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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풍수지리

작성자아침햇살|작성시간26.06.05|조회수46 목록 댓글 0

 

 

 

 

조선 명종 때의 학자로서 남사고(南師古, 1509년 ~ 1571년)라는 사람이 있었다. 남사고처럼 지식이 많은 사람이 없었다. 천문과 지리에 달통한 사람이다.『격암유록(格庵遺錄))』이라는 남사고 비결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지리(地理)를 잘 아니까, 좋은 땅에다가 자기 부모의 묘를 쓰려고 했다. 지리地理라 하는 것은 좋은 땅에다 백골을 묻을 것 같으면 천 년이 가도 썩지를 않는다. 그걸 혈(穴)이라고 하는데 좋은 혈에 들어갈 것 같으면 황골이 돼서 토질도 좋다.

지리(地理)를 보면 보통 주변 10리 20리가 명당자리 하나를 싸 주고 있는데, 그런 좋은 데에다가 조상을 묻을 것 같으면 그 기운이 응기해서 좋은 자손도 생기고, 복도 받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가 있다. 지리地理를 숭상하고 명당대지를 찾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요즘도 대통령으로 출마하기 전에 명당자리를 찾아 묘를 이장 하기도 한다. 

 

 

 

 

 

남사고가 그걸 알았기 때문에 부모님을 좋은 데다가 모시려고 자리를 찾았다. 좋은 자리를 찾아서 묘를 옮겼는데, 쓰고서 보면 명당자리가 아니다. 그래서 자기 부모의 묘를 아홉 번을 이장했다. 그렇게 아홉 번을 쓰고 났는데 눈이 홀려서 잘못 봤더란 말이다.


명당자리는 “천장지비(天藏地秘)해서 이대기인(以待其人)이라.” 하늘이 감추고 땅이 비밀해서 세상을 위해 덕을 많이 쌓은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지리(地理)라는 것은 반드시 임자가 있는 것이다. 그런 임자를 기다리는데 사람 많이 죽이고 도둑질, 강도질, 갖은 못된 짓 다 한 백골을 산신(山神)이 받아줄 리가 없다. 이치가 그렇다. “이 적악가(積惡家), 요놈 어딜 들어 오냐?” 하고 천지신명이 눈을 홀려 버린다. 

 

 

그래서 ‘구천통곡(九遷痛哭) 남사고(南師古)’라는 말이 있다. 남사고가 아홉 번을 옮기고도 통곡을 했다는 말이다. 

 

남사고의 아버지가 남을 음해를 해서 여러 생명을 앗아갔다. 하니 악한 짓을 한 사람은 천지신명이 저주해서 절대로 좋은 자리를 들어갈 수가 없다. 사람은 좋게 살면 그 음덕으로 자손이 잘 되고, 그런 좋은 땅도 얻어 쓸 수 있다. 요는 내가 좋게 삶으로써 내 자손들이 신명(神明)들한테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옛 속담에 “명산대천(名山大川)에 기도하지 말고 스스로 마음을 고치라”하는 말이 있다. 남에게 온갖 못된 짓 다 하고, 그 사람이 모른다 해서 남 음해하고, 그러고서 명산대천에 가서 기도하면 뭘 하는가? 

 

사람이나 속지 신명神明도 속나?  사람은 본심대로, 남에게 덕을 쌓고 본질적으로 좋게 살아야 한다.


지리(地理)에 대해 조금 덧붙이자면, 지리地理를 알고 보면 글자 쓰는 것하고 똑같다. 산이 그냥 꼬부라지고 틀어진 게 아니다. 산이 가는 것을 용(龍)이라고 하는데, 좋은 혈(穴)이 생기려면 그 용이 반드시 여덟 팔八 자 형상을 하고 있다. 꼭 사람이 걷는 모양 같다. 사람은 걸을 때 두 팔을 치고 간다. 

 

 

 

한 팔은 앞으로 한 팔은 뒤로, 앞의 팔이 뒤로 가면 뒤의 팔은 앞으로 오고. 그렇게 행보하는 것을 학술용어로 지각(枝脚)이라고 하는데, 산은 반드시 그렇게 지각을 벌이고 간다. 그게 상극(相克)으로도 되어져 있고, 상생(相生)으로도 돼 있는데, 혈(血)이 되려면 반드시 상생相生으로 붙는다.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하는 것 마냥 다 그렇게 돼 있다. 

 

지리地理를 모르는 사람은 그저 산이 구부러지고 틀어지고 그저 그렇게 됐나 보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라는 땅도 하나의 생명체로서 지리학상으로 그렇게 돼 있다. 마치 비옥한 땅에서 난 초목이 무성하게 커서 열매도 아주 실하게 여물고, 토박土薄한 땅에서 성장한 초목은 누러니 키도 못 크고 열매도 시원찮게 여무는 이치와 같다.

 

또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초목이 뽑혀나가는 등 객적인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리고 명당자리, 혈(穴)이 되려면, 아무리 그 산이 돌로 이루어진 석산(石山)일지라도 혈穴 자리에는 콩알 만한 돌 하나가 없다.

 

 

또 지리에 따라서 황금색 흙이 나오기도 하고, 빨간 황토로만 된 데도 있다. 참으로 묘하다. 그런데 혈 기운을 받아서 나온 사람은 가효국충(家孝國忠)을 한다. 집에서는 효도하고 국가에는 충성하고, 혈 기운을 받아 생겨난 사람은 다 착한 사람이다. 그렇게 지리적인 조건으로 해서도 발복할 수가 있지만, 자신의 조상에서 좋은 짓을 한 사람이라야 천지신명들이 천거해서 명당대지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의 지리형세

 

세상만사가 다 순(順)해야 되는데 지리만은 역(逆)해야 된다.

 

서울의 청계천 물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역(逆)하여 흐르다 중랑천에서 합쳐져 한강 본류로 빠져 나간다.

 

북악산의 오른쪽에 친 인왕산 줄기를 타고 내려오면 사직터널에서 부터 산줄기가 내려와 서대문, 서소문이 생기고 남대문까지 와서 그 줄기가 남산을 치켜올렸다. 그래서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쪽 물은 청계천으로 빠지고 반대쪽 인왕산줄기 서쪽 물은 용산쪽으로 빠져나간다.

 

인왕산 줄기 안쪽 물과, 북악산과 남산 골탱이의 서울 장안의 안쪽 물은 전부 청계천으로 모여들어 거꾸로 치올라가 중랑천으로 빠져나간다. 청계천 물이 흐르는 방향은 한강 물줄기가 흐르는 방향과 정반대다. 한강은 동에서 서로 김포와 강화도 쪽으로 흐르지만, 청계천 물은 묘하게도 서에서 동으로 역(逆)하며 거꾸로 흐른다. 그러니까 서울에 도읍터 하나 만들기 위해 청계천 물이 그렇게 역(逆)을 했다는 말이다

 

 

북한강과 남한강 물이 양수리에서 합해져 서쪽으로 빠지는데,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 남산 안쪽 물만 거꾸로 치올라간다. 지리는 이렇게 역(逆)을 해야 터가 생기는 것이다. 집터도, 묘자리도 다 그렇다. 그렇게 되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 이렇게 역(逆)을 하지 않으면 절대 자리가 안 생기는 것이다. 
 


북한산, 인왕산, 남산으로 둘러싸인 4대문 안쪽 물은 모두 청계천에 모여들어 불과 몇km를 역(逆)하면서 흐르다 중랑천으로 빠져 나간다. 청계천이 역수(逆水)하는 거리가 얼마 안되지만 1392년에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래, 오늘날까지 600년이 넘게 도읍터의 생기를 발하고 있다. 청계천이 역(逆)하면서 흐르는 거리는 몇 키로 될 뿐이다. 서대문 남산 경복궁, 그게 얼마 안 된다. 그렇게 좁아터진 데다. 그래도 그 기운 가지고 조선왕조 500년을 끌고왔다.

 

그리고 노량진에서 제일한강교를 넘다보면 가운데 중지도라고 있다.

 

 

 

 

 

 

이런게 왜 생겼느냐 하면 한강물이 빠지는데, 중간에 중지도가 있어서 서울의 땅 기운이 빠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밤섬이 있다.

 

홍수가 밀려오면 잘잘한 밤섬같은 것은 그냥 쓸려가 버리고 말 것 같은데, 여러 천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또 그런가하면 그 밑에 여의도가 있다. 또 조금 더 내려가면 난지도가 있고, 강화도에 가면 ‘손돌목’이라는 곳이 있어서 강이 기역자로 구부러져 있다. 그것이 다 설기(洩氣)되는 기운을 차단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왜 손돌목이라고 이름을 붙쳤나?

 

 

태조 왕건이 세운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당시 천도(遷都)를 할 시에 도읍지를 계룡산 신도안으로 하느냐, 한양으로 하느냐, 공론이 분분했다. 신도안에 가보면 그때 나라의 사령탑을 짓는다고 깎아 놓은 주춧돌이 지금도 남아 있다.  터 닦던 데를 파 보면 볏짚 한 켜 깔고 다시 황토를 한 켜 깔고, 그렇게 정토(淨土)를 해 놓았다.

 

이성계가 거기를 내던지고 서울로 천도를 하고 나서 그 터에다 절을 지었는데 그 절 이름이 정토사(淨土寺)다. 그런데 높은 벼슬아치들이 거기를 버리고 한양으로 갈 때, 강경에서 배를 타고서 갔다.

 

 

 

 

 

배가 김포 손돌목을 접어들어 가는데, 거기가 기역자로 구부러져 버렸다. 서해안은 하루에도 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간만의 차가 있어서 배가 썰물을 따라서 쏜살같이 앞으로 올라가는데, 배에 탄 높은 벼슬아치들이 보니까 배가 지나갈 틈이 없다. 그냥 가다가는 절벽에 탁 부딪혀서 배도 깨지고 몰사하게 생겼다.

 

그래서“저놈 죽여라. 저놈이 우리를 다 죽이려고 한다”며 뱃사공을 죽이라고 했다.
 
그 뱃사공이 장가도 못 간 떠꺼머리 총각이었다. 그 뱃사공은 바가지를 물에다 띄워 주면서“이 바가지 가는 대로만 따라 올라가면 됩니다” 하고서 죽었다. 그런데 거기서는 배를 돌이킬 수도 없다. 너무 좁아서 배 하나 간신히 지나가면 그만이다. 하는 수 없이 뱃사공이 말한대로 들물에 떠밀려서 올라가 보니, 기역자라고나 할까 니은자라고나 할까 그렇게 각이 졌다.

 

 

그때 죽은 사공이 밀양 손(孫)가다. 장가도 못 간 손도령이 죽은 곳이라 해서 손돌목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또 그 사공이 죽은 날이 음력 시월 스무날인데, 조선 5백 년 동안 이날만 되면 보통 추운 게 아니었다.

 

그것을 ‘손돌이 추위‘라고 한다. 그래서 손돌이 추위가 오기 전에 김장도 해야 되고, 이엉을 엮어서 지붕 해 이는 것도 그 안에 다 해야 했다. 손돌이는 손도령이라는 말이다.  장가도 못 들고서 너무 억울하게 죽어서, 그 원한 때문에 그렇게 날이 춥다는 것이다. 물이 빠지는 곳을 학술용어로 파(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파(破)는 손돌목처럼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서는 물 빠지는 파(破)가 중국 대륙과 대만 사이에 있는 대만해협이다. 그게 땅 속으로 이어져 있는데, 높은데는 필리핀과 같은 섬나라도 있고 깊은 데는 물속에 묻혀버렸다. 그래서 구슬을 꿴 것 같다고 유구열도(琉玖列島)라고도 했고, 노끈 모양으로 연결이 되어져 있다고 해서 충승도(沖繩島)라고도 했다. 금문도(金門島)니, 조종도(祖宗島)가 있는 곳, 아주 협소狹小한 데다.
 


왜破 파는 그렇게 협소하게 되어져 있느냐 하면, 그 안에 있는 광활한 생기(生氣)가 빠져나가 버리면 안되기 때문이다.

 

알아듣기 쉽게 남자의 양물, 자지 구멍은 오줌을 눌 때나 조금 벌어지고 늘 붙어 있다. 또 분문(糞門)이라고, 똥 분 자, 문이라는 문 자, 똥 나오는 구멍 문이 있다. 그것도 항상 닫혀 있다. 또 여자한테는 구슬 옥 자를 붙여서 옥문(玉門)이라고 한다. 그 안에는 아기를 잉태해서 기르는 궁전, 자궁(子宮)이 있다. 이 자궁도 필요에 의해서만 벌어지고 항상 딱 붙어 있다. 

 

거기는 샐 설(泄) 자 기운 기(氣) 자, 설기(泄氣)가 되면 안 된다. 생물이라면 100%가 다 그렇게 되어져 있다. 파(破)를 설명하느라고 하는 말이다. 다시 좀 더 설명을 하면, 강원도 금강산의 중심이 비로봉이다. 거기서부터 비롯한 물이 한강으로 다 흘러내려 온다. 충청북도 속리산 남쪽 물은 금강으로 내려오고 속리산 서북쪽 물은 남한강으로 내려간다. 양수리에서 북한강 물과 합류를 하기 때문에 양수리(兩水里)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출처: 증산도 종도사

 

 

 

 

 

 

 

미물곤충, 초목, 비금주수(飛禽走獸) 등, 만유의 생명체는 유전인자가 계계승승해서 내려온 것이다. 사람으로 말하면 5천 년, 6천 년 전, 처음 조상 할아버지가 있다. 

 

그 조상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고, 그 아들이 또 그 아들에게 물려주고, 아들 손자 증손자 고손자 이렇게 자자손손 계계승승해서 우리의 몸뚱이에는 처음 조상 할아버지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다. 고시(古詩) 한 수로 정리해 보면


“도발선천색(桃發先天色)이요, 수류만고심(水流萬古心)이라”, 복숭아 꽃은 선천빛으로 피었고, 물은 만고의 마음으로 흐르는 구나.

선천(先天)이란 말에는 십 년 전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고, 백 년 전, 천 년 전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 금년에 핀 복숭아 꽃은 작년에도, 십 년 전에도, 천 년 전에도, 똑같은 꽃이다. 

 

복숭아 꽃은 언제나 바로 그 ‘선천빛’으로, 꽃술, 꽃잎의 모양과 색깔이 바로 그 모양, 그 색깔로 꼭 그렇게 핀다. 십 년, 천 년을 내려오면서 제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복숭아 꽃의 유전인자 그대로 내려가는 것이다. 또 물은 오늘도 흐르고 있고, 또 만 년 후에도 흘러갈 것이다.

 

만유라는 것은 반드시 유전인자가 있어서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그대로만 전해 내려가는 것이다. 초목이든, 날아다니는 새든, 기어 다니는 짐승이든, 미물곤충이든 만유 생명체의 유전인자라 하는 것은 절대로 바꿀 수가 없다. 진달래 꽃도 천 년 전의 진달래 꽃이고, 할미꽃, 도라지 꽃도 천 년 전의 그 할미꽃, 그 도라지 꽃이다.

 

 

 

만유는 다 홀생홀멸(忽生忽滅) 해서 잠시 생겼다가 멸하지만, 반드시 제 종자를 퍼뜨리고 간다. 그래서 비록 자신은 이땅에서 사라지지만 제 종자를 퍼뜨려 놓고 가기 때문에 사실은 멸한 게 아니다. 

 

결론적으로, 내 몸뚱이는 맨 처음 시조 할아버지의 유전인자와 똑같다. 

 

우리나라에 옛날부터 내려오는 얘기가 김해 김씨는 자지 끄트머리에는 검정 점이 있다고 한다. 김해 김씨의 처음 시조 할어버지의 유전인자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전인자가 몸으로만 전해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정신세계라는 게 있다. 좋건 그르건, 사람은 이땅에서 좋게 살다 가는 사람도 있고,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상을 아주 패악스럽게 살다 가는 사람도 있다. 

 

자기 위치에서 한 세상을 좋게 살면 그 자손들도 조상을 본떠서 또 좋게 산다. 그러면 그 음덕이 쌓여서 2대, 3대 후에는 세상에서 추앙 받는 자손도 나올 수가 있다.  또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으로 태어난다. 좋은 땅에다 조상을 잘 모시면 그 지리의 음덕을 받아 좋은 자손이 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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