~1914)에게 지어준 글이다. 이병철은 자가 희언(希彥)으로, 경상도 대구에서 강학에 참여하며 활동한 인사이다. 현재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951에 그를 추모하는 정자 정관정(靜觀亭)이 있다. 다만 저자의 형 송병선(宋秉璿)의 『연재집(淵齋集)』 연보를 보면 송병선의 자질(子姪) 혹은 문인(門人)이라고 되어 있고 대구시 정관정(靜觀亭)의 안내문 기록과 또 다른 자료를 종합건대, 이병철은 송병선, 송병순 형제 두 분의 제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병철은 심석재에게 『중용(中庸)』을 배우고 성리(性理)의 설을 얻어들었다. 심석재는 1912년에 이병철이 ‘묵재(黙齋)’라는 편액을 걸고자 하니 이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청하기에, 「묵재기(默齋記)」를 지어주며 그를 면려(勉勵)한 것이다.
「묵재기」에서 말하기를 “설문청(薛文淸, 薛瑄)이 일찍이 말하기를 만언(萬言)이 묵(黙) 자(字) 한 글자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내가 의심하기를 사람의 어묵(語默)은 ‘마땅히 말을 해야 할 때에는 말을 해야 하고, 침묵해야 할 때에는 침묵해야 한다.’ 침묵해야 할 때 말하고, 말해야 할 때 침묵하면 옳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마땅하고 마땅하지 않음을 분별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석씨(釋氏)와 같다고 하고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설문청의 말은 옳지 않고 공자와 같이 때에 맞게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본문 내용에서 송병순(宋秉珣)이, 말과 침묵을 시의적절하게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대상은 하늘이다. 하늘은 평소에는 고요하지만 때가 되면 우레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인간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하늘과 가장 비슷한 속성을 가진 성인이 있으니, 바로 공자이다. 저자는 주자의 시를 인용하여 공자가 말을 하려 하지 않는 이유를 말이 없는 하늘에게서 찾는다.
그렇다면 설선(薛瑄 1389~1464)의 침묵과 공자의 침묵 중 어느 쪽을 배워야 할까. 저자는 설선의 침묵을 비판하고 공자의 침묵을 옹호한다. 그런데 침묵에 관한 수많은 격언 중에 왜 하필 설선의 말을 인용한 것일까. 설선의 침묵은 그저 입만 닫는 것이고 공자의 침묵은 말할 때를 기다리는 차이가 있다. 아마 설선은 범인 중에 한 사람이고 공자는 성인 중에 한 분이니 이를 비교코자 설선의 침묵을 인용한 것일 게다.
저자가 이 글을 지은 1912년에는 나라가 일본에 병합된 격변기였다. 밀려드는 수많은 가치가 혼재하고 기존의 사회질서가 붕괴되는 시기에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동분서주 했다. 어찌 보면 이러한 때에는 유학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봐야 더 큰 혼란만 가중되었을 것이다. 저자가 제자 이병철에게 보낸 이 글은, 아마도 학문과 도덕을 갖추고 묵묵히 나라와 타인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길 바라며 쓴 글일 게다.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말이 바로 침묵(沈默)이다. 그러니 “말 많은 세상, 말을 삼가라.” 공자가 편찬한 서경(書經)에는 ‘오직 입이란 우호를 맺기도 하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하였고 또 ‘오직 입이란 수치를 불러 일으킨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중국 송나라 4대가였던 황산곡(黃山谷) 즉,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이, ‘말이 많으면 실수하고 쉽게 말하면 혼란스러워진다. 만 번 말하고 만 번 당연한 말이라도 차라리 종일 침묵하는 것이 낫다.’ 하였다.(書曰 ‘惟口興戎出好 又曰惟口起羞’ 而黃庭堅曰 多言則失 易言則亂 與其萬言萬當不如 終日含默)” 고로 침묵(沈默)이란 인간이 입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다. 하지만 침묵만이 능사는 아니다. 바른 처신이 참으로 어렵다. 돌이켜보면, 말과 침묵, 둘 사이의 엇갈림이 참으로 미묘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