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어려운 상황에도 노력과 헌신으로 살아낸 정약용
1. 선정 대상과 선정 이유
나는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이자 천재 학자인 다산 정약용을 나의 롤모델로 선정했다. 정약용은 가문이 몰락하고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유배를 당하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당대 최고의 학문적 성취를 이루고 무려 500여 권의 저술을 남긴 인물이다.
사실 나는 대학에 와서 전공 공부나 필수 교양 시험 등을 마주할 때마다 '왜 이렇게 배울 게 많고 어려울까'라며 지치기도 했고, 대로는 내 재능이나 환경을 탓하며 쉽게 무기력해지곤 했다. 하지만 그 처절하고 절망적인 유배지에서도 무엇도 탓하지 않고, 본인이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며 학문에 몰입한 정약용의 태도는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정약용이 남긴 저서들과 그가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실사구시(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함)'의 정신은 나의 인생과 공부 태도를 한 번씩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거나, 삶의 해답을 가져다준다. 그는 ‘노력으로 인한 성취’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내 안의 노력하려는 마음을 이끌어 내는 사람이기에 나의 롤모델로 삼았다.
2. 성공 사례
정약용은 젊은 시절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으나, 정조 서거 이후 신유박해라는 거대한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전라남도 강진으로 18년 동안 유배를 가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가문은 폐족이 되었고, 촉망받던 관료에서 한순간에 낯선 땅의 죄인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그야말로 삶의 기반이 통째로 무너진 '찢어지게 절망적인 환경'이었다. 유배 초기에는 그를 죄인 취급하며 아무도 방을 내어주지 않아 주막집의 작은 골방(사의재)에서 겨우 생활해야 했다. 자신이 평생 쌓아온 관직과 명예를 모두 버려야 하는 일을 겪은 것이다.
그러나 정약용은 이 모든 어려움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조건을 극복해가며 결국 학문에만 매달렸다. 복사뼈가 세 번이나 뚫려 진물이 날 정도로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썼던 '삼과골취'의 일화는 그의 절박한 노력을 보여준다. 이후 유배지에서 점점 학문적 명성이 퍼졌고 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조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실학 저서들을 완성해 냈다.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는 학문 연구를 멈추지 않았으며, 평생을 겸손하고 따뜻한 태도로 백성과 제자들을 바라보는 삶을 살았다.
3. 자신의 의견
정약용의 삶은 나에게 단순한 감동을 넘어서 삶의 방향성과 태도에 대한 교훈을 주었다. '가진 것을 모두 잃어도, 조건이 불리해도, 끝까지 노력하면 스스로의 가치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은 그가 증명한 진실이다.
그동안 나는 과제가 뜻대로 풀리지 않거나 시험 성적이 아쉬울 때, 환경이나 사황 핑계를 대며 도망치려 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복사뼈가 뚫릴 정도로 학문에 매달려 결국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낸 정약용을 보며 내 가벼운 투정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그의 과거(유배 시절)를 보며 핑계를 줄이고, 그의 현재(끝없는 저술 활동)를 보며 꾸준함을 마음에 새길 것이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뒤에도 자만하지 않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겸손하게 노년을 보낸 그를 보며, 저것이 진정 성공한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인 것을 느꼈다.
나도 나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 현실을 탓하기보다 주어진 것을 먼저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 역시 정약용처럼 포기하지 않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학업과 환경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